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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town Key Bridge

큰 아들 생각

by 조앤

오늘 ADHD로 오해받는 자녀와 관련해 상담자가 내담자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슈퍼비전에서 나눴다. 많은 경우 불화가 잦고 갈등가운데 있는 부모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우울한 정서 때문에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부모들을 바라보며 자라는 자녀들은 부모의 불안을 자신안에 내재화 하게 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과 무기력과 우울함으로 마치 ADHD와 비슷한 증상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기를 시작하기 보다는 우선 부모들의 정서를 돌아보는 것에 포커스를 두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내 자녀를 키우던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나의 우울증과 싸우느라, 당시엔 원인을 몰랐던 불안과 남편과 부딪히는 여러가지 갈등들이 맞물려 내가 불안할 때는 '과잉보호'로, 우울할 때는 모든 '관계철수'같은 모습으로 오히려 내가 성인 ADHD 증상을 드러내며 두 아들을 키웠던 것 같다. 아니 내가 키웠다기 보다 그들이 자랐다. 나의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며 애들은 자랐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우울과 불안에 관련한 아들과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큰 아들이 결혼전에 대학원을 다닐 때 무슨 시험을 앞두고 깊은 불안과 좌절을 겪은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타주로 떠난 아들들은 내가 전화를 해야 겨우 생존보고만 하는 수준이 되었고, 바쁜가 보다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별일 없이 잘 있지..?'

얘가 왠일이야 철들었네 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어떻게 잘 있는지 물어보고 시험준비 잘되냐 하고 언제 시험끝나면 가봐야 겠다 그러고 끊었다.

다음날 내 핸드폰에 아들 전화번호가 또 뜬다.

어.. 얘가 힘든가 보다..! 순간 내게 촉이 왔다.


'응.. 엄마야 .. 시험준비 땜에 많이 힘들구나.. 엄마가 지금 갈까?'

'.......... 응 엄마 와 줄 수 있어? 2주 후에 시험인데 점수가 안나와..'

'알았어. 엄마가 지금 바로 갈게'

처음이었다. 아들이 이런 일로 전화를 한 것은, 힘들다고 한 것은. 엄마가 와달라고 한 것은.


연락을 받자 마자 난 한달간 아들 집으로가서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남편과 의논하고 그 즉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내려서 택시로 아들이 사는 집까지 갔다. 남편은 일 때문에 못가니 나 혼자 가장 빠른 버스를 탄 것이다. 자동차로 가면 4시간이면 되는데 버스를 타고 가자니 11시간이나 걸렸다. 하루 꼬박 걸렸다.


나를 보자 아들은 홀로 견디고 있던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오시느라 힘들었죠.. 하고 묻지도 못했다.

'엄마 내 옆에 앉아서 아무데도 가지마.. 나 공부할때 그냥 내 뒤에 앉아 있어줘..'

'아 ..점수가 안나와..'

'..지금까지 론 받은거 어떡하지..'


'아고 뭔소리야.. 걱정하지 마 집이라도 팔아서 우리가 어떡하든 갚아 줄거니까 힘들면 지금이라도 그만해도 돼'


책상하나 침대하나 있는 방에서 난 거실로 좀 나가서 내 일을 좀 할까 했는데

자기랑 같은 공간에 있으라며 꼼짝을 못하게 한다. 할 수없이 책상 뒤쪽에 앉아서 집에서 가져간 자수 팩키지에 수를 놓고 있을 뿐이다. 나도 집중이 안되어 책도 안들어 오고 막연히 반복하는 바느질 거리만 만지작거렸다.

한석봉 엄마도 아니고..ㅠㅠ


조금 진정되었는가 싶으면

'아.. 점수가 안나와.. 안될 것 같아'

..

'어쩌냐.. 조금 쉬었다 다시 찬찬히 해봐.. 너네 학교에서 그동안 그 시험에 떨어진 사람 한 사람도 없다면서.. '

'그 첫번째 놈이 내가 될거같으니까 그러지 ㅠㅠ'


'.. 아이구 어쩌냐...너한테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어려울 거니 넘 낙심하지 말고 한번 더 해 봐..'

'.. 이걸 다 맞추는 애들이 있다니까.. 아니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맞추냐고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증상들을..'

'시간이 너무 모자라......'

아들은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 우리 밖에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자'

아들하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아들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갑자기 마마보이가 되어 벼렸다.

얼마나 힘들면 이럴까..

이걸 며칠을 반복하더니..

결국 시험을 미뤘다. 미루다 미루다 그 학기의 가능한 마지막 시험일자 까지 미루고

그 날짜에 두 시간 떨어진 리치몬드에 있는 시험장 까지 같이 갔다.


아들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난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서 오후 4시가 넘도록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아들이 왔다. 잘 봤냐고 물어보니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망쳤다고 했다.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운전을 하면서 얼마나 울던지....

뒤에 따라오던 차가 경적을 울리며

우리 차 앞으로 훽 와서는 창밖으로 가운데 손가락 욕을 하고는 쌩 하고 달려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들은 망친것 같은 시험과 망친것 같은 미래 때문에 울고

나는 아들의 눈물을 하염없이 보고만 있다.


두시간 정도 달렸나 보다. Arlington에 다다라서 우리는 Georgetown Key Bridge를 지나갔다.

아들의 눈물은 멈춘 것 같다. 다리를 지나며 담담히 입을 연다.

자기 집에서 학교까지 이 Key Bridge 위를 매일 걸었다고 했다.

몇 번이나 뛰어내리려고 그 어디매에서 멈추곤 했다고 했다. 슬퍼할 엄마가 생각이나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그동안 엄청 힘들었었구나..그 다리 위 어딘가에서 외로이 홀로 서있었을 아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자랑이나 하고 싶어했고ㅠㅠ

언제 시간나면 키 브릿지를 걸어서 한번 가봐야지 하고 속도 편하게

아들 집에 올 때마다 운동화를 챙겨넣으며 이 다리를 떠올렸는데


그날 아들의 좌절을 보면서 속수무책이였던 내가 너무 미안했고 그동안 힘들었던 그 마음 헤아려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그때라도 나에게 연락해 준 것이 고마웠고, 버텨준 것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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