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신장부터 시작해서 범도, 대도.. 이런 순서로 수련을 하다 보면 마치 수학의 정석 중 집합 부분만 새까맣게 공부하던 습관이 떠오른다.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많은 학생들이 그렇다고 한다..) 기천 수련을 무엇부터 시작하는가 하는 질문이 어느 단체에게는 차마 불경한 질문일 수 있지만 어느 단체에게는 본질적인 질문일 수 있고 기천이 무엇을 수련하는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천 행공 중 아크로바틱 하기가 으뜸이라 처음부터 선뜻 해보라고 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로 삼수발차기를 꼽을 수 있다. 요즘은 기예에 가까운 태권도 영상이 많아서 감흥이 덜 할 수 있으나 기천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삼수발차기는 여전히 쉽게 체득할 수 있는 동작이 아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삼수발차기.. 자유롭게 갖고 싶다.
삼수발차기 2019.2
삼수발차기를 처음 배웠던 때가 학교 졸업을 앞둔 2004년 즈음이었으니 올해로 16년째 하고 있는 셈인데 앞서 얘기했듯 지금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다. 선배들에게 그 명성을 자자하게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렇게 경외하는 삼수발차기를 무심히 받아들이고 무작정 하다가 문득 이것이 발로 하는 대풍역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팔을 순차적으로 대각선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대풍역수가 허리의 탄력을 축으로 강한 힘을 갖는다면, 삼수발차기는 공중에 던진 몸의 회전력과 떨어지는 중력으로 두 발을 순차적으로 사선으로 꽂는다. 단 한 수로 이렇게 어마무시한데 이걸 농악의 자반뒤집기처럼 계속 차고 갈 수 있고 연비파문燕飛波紋 이라고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돌제비가 수면 위에 파문을 내듯 뛰려면 몸이 얼마가 가벼워야 하는 것이냐.
이 정도 해야 삼수발차기를 연비파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삼수발차기가 기천 '3수 발차기'라는 것은 나중에 3수를 배우면서 알았다. 3수를 배우기 전에 삼수발차기를 먼저 배웠던 것이니 선배님들의 은총에 감사를.. 자,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이 있으니. 천강권에서 상박권 들어가기 전 발차기가 실은 삼수발차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그 자리에 삼수발차기가 들어가려면 연달아 좌우로 한 번씩 해야 다음 동작이 연결되는데,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싶다. 이제 나이가 40이 넘어서 몸도 무겁고 엄두가 안 나니 슬쩍 흉내만 내보고 있는데, 20대 초반 팔팔한 청년이 입문해서 볼 수 있음 좋겠다. 와이퍼로 치고서 펄쩍 뛰어 뒤로 찬 후 바로 앞으로 차는 연비파문을. 그러려면 갓 입문한 청년에게 삼수발차기와 천강권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데..
수련이 이쯤 되고 보니 한 수 다음의 연결을 융합? 응용? 할 수 있는 눈이 뜨인다. 3수에서 발차기 후 소도로 앉는 자세가 천강권 발차기 후에도 완전히 동일하게 나오는 것을 눈치챘는데, 그렇다면 이후 연결을 3수 흐름으로 할 수 있고 또는 천강권 흐름으로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로 잡스식의 창의력이 아닐 수 없다. 자화자찬이 아니고, 구글의 시대에 인간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폭넓은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