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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Aug 31. 2022

평일에는 안 되는 엄마

워킹맘, 퇴사의 세계

“ 아이 치아 상태를 확인해 보니 교정이 필요해요. 앞니 유치는 바로 뽑아드릴게요. 교정 시작하면 매달 병원 오셔야 하니까 접수대에서 이후 일정 잡고 들어가세요.”


교수님은 패킹되어 있는 비닐에서 보기만 해도 둔탁하고 무서운 펜치를 꺼내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앞니를 뽑아버렸다. 아이는 당황할 겨를도, 발버둥 칠 겨를도 없었다. 앞니가 2개씩 붙어서 내려오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고민이었는데 둘째 아이의 치아 상태는 역시 좋지 않았다. 동네 치과에서는 앞니가 서로 붙어 있어 마취도 해야 할 것 같고 전체적인 교정이 필요해 보이니 대학병원을 가라고  했다. 대학 병원은 잠시 짬을 내고 갈 수도 없거니와 토요일 진료도 없기에 연차를 내고 방문한 터였다. 그 해 마지막 연차였다. 가을 무렵이었나..


“네? 매 달이요?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올해는 더 이상 연차도 없고 올 수가 없는데,, 어쩌죠. 꼭 매달 와야 하는 건가요?”

“네, 어머니. 교정은 매달 와서 체크를 받으셔야 해요. 정 시간이 안되면 오실 수 있을 때 다시 오세요.”     

동네병원에서는 마취까지 해야 한다던 발치를 순식간에  버린 교수님은 엄마인 나를 흘깃 쳐다보며  대답하셨다. 둘째 아이 앞니 유치는 두 개씩 붙어 나오는 바람에 늘 충치 걱정을 해야 했고 뒤이어 내려오는 앞니 영구치는 2개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치아 배열도 뒤죽박죽이라 교정이 꼭 필요한 상태였다. 집 근처에는 소아를 전담으로 하는 치과병원이 없어 먼 서울대 치과병원을 어렵사리 방문한 거였다. 집에서는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

    

그 해 휴가는 다 써서 다음 해로 미룬다 하더라도 일 년에 13일밖에 없는 휴가를 매월 한 번씩 열두 번 죄다 치과 치료에 쓸 수도 없는 일이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교정 치료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아이의 치아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물론 꼭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근처 교정을 잘하는 치과 병원을 갈 수도 있지만 동네 치과 선생님께서  '대학병원'이라고 말씀하셨고 머릿속에는 이미 '대학병원 치료'라는 메모리가 박혀버렸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속상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퇴사 후 바로 아이를 데려가 교정 접수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교정 진료를 받느라 왕복 세 시간이라는 시간을 들여 가면서도 좋았다. 아이 역시 병원은 싫지만 엄마와 단 둘이 몇 시간이고 얘기하며 어딘가를 간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듯했다.


"엄마, 입을 크게 벌리고 사진을 여러 번 찍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어요. "


    




퇴사 후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책을 출간하며 많은 도움을 받은 출판사 편집장님과 에디터님과 식사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띠링' '띠링'


모르는 번호라 그 저녁시간에 몇 번이나 휴대폰이 울려도 무시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 oo어머니 되시죠? oo가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떨어져서 119를 불렀습니다. 문자 보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소주 몇 잔에 살짝 어질 하던 찰나 갑자기 알코올 기운이 확 달아나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얼마나 다쳤길래 119가 온다는 거지? 달려 나와  모르는 번호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마스크로 눈을 가리고 놀다 미끄럼틀 위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119를 부르긴 했지만 움직일 수 없어 찬 바닥에 누워 있고 바들바들 떨고 있어 담요로 덮어주셨다 한다. 10살이라 놀이터 정도는 일일이 쫒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고, 엄마는 저녁 약속이 있으니 놀고 있으라 하고 나왔는데 이런 큰 사고가 나다니 말문이 막혔다.


119 차량에 탑승할 보호자도 없어 동네 친구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엄마들 모임에 잘 나가지도 않는 인간에게 급할 때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있던 동네 친구는 그 길로 놀이터로 달려가 주었고 못난 어미 대신 119에 올라타 병원에 가는 내내 핫라인이 되어 주었다. 전업맘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119에 실려갈 정도로 다쳤다는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달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순간에 엄마가 곁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를 낼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오히려 마스크로 눈을 가린 사실이 혼날까 눈치를 다. 그래도 엄마가 오니 한결 편안해 보여 안심이 되었고  팔이 부러진 채 누워 있지만 말이 많은 걸 보니 나도 안심이 됐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돌려보낸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출근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반사적으로 엄마 아빠 중에 누가 휴가를 낼 수 있을지, 주위에 도움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머리를 쥐어짜 내는 게 일상이었다. 휴가 내기도 힘든데 아이가 이렇게 다쳤다면 어땠을까 싶어 간담이 서늘했다. 직접 아이를 보살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 또 감사했다. 당분간 깁스한 상태로 병원도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 집에 있는니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옆에서 밥도 떠 먹여 줄 수도 있고 세수도 시켜줄 수 있고 도 닦아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 oo가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다 공을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팔을 다친 것 같아요.”      


둘째 아이가 깁스를 풀자마자 중학생인 큰 애 선생님 전화가 왔다. 그렇게 둘째가 깁스를 풀자마자 큰 아이가 깁스를 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왼팔이고 중학생이라 제법 혼자 이것저것 해낸다. 그래, 내보살펴 줄 수 있으니 이번에도 다행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아들 둘을 키우는 지인 인스타그램 사진에 피식 웃음이 났다. 두 아들이 나란히 기브스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퇴사라도 했지 워킹맘인 이 엄마는 얼마나 속이 뒤집어질까 싶었다.


"어머니, 아이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는데,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그 정도인가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단순한 두통으로 이런 전화까지 하실리는 없는데 뇌가 어디 잘못된 거라도 아닌가 싶었다. 바로 학교로 달려가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태워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 정도면 동네 병원에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코로나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싶었고 막히는 신호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아이가 미열이 있는 바람에 한 자리 남아 있던 코로나 병동에서 신속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특이사항 없는 단순 두통으로 판명이 나긴 했으나 은행에서 손님 상담 중에 이런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등골이 오싹했다.


“엄마, 침 삼키면 목이 아파요.”

“엄마, 열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엄마, 배가 아파요.”     


이 정도로 아픈 걸로는 평일에는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아이가 웬만큼 아프지 않고는 평일엔 병원갈 수 없는 워킹맘이니까. 식사 정도 챙겨주시는 이모님이 계시긴 했지만 근처에 소아과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아픈 아이를 걸리고 버스도 태우며 병원까지 가기 무리가 있었다. 언젠가 꽁꽁 언 바닥에 이모님이 넘어지시며 둘째 아이가 함께 미끄러지는 바람에 얼굴 한쪽이 완전히 까져버린 적이 있었다. 이후로는 정말이지 끙끙 앓아눕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병원은 주말에 엄마인 내가 데려갔다. 초반에 잡았더라면 이 삼일 약 먹고 금방 나았을 경미한 감기도 결국 항생제 처방까지 받는 날이 허다했다. 소아과 선생님께는 평일에는 올 수가 없으니 약을 최대한 많이 주십사 말씀드렸다. 워킹맘이라 평일에 올 수가 없다 입버릇처럼 말하며 말이다. 그리곤 토요일이면 병원 투어를 하느라 황금 같은 주말을 병원에서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젠 아프다고 하면 바로바로 병원을 갈 수 있어 정말 감사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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