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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l 01. 2023

서투른 목숨들

[들개와 노견] 2부 3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청소 집게 사건(*2부 2화 참고) 이후 집에 들어가자마자 거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니 우유가 살가운 고양이처럼 내 다리를 문대며 주위를 뱅글뱅글 돈다. 차갑기 이를 데 없는 녀석이 나의 심기에 이상 신호를 감지하면 잠시 성격 개조 서비스를 해주신다. 울컥하여 우유에게 바싹 엎드린다. 합장한 손바닥 끝을 우유의 앞다리 사이에 쏙 넣고, 내 머리를 우유의 얼굴 옆에 놓는다. ......안기고 싶다. 고작 내 머리통만 한 우유에게 잠시라도 안기니 하루의 시름이 덜어지는 것도 같은데 어, 우유의 목덜미가 발갛다. 작은 얼룩이 보여서 손으로 집어 본다. 악, 말로만 듣던 진드기다! 내 고함에 놀란 우유가 나를 걷어차고 자리를 뜬다.



날이 더워지고 바닷가 습도까지 더하니 한 번 본 적 없는 벌레들이 섬에 바글거린다. 그래도 ‘진드기’라니...... 그동안 뉴스에서만 보았지 진짜 진드기를 마주하니 몸통은 깨소금 한 알보다도 작은데 다리는 현미경을 들이댄 듯 거대한 괴물의 집게발로 보인다. 고개를 홱 돌려 걱정스레 우유를 본다. 저 새키가 나 물었어요,라는 억울한 눈빛으로 날 보는 우유. 그 눈총을 맞으니 불현듯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망고 일에 정신이 팔려서 한 달에 한 번 심장사상충 예방약 먹이는 걸 깜빡한 것이다. 외부기생충 예방 기능까지 겸하고 있으니 서둘러 약품 선반에서 우유와 망고의 약을 꺼낸다.



약을 고기 조각처럼 잘 먹는 우유. 오래 지나지 않아 이것이 지극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퉤, 망고가 약을 뱉는다. 퉤, 다시 시도해도 같다. 집게 사건 때문인지 오늘은 족족 나를 거부하는 망고. 땅바닥에 떨어져 망고 발에 차이는 약을 들고 망고에게 진지하게 고한다. “방금 네가 뱉어낸 손톱만 한 알약 하나가 만 원이 넘어. 그 돈을 벌려면 난 프런트에서 AI가 되어 고객에게 수십 마디를 해야 해.” 너 건강을 생각해서......라는 착한 회유는 집어치우고 현실감 있게 설득을 시도한다.



망고가 헉헉대는 틈에 쪼갠 약을 다시 입속에 툭 넣는다. “(카악) 퉤.” 침을 그러모으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진심 어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따위로 나오다니. 산 넘어 또 산, 이면 한 번 더 넘으면 될 일이다. 그래 지금부터 너와 나의 전쟁이다. 망고에게 보여주려고 망고가 날린 알약보다 훨씬 멀리 내 침을 쏘아 올렸다. “카악~~~ 퉤!”



바로 ‘개 알약 먹이기’를 검색한다. ‘한 손으로 위턱을 잡고, 입을 위로 벌린 다음, 다른 손으로는 아래턱을 내리고, 목 안쪽 깊숙이 약을 넣......’, 느니 차라리 소 입을 벌리겠어요. 지나친 용기가 필요한 시도는 더 이상 서로의 정신건강에 해로울까 봐(난 이미 하루치 용기를 다 썼다) 폰을 끄고 우유와 마트로 직행한다. 바나나와 소시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에 렌터카가 부쩍 늘었다. ‘여태 망고가 떠돌았다면, 다치거나 신고를 당했다면, 사고로 죽었다면......' 끔찍한 상상이 들이치니 그저 살아 준 지금이 감사하다. 알약에 받친 고약한 기운을 내려놓으라고 나를 나무라며 집으로 간다.



살아 준 지금이 감사하다






상냥한 얼굴로 망고 앞에 선다. 그리고 보물찾기 종이를 감추듯이 수줍게 돌아앉아서 바나나에 알약을 꽂는다. 퉤! 망고에게 친절하자고 다짐한다. "제주산 바나나도 나오는 시국인데 우리 망고가 외국 과일은 처음이구나.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번에는 소시지에 알약을 푹 박는다. 퉤! 역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영문을 모르면 방도를 바꿔야지, 부엌으로 가서 전투적으로 솥에 물을 받는다. 그리고 끓는 물에 풍덩풍덩 닭을 빠뜨린다. 방금 전 침을 뱉던 양아치는 어디 가고 어느새 콧구멍을 발랑이는 망고. 이 모습을 집안에서 확인한 후, 나는 부엌 벽에 걸린 요리용 ‘집게’를 꺼내 들고 실실 쪼개며 망고에게 간다. ‘아, 진짜 오늘 나한테 왜 이러는데!’ 집게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제집 뒤편으로 숨는 망고.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기 집게를 딱딱 부딪치며 느긋하게 손부채질까지 한다. 그리고 집게에 닭기름이 배도록 냄비 속에 담갔다 빼기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알약을 넣은 큰 살점 하나를 집어 들고 망고가 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린다. 숨어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망고. 콧구멍은 더 크게 열리고, 줏대 없는 발은 갈까 말까 말썽인데. 나는 승부사처럼 망고에게 최후의 말을 전한다. “망고, 잘 들어라! 이 세상에 집게는 ‘고기 집게'뿐이다. 앞으로 집게는 고기를 삶거나, 고기를 바르거나, 고기를 나르거나, 고기를 먹거나, 고기를 버릴 때만 쓰겠다.” 집게가 고기를 집었는지 고기가 집게를 집었는지 헷갈리도록 내 손이 망고의 눈앞에서 나풀거리던 찰나 마침내 내적 갈등이 끝났는지 요동치던 망고의 발걸음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나의 선언에 동의한 듯 망고가 집게에게 아니, 고기에게 한 걸음씩 다가온다. 알약 먹이기 성공이다!



