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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17. 2024

그녀는 야간 비행기를 탔다

2024.7.17.


비가 내렸다.

해가 지고 집을 나설 때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은

공항버스가 달리는 동안 점점 굵어졌다.

심벌즈 같은 빗소리가 차창 가득했고

시선은 목적 없이 비바람에 흩날렸다.

먼 하늘에서 번개가 불꽃처럼 반짝,

희미한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살며시 문질렀다.

익숙한 화면이 불을 밝혔다.

웃는 모습이 좋아.

불 꺼진 버스는 어두운 밤길을 내달렸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후회의 물줄기를

사정없이 닦아내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드디어 도착이다. 비는 잦아들었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렸다.

푹푹한 밤공기가 얼굴을 맴돌았다.

징징거리는 캐리어 소리를 끌며

공항을 파고드는 긴 걸음을 걸었다.

호박빛 등 가득한 활주로 풍경,

언제 봐도 좋단 말이야.

낯선 듯 익숙한 풍경에

그녀는 마음이 좀 놓였다.

나라마다 공항은 달라도

풍경은 비슷한 점이 있지.

대기실 의자는 듬성듬성

졸음을 채워 넣고 꾸벅거렸다.

주변에 둘러볼 만한 곳이 없나.

불 켜진 곳이 별로 없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야.

그녀는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 정도 남았다.

그때도 그랬지.

공허한 마음이 가슴을 채웠다.

밖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이제 탑승 시작이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났다.


비행기 내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길,

그녀의 자리는 좌측 날개 쪽

창가자리였다. 자주 앉던 곳이지.

뿌연 공항이 촉촉한 숨결을 쉬고

마음엔 희미한 안개가 피어났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걸린 시간처럼

땅과 하늘 사이 어디쯤인가에서

나부끼는 감정, 미련은 없다지만

정말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입을 삐쭉거려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지.


굼벵이처럼 꿈틀대던 기체는

한참을 걷다가 어딘가에 멈춰 섰다.

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이제 날아오를 때다.

울부짖는 엔진소리와 뒤로 쏠리는 몸뚱이,

그리고 빨라지는 긴장감.

어느덧 창가 풍경이 기울더니

비행기가 뛰어올랐다. 순식간이었다.

공항은 이미 저 아래에서 반짝이네.

크게 한 바퀴 돌던 하늘이 멈춰 서고

그녀는 눈을 떴다.

풍경은 검은 하늘 속을 달리다

구름 속에 파묻혔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조금씩 덜컹거리는 좌석,

그리고 다시 평온해지는 마음.

이제 고요한 터빈 소리만 가득하네.

그녀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반짝이는 불빛 몇 개가 흔들렸다.

육지를 벗어나 바다 위를 날고 있어.

그리움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있지.

해안가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것 같아.

아직 날이 밝지 않은 7월의 어느 날,

그녀는 야간 비행기를 탔다.


그녀는 야간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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