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를 벗어나는 신박한 방법
- 인터넷 카페 어느 게시글에서.
20년을 가까이 지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의 상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비롯한 부하직원들이 해낸 성과물에 버젓이 동일하게 일을 한 것처럼 보고했다며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을 해내기 위해 그를 비롯한 동료들은 주말까지 반납하며 필사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 때문에 순식간에 호구가 되어버렸어. 그런데, 왜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 거야!"
그의 말은 모두 옳았다.
그의 상사는 무례하고 부도덕했으며, 이를 묵인하는 동료들 역시 이 같은 현상에 동조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모두 호구가 된 걸까?
나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웃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면 우리는 세상 시름을 모두 잊은 채 수다도 떨고 박장대소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소의 힘은 강하다.
표정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에도 표정이 있다.
어떤 일은 궂은 표정으로, 어떤 일은 해맑은 미소를 띠며 우리를 찾아온다.
그런 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무겁기도, 또 때로는 기쁘고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어느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꼭 그의 문제이던가.
예를 들어보겠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서로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혹여 한 사람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으면,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더욱 세심하게 보살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서로에게는 심드렁해지고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되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배우자를 보며 '나도 피곤한데'하는 불만이 생긴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고,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달라질 것임을 우리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나는 일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가지고 온다.
일은 히스토리를 쌓은 채 우리에게 전달되고, 그 일에 참여했던 이들의 감정은 그대로 일의 표정이 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손에 일이 건네진 순간부터, 일의 표정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궂은 표정의 일을 세심하게 보살필 것인가, 불만을 갖고 함부로 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흔히 그것이 모두 일 때문이라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알고 보면 이 모든 것도 다 해석하는 자의 것일 때가 많다.
혹여 이 방법에 억울한 마음이 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의 영역으로 발을 들인 일들은 모두 나의 통솔 하에 있다고.
같은 이야기다.
어떤 표정으로 다가오는 일이건, 기꺼이 나의 해석과 대우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나를 빠져나갈 수 있다.
지난 9월 초, 기록적인 강풍으로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링링을 떠올려 보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상공을 정확히 가로지른 링링은 초속 54.4m라는 무시무시한 기록과 함께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목포 해상을 시속 189km로 지나던 링링은 빠른 속도로 북상하여 수도권 인근에서 대지의 품에 안겼고 급격히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는 발생한 지 1주일 만인 9월 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대 저기압으로 소멸했다.
일의 생애도 이와 같다.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지나온 경로를 타고 표정을 갖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품에 안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의 몫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무심함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곁에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통제권을 우리 스스로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매번 이리저리 상황에 휩쓸려 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일의 표정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믿는 편이 훨씬 적극적인 해결방법이라는 뜻이다.
*긴 글로 인하여, 1, 2편으로 구분합니다. 다음 편 이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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