청소 집게를 무서워하는 트라우마가 단 하루 만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삶은 닭을 1분 30초 만에 해치우는 망고를 보니 '특징은 트라우마 많기, 특기는 트라우마 낫기’, 인 개처럼 원래 내가 알던 얼굴로 돌아온다. 그 얼굴이 너무 반갑고, 망고가 기특해서 이 세상 집게란 집게는 몽땅 모아 망고집 현관에 대나무발처럼 걸어주려 했다(가 역효과가 우려되어 시도에만 그쳤다).           



신들린 먹방


나름 극복 중입니다






          치솟는 의지와 달리 내 몸은 완전히 지쳤다. 하루 네 번의 산책과 부족한 수면, 불균형한 식사로 날이 갈수록 살이 빠졌다. 뱃속에 삶은 닭을 품고 어제보다 똥똥해진 망고를 바라본다. '언제가 목장에 망고를 풀어놓고 숨은 망고 찾기를 해야지. 소 무리에 섞인 살찐 망고를 종일 못 찾고 싶어.'라며 망고의 회복을 비는 순간, 난 여태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밥이고 뭐고 도무지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요즘은 내 입에 밥을 넣는 일이 가장 힘들다. 힘들다,는 말조차 사력을 다해야 나올 지경이다. 육신이 가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문득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떠돌던 개를 내가 데려간 것을 알게 된 회사 직원들이 “내빌주 무사돌앙감시니(내버려두지 왜 데려갔냐)?"라고 타박할 때마다 '밥 먹이려고요',라고 속으로만 답할 뿐 한 번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고, 폭포처럼 쏟아질 방언을 쳐낼 재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제주 어르신들은 개를 가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망고는 사람과 똑같은 목숨이 아니다. 내가 정말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고 있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마실 물까지 돈으로 사고, 개인 폰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고,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공유하며, 내 손발을 대신해 주는 기기가 눈만 뜨면 새로 등장한다. 구하려는 정보를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도 단숨에 찾아버리는 시대, 기기는 ‘꼭’ 갖고 싶지만 인간은 ‘굳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 지금도 세상은 매섭게 달라지고 있다. 사람의 진심은 얕아지고 고독은 깊어졌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해 온 개(고양이)의 진심은 전과 같이 그대로다. 변해 버린 인간의 마음이 변함없는 동물의 마음을 갈겨놓아 이들은 길을 잃고 세상을 유전한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나에게 개를 자식(가족)으로 삼는 사람들을 유난하거나 미쳤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을 잘 알았어요.” 인간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하는 바가 저마다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동물 애호나 동물 혐오를 두고 논할 해박함은 나에게 없다. 다만, 어느 개가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따져 묻는다면 인간도 마찬가지의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텔 로비에서 아이들이 악다구니를 쓰면 그 부모는 더 큰 목소리로 소음을 유발한다. 부모가 인사성이 좋으면 아이들도 프런트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유전과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다양한 인간 부류가 존재하듯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 어떤 견주에게 훈련을 받았는지에 달린 것이다.



그동안 내가 두 마리의 개(우유와 망고)를 키우며 남에게 피해를 단 한 번도 주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대에서 어쩌다 피해를 가하고, 피해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는 서투른 목숨들일 뿐. 어제는 살 만하다가도 오늘은 죽을 만큼 힘든 세상살이에 다 같은 목숨끼리 개라서, 인간이라서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를 찾아온 '목숨을 맞이하는 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내가 힘들 때 찾아간 이가 내 목숨을 어떻게 여겨주면 좋을지’를 반대로 생각해 본다. 그러면 망고는 나에게 단 하나의 의미만 남는다. 망고는 '내게 온 소중한 목숨'이다.



내게는 소중한 목숨



잠잠했던 심연이 활개를 치자 묽은 종이죽처럼 정신이 자꾸만 헤어진다. 텅 빈 뱃속은 바다에 던져져 하염없이 떠내려가고...... 망고를 만나기 전 심연의 섬에 다시 표류하기 직전이다.

이제는 '나를' 구할 때가 왔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새 글은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로 태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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