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숙 Oct 30. 2022

왜 하필 책방이야

워킹맘, 퇴사의 세계

" 왜 하필 책방이야? "

" 하필 책방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좋아서 하는 건데 왜 하냐고 물으면 좋아서 한다고 얘기하는 수밖에."

" 아니, 내 말은 좋아서 한다고 해도 돈이 안되면 안 되잖아. 자영업을 꼭 해야겠으면 차라리 다른 걸 해. "

" 으응? 다른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책방이니까 하는 거지. "

" 참나, 비싼 취미도 가지셨네. 돈을 못 벌면 그 고상한 취미도 계속할 수 없는 거야. 하긴 취미란 게 원래 돈이 많이 들지. "


감히 다른 사람의 결정에 이래라저래라 개입하는 이 사람은  인생에 관여해도 될 만큼 절친이다. 친구는 절약 정신이 투철해 허투루 돈을 쓰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생 때 입고 다니던 오래된 내 잠바를 받아다가 아직도 입고 다닐 만큼 물건을 아끼는 사람이다. 절약과 저축을 반복한 끝에 수년 전 허름한 다가구 주택을 매입했고 최근 다가구를 허물고 새롭게 건물을 지어 올려 소위 조물주 위 건물주가 되었다. 쓰러져가는 다가구 시절 집 안팎 여기저기가 수시로 고장이 날 때에도 인건비가 아깝다며 늘 직접 수리를 해댔다. 친구는 늘 치열했고 철저했다. 그런 친구의 눈에 고상한 취미 정도로 보이지 않는 책방이 곱게 보일 리 없다.


" 퇴사하면 언젠가 책방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 아휴, 책방 진짜 힘들어요. 책방은 건물주나 돼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야 유지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출판사 편집장님께 불쑥 책방 이야기를 꺼냈더니 책방은 열이면 열 폐업을 한다 하셨다. 출판업계에 계신 분까지 그리 얘기하니 정말 힘든 업종인가 보다 싶으면서도 미련이 남아 책방에 관련된 책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과연 막연하게 동경하던 책방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었다. 책방뿐만 아니라 출판 서점 유통 환경까지 꼼꼼하게 써 내려간 한미화 출판평론가님의 <동네책방 책방 탐구>는 특히  큰 도움이 되었는데 덜컥 책방을 냈다가는 일 년도 안되어 망하겠 싶다. 책방을 하면 약 월 100만 원의 임차료, 20만 의 관리비, 유지에 필요한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해 적어도 매달 백삼사십만 원은 필요한데 만 오천 원짜리 책을 삼백 권 팔면 임차료와 관리비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남는 건 제로. 내 인건비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데 매달 삼백 권의 책을 팔 수 있을 것인가? 삼백 권이 웬 말인가, 삼십 권도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집 근처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맘에 드는 자리가 보이면 마음속으로 찜을 해두었다. 여긴 월세가 얼마일까? 유동 인구는 어느 정도 될까? 여기 들어오려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여긴 어떨까, 저긴 어떨까,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장소라도 나타나면 비어 있는 공간을 도화지 삼아 머릿속으로 천장까지 닿는 책장도 그려 보 길고 커다란 테이블도 그려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찜해둔 공간에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는 걸 알게 되기라도 하는 날엔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당장 무언가를 하리란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면서  자리를 뺏긴 아쉬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용기를 내어 부동산 가게에 들어섰다. 그날은 마음속 어디선 확신이 든 날이었다.


"사장님, 자리 하나를 보고 있어요. 책방 하려고요. 이 라인 중에 제일 작은 곳은 월세가 얼마 정도 될까요?"

"책방이요? 서점 말씀하시는 건가? 아, 북까페 같은 건가요?"

"아니요. 북까페는 아니고 서점이에요."

서점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책이 주인공이 되어 반짝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서점 말이다.

"아, 이 동네엔 그런 게 없으니까 감성적인 분위기의 책방 들어오면 아기자기하고 좋을 것 같네요. 얼마 정도 보시는데요? "

"무조건 싸면 좋겠어요. 사실 책 팔아서 돈 벌기가 좀 힘들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근데 요즘 여기 지하철 개통하면서 월세가 좀 올랐어요."


사장님이 말씀해 주시는 월세로 다시 계산을 해보니 책 3백 권으로도 안될 것 같다. 이대로 책방은 영영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래 월세 말고 차라리 이자를 내는 건 어떨까? 20년 은행 생활 보상으로 받은 퇴직금을 탈탈 털어 대출을 더 받아 상가를 매입한다면 조금 승산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솔직히 그렇게 진행해도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적자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어렴풋이 예상은 된다. 그래도 이 지역은 아직 상가가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분양이 안된 상가들도 남아 있는 데다가 건설사가 조금 할인을 해 줄 수도 있다는 정보입수했다.






만약 자신의 꿈을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무모하다거나 미쳤다는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면 기뻐해도 된다. 그런 반응들은 자신에게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도전할 용기도 생긴다. 세상이 정한 기준을 위해 달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위해 달리면 평범한 삶이 아닌 더 나은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래, 당분간 올라갈 기미도 없는 이 지역에 상가를 사는 것도 미친 짓이고 금리 인상시기에 대출받고 돈 안 되는 책방을 한다는 게 무모하고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게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다른 그 무엇보다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정답이다. Invest in yourself!

결국 퇴직금은 보잘것없는 동네책방 자리를 사는데 썼다. 내가 쓴 책 <명동 부자들>의 마지막 페이지 글처럼 직접 인터뷰한 인생 선배님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낼 수 있는 나로 만들자. 절대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나를 맞추지 말고 또 다른 나를 직접 브랜딩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 목표를 위해 용기를 가지는 것,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 이 세 가지 당부는 바로 명동 부자들이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


그렇게 <그래더북>이 탄생했다.

그래도 책.

그래, The Book


요즘은 종이 책을 잘 안 읽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을 좀 읽어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위로받고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자영업은 처음이라 매일매일 일어나는 상상 불가의 세계에 놀라워하고 힘들어하고 뿌듯해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또 다른 나로 성장하는 중이다. 단단해져 가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모든 걸 실현해 볼 수도 있다.  번쯤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챌린지, 책방을 하기에 비로소 뵐 수 있는 저자분들과의 북 토크, 감성이 통하는 사장님들과 연대한 벼룩시장, 각종 독서 모임. 무엇보다 육아고민을 하며 힘들었던 월급쟁이 시절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 나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마음껏 책을 제공해 줄 수 있고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워킹맘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월급쟁이에서 전업맘, 전업맘에서 자영업자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