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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Dec 06. 2021

살겠다는 악다구니

용하다는 공짜 부적

수 해 전 혼자되신 엄마는 날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평생 기다림에 진절머리 난다던 남편이었는데 기다릴 사람이 없어진 것에 대한 공허함이 그녀 인생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육신이 먼저인지, 정신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둘 다 아프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이곳저곳 수술도 받고 우울증 약도 처방받고 70 가까이 쓴 몸 여기저기 고쳐 써 보려 애쓰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멍하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에게 등산을 장려했던 게 화근이었다. 가을 산행길에 낙엽을 밟고 미끄러져 발목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고를 당했다. 올라갈 때는 두 발로, 내려올 때는 헬기를 타고 내려오신 후 1년 넘게 누워계셨다. 그 1년 동안 허공에 시선을 박고 조용히 '죽고 싶다'라고 되뇌셨다. 억척스럽게 날 사람답게 키워낸 엄마의 강인함은 이미 엄마의 것이 아닌 듯했다. 친구들의 죽고 싶다는 볼멘 하소연에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보드라운 감촉의 말들을 해본 적은 있지만 내 단단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엄마의 흔들리는 삶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배운 적이 없었다.


아픈 아이들을 돌보랴 친정엄마 신경 쓰랴 소홀해진 며느리를 시부모님께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신 지도 이미 오래였다. 아이들을 위한 유기농 식비를 벌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지독히 일에만 집중했던 남편도 오래전 내 옆자리를 비운 후였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목이 '돈을 벌어온다'는 무기로 바뀌어 겉돌았다. 간혹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날, 그는 근면과 성실이라는 사회적 얼굴 위에 '침묵'이라는 마스크를 쓴 채였다. '나 요즘 너무 힘들다.'라고 말이라도 붙이는 날에는 침묵의 마스크를 뚫고 고철더미 속 쇠꼬챙이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가 부모라는 단단한 토양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선 부부의 가지에 매달린 열매가 아이들이라 생각했는데, 흐물흐물 해져 내 뿌리가 뽑히려고 했다. 덩달아 아이라는 열매도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렸다. 분명 아프고 힘든 건 엄마였는데 내 삶이 출렁였다.


스트레스라도 풀어야지 하고 만난 지인들과의 만남 속 대화는 날 더 외롭게 했다. 그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 예를 들어 "나 주말에 남편이랑 이태원 가서 데이트했는데 너무 좋았어", "부모님이랑 아이들이랑 속초 여행 다녀왔는데.."같은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이 수 십 톤의 무게를 지닌 육중한 언어로 바뀌어 나를 짓눌렀다.

 '좋겠다. 부럽다. 난 아이가 아파서 외식도.. 엄마가 아파서 함께 여행도, 시부모님이 날 싫어하셔서 식사 한 번도 할 수가 없는데... 더구나 난 원양어선 탄 것 같이 부재중인 남편까지... 너희들은 정말 행복하겠다.'

어떤 말을 해도 내 마음속 결론은 딱 하나였다. '부럽다. 좋겠다. 난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난 불행해'

그들의 행복한 언어에 날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연락을 단절해 버렸다.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에 무게감을 느끼고 시기, 질투하며 날 채근하지 않아도 되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 날 고립시켜버렸다.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를 돌보고 그러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 또 내가 돌보아야 할 것들을 되뇌고, 혹시라도 작은 것 하나라도 놓쳐 누구라도 더 아프게 되면 어쩌나 근심하며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불면으로 날 선 감정들만 빼곡했다.

정신줄을 놓고 밀어닥치는 일을 하다 보니 며칠이 멀다 하고 다치기 일쑤였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이는 일들도 허다했다. 그래도 어떤 것도 멈출 수 없이 내 자리는 돌봄을 해내야만 하는 곳에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계단에서 굴러 꼬리뼈 골절상으로 세 달 가까이 누워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아프니 엄마도 아이들도 더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새로운 재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내일 아침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옴짝달싹 못하고 창밖을 볼 때면 그냥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 지독한 굴레를 영영 벗어던질 수 있는 건지만 궁금했다. 지금 생각하면 '번아웃' 그런 거였던가 싶다.

