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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29. 2023

순식간에 사방이 어둑해지니

[들개와 노견] 2부 1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포인핸드(유기동물 입양 어플)에 망고의 입양 공고가 올라왔다. '개체관리번호 2111이 여기서 불리는 네 이름이구나.' 동물보호센터 직원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로 사진이 찍힌 망고의 모습을 보자 포획 당일부터 집에 데려오기까지의 지난 일들이 필름 영사기처럼 머릿속에서 돌돌 구른다. 포인핸드를 함께 보던 부서장이 '관심 하트'를 많이 받은 동물은 어떻게 입양이 결정되냐며 묻는다. 얼마 전까지 밥을 구걸하며 제 앞을 지나다니던 녀석(망고)은 어쩌고, '예쁜' 고양이를 입양하겠다고 사진을 뒤지고 있는 것을 보니 기가 찬다. 입양 희망자가 줄을 선 생명을 왜 경쟁하면서까지 데려오려 하는가.



그는 단지 궁금해서,라고 내게 말했지만 일전에 키우던 고양이를 원래 주인이 달란다고 줘 버리고, 부서에 17살 어린 20대 초반의 신입 여직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더니, 이제는 경쟁이 치열한 입양 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묻고 있는...... 중년의 철부지 상사를 목전에 두고 나는 밥벌이를 위해 차오르는 말을 삼킨다.('궁금하다'라는 그를 위해 훗날 동물보호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경쟁이 치열한 아이는 입양 희망자들을 한날한시에 센터에 모아 놓고 추첨을 한다고 했다). 이때 카페 사장이 올겨울에 찍은 망고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온다. 고작 두 달 전인데 어찌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극명하게 다른 두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긴다.



두 달 전 망고
현재의 망고






          새벽에 달아났던 잠이 출근을 하니 쏟아진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차장에서 선잠이 들었다. 사장이 꿈에 나와서 회사를 떠돌던 개(망고)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이름을 내게 물었다. "그 개 이름을 '고기'라고 지었어요(*1부 2화 참고)"라고 말하려다가 잠에서 깼다.



업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페 사장이 카푸치노 한 잔을 조용히 프런트에 놓고 간다. 망고의 안부가 궁금한 것이다. 잘 있어요,라고 눈으로 답하니 뒤이어 (오늘 아침) 꿈에 등장했던 회사 사장이 커피를 가리키며 웬 것이냐고 묻는다. 카페에서 주었다고 말하자 "개 치워줘서 고맙다고 주대?"라고 한다(사장은 내가 망고를 신고한 것만 알고, 데려간 사실은 모른다). 치우다니, 목숨을......  경솔한 입이 재앙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가라고 저주했다. 놀랍게도 며칠 후, 서로 재혼 약속을 했던 사장의 여자친구가 육지에 있던 사장의 짐(캐리어)을 택배로 보내며 이별을 알려왔다. '진짜 치움을 당하신 건 너예요' 망고가 이긴 것 같아서 퇴근을 하자마자 망고에게 부상으로 구운 계란을 내렸다.



망고가 이긴 날



동료들이 망고 소식을 물으며 간식과 사료 지원 의사를 밝힌다. 이번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안다. 영혼 구제에 일조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단지 한 번이라 할지라도 망고의 배를 채우고 살찌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사한 일이다. 이외에도 가지각색인 반응들이 이어졌다.



일상에서 마주친 한 장면에서 누구는 외면하고, 누구는 도움을 주고, 누구는 말만 주고, 누구는 말보다 못한 것을 주면서 저마다 다르게 나를 가르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그 일을 대하는 진심의 순도(純度)에 대하여, 그 순도가 어느 정도일 때 삶이 숭고해지는지를, 매일 고민하면서 내 의식은 차츰차츰 자라고 있었다. 다음 날 유기견 포획 담당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미약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더 미약한 생명을 어루만지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값진 경험 중입니다






          루바와 우유, 망고 그리고 나까지 처음으로 넷이서 목장 산책을 나선다. 그런데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신이 나서 조수석에 가뿐히 뛰어오르는 우유 뒤로 망고는 산책인지도 모르고 벌벌 떤다. 차를 탄 기억이라고는 포획 트럭과 내 차로 동물보호센터를 오간 기억뿐이니 당연하다. 우유처럼 폴짝 스스로 차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면서 강제로 망고를 안아서 뒷좌석에 태운다. 불안한 망고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시동을 걸자마자 멀미를 시작하고. 내 소중한 생애 첫 차가 수도꼭지를 튼 망고의 침으로 축축이 젖어간다. 맑은 날 함께한 첫 목장 산책...... 망고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수도꼭지 차멀미
처음 떠난 목장 산책






다가오는 내 생일에 선언니와 필오빠가 열흘 전부터 선물을 시리즈로 쏟아낸다. 목장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니 오늘은 마당 잔디밭에 '가족 인형'이 있다. 토끼 인형 세 마리에 곰 인형 한 마리. 다르게 생긴 한 놈(곰)을 망고로 정하고, 오후에는 선언니와 필오빠와 성산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통유리창을 통해 근사한 바다뷰를 파노라마로 감상하며 죽기 전 다시 먹을까 싶은 고급 음식을 영접하고, 이후 반나절 동안 바다와 산과 시내로 이어지는 드라이브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감격적이었던 기름진 음식은 결국 우리의 뱃속에서 너울처럼 울렁거려 저녁식사는 얼큰한 순두부찌개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을 지는 바닷가에 필오빠가 차를 세운다. 오늘따라 유독 검붉은 빛깔...... 순식간에 사방이 어둑해지니 집에 있을 망고 생각이 난다.



김녕해수욕장과 세화 노을






집에 도착하니 제집 '안'에 있던 망고가 꼬리를 살짝 치며 나를 반기러 나온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은 내 허벅지에 비스듬히 얼굴을 묻고 가만히 눈을 깜빡인다. '외로웠구나......' 망고의 머리를 감싸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가족 인형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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