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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아줌마와 나무늘보
Jan 08. 2023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그렇듯 나에게 있어 그때는, 하루하루가 호기심과 해야 할 즐거운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내가 일하는 자그마한 카페에 가면 오랜 동네 친구들이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치즈 케이크를 먹거나 생크림을 듬뿍 넣은 핫쵸코나 팥빙수를 먹으며 끊임없이 뭔가에 대해 일을 도모하곤 했었다. 방학 때가 되면 일하는 시간을 연장해 아무도 없는 아침의 카페를 정리하며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이나 재즈음반을 틀어 놓고 향이 좋은 최고급 커피를 몰래 갈아 맛을 음미하며 오전의 느긋함을 즐겼다. 카페는 손님이 드문드문 오는 정도라 좋아하는 책을 쌓아 놓고 줄곧 읽을 수도 있었다.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시간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착착 흘러가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 시절 유일한 고민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빨리 독립해서 혼자 나가서 살 수 있을까,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 하는 것뿐이었다. 난 그다지 사교적인 편이 아니어서 찾아오는 친구들도 언제나 한둘뿐이었고,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여행이나 책, 술에 대해서는 가끔 먼저 일을 도모할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난 다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 이외의 시간들까지 누구와 함께여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싫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도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겠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을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어느 선을 넘어가면 슬쩍 그 상황에서 발을 빼곤 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너무 힘들어하며 자주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찾다 보면 그 일 자체에 길들여져 결국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더욱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친구들한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가끔 예외적으로 오랜 친구와의 정에 이끌려 청을 거절 못한 적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의도치 않게 그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깡그리 잊곤 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내 뇌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기로 했는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잊지 않으려고 다이어리에 적거나 달력에 표시하기도 했지만, 어떤 이유로든지 다이어리를 잃어버리거나 책상 위에 달력이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친구의 개인적인 고민거리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내 이야기를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혹시 내가 그 일을 잊거든 조용히 일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상당히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나였다. 나는 그렇게 느릿느릿 스물셋을 표류하고 있었다. 그가 방이 두 개짜리인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금 더 느릿느릿 표류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던 중이었고, 물론 그 장소는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는 내가 일하는 작은 카페에 커피를 납품해 주러 오는 영업 사원이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가 잘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그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대리와 함께 왔다. 그 대리와는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고 일반적으로 통통한 아저씨들이 그렇듯이 워낙 유쾌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술 한잔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우리가 세 번째 만났을 때는 더블데이트 같은 형식 아닌 형식으로 –그때 그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나도 남자 친구가 있었으며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친구까지 합세해 넷이서 놀이공원에 갔다. 놀이 공원이라니, 하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오랜만이라 그냥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게 괜찮다면 싼값으로 남는 하나의 방을 나에게 임대해 주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일주일 뒤 그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여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연인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어떤 형태의 미묘한 생각조차 –그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른 아침 회사에 출근해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니며 커피영업을 했고 늦은 밤에 들어왔다. 나는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일어나 수업을 갔다가 일찍 돌아왔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하게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학교는 그의 아파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모든 조건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중요한 건 내가 파란 방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내게 내줄 방이 파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짐을 옮기며 마주한 방이 벽에서부터 천장, 바닥까지 온통 파란 것을 보고 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황당해서가 아니라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파란색이란 언제나 여러 가지 것들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난 이제 그야말로 완벽하게 표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래 묵은 비 냄새가 나는 큰방이 아닌 자그만 파란 방을 –그것도 그가 직접 페인트 칠을 한- 내준 데 감사하며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방을 꾸몄다. 파란 방에는 자그마한 책장 하나와 화장대, 공부 책상이 들어왔고 나와 그의 쿨 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개인주의적이었으며 그는 소년다운 웃음을 지닌 조금은 나와 닮은 듯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우리는 둘 다 재즈나 오리지널 클래식, 비틀스, 너바나를 좋아했고 서태지를 좋아했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에 미쳐 있었다. 강도로 따지자면 음악이든 하루키든 그가 훨씬 심오한 편이었지만 덕분에 내 세계도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단지 그뿐 우리는 음악이나 소설 이야기를 한다거나, 가끔 회사에서 혹은 학교 일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필요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지 않았다. 서로의 연인에게서 전화가 오면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곤 누가 봐도 다 성장한 남매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나는 파란 바닷속에서 뼈 없는 연체동물이 되어 느긋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시간은 평온하게 흐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