누워있는 내게 '엄마 나 어디 아파. 딸아 나 살기가 싫다...'의 말들이 날아들 때면 침대라는 관에 누운 내 위로 그 말들은 뚜껑을 박는 못이 되었다. 나도 아파!!! 나도 힘들어!!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



3개월 만에 뼈가 붙어 일어선 날도 여기저기 말과 상황에 찔려 잠들지 못했다. 그날 새벽 난 잠옷을 입은 채 자리를 박차고 거리를 나섰다. 소리치려고. 나도 힘들다고 소리치려고 길을 나섰다. 어둑한 거리 갈 곳도, 문 열어 나를 기다리는 곳도, 소리칠 곳은 더더욱 없었다. 2~3킬로 미터 가량 걸었을까.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몇 번 들어가 보았던 절이 보였다. 아프지 않고 든든하게 날 지켜주던 그 시절 엄마 냄새가 날 것 같은 그곳에서 '소원성취, 무병장수'라 쓰인 기나긴 촛불들을 마주했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촛불들 앞에서 난 이뤄야 할 소원이 무엇인지, 불운한 세상에서 장수하고 싶은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 눈뜨지 않길 바랐던 삶에 소원과 장수는 너무 거창한 단어였다.


향초 하나를 피우고 조용히 합장을 하니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예요. 그냥 하루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기댈 곳 없던 내가 그 작은 향초가 만들어 낸 재에 기대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 밤, 얼마만인지 기억나지 않는 깊은 잠을 잤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힘든 날은 잰걸음으로 힘이 도는 날은 뛰어서 거리로 나갔다. 하루는 절로, 하루는 네온사인 빛을 잃은 번화가 속으로... 걷는 내내 중얼거리는 소원은 똑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왕복 5킬로미터 정도를 새벽에 다녀오니 아침에 정신이 맑고 밤이면 잠에 들 수 있었다. 몸이 5킬로미터에 익숙해지니 또다시 불면이 찾아왔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또 불안감, 초조함이 찾아와 있었다. 더 많이 걸어야 한다고 몸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두 시간 가위눌리는 쪽잠을 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한강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싼 값에 맥주를 마시거나 아이들 자전거를 태우러 나왔던 곳에 해가 뜨지 않은 오전 5시~6시 사이에 홀로 들어선 다는 것이 어색하고 위험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한강 출입로로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는 한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 러닝 쇼츠를 입은 이들이 재빠르게 바람을 등진 채 멀어져 갔다. 올림픽 경기에서나 봤던 사이클 복장을 한 자전거 라이딩 무리들이 어리둥절한 나를 향해 '지나갈게요' 외쳤다.

그들의 움직임이 놀이동산의 퍼레이드 무리같이 흥겨워 보여 덩달아 내 다리까지 자극을 받았다. 뛰고 있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해가 떴다.


내 한 걸음마다 하늘의 색이 변했다.

내가 온 평생 지껄여왔던 '하늘색'이란 말이 얼마나 틀렸었던 말인지....

하늘색은 단 하나의 색이 아니라 마주할 때마다 다른 말로 날 위로해주는 커다란 책장과도 같았다.

너무 다 잘 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어루만져주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색의 하늘을 가슴 가득 품었다. 살고 싶었다.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한 걸음 사이 다른 색 옷을 걸친 새벽하늘



무리한 탓에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음이 이제 첫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실룩거렸지만 한강 러닝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도 딱 아이의 그것만큼이었다.

돌아와 아이들 밥을 차리는데 콧노래가 나왔다.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흥얼거림이 튀어나오는 아침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중간중간에도 자꾸 창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아침의 색을 숨겨놓고 천연덕스럽게 하나의 색을 뿜어내는 하늘을 보며 '내일도 보러 갈게' 하며 웃었다.

관처럼 느껴졌던 침대였지만 그날 밤은 구름 이불이 깔려있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 들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같은 시간 하늘의 색



그날 이후, 몇 년째 태풍이나 장마 며칠 빼고는 눈이 오면 털모자를 쓰고,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매일 오전 5시 한강으로 향한다.



내 일상은 달라진 게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픈 아이와 엄마가 있고, 침묵의 마스크를 벗는 법을 모르는 남편이 있지만 ….

난 너무나도 살고 싶다.

살겠다는 악다구니 치러 찾은 한강의 하늘은 매일 다른 색으로 하루를 견고히 버틸 용하다는 부적 한 장씩을 써준다. 부적 값은 이른 새벽 러닝 한바탕이면 퉁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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