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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l 03. 2023

내가 지키지 못했던 S에게

[들개와 노견] 2부 5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지하철 역사에 사람들이 쏟아진다. 오전 9시 10분 전, 역사 안팎은 수업을 듣기 위해 종종걸음인 학생들로 가득하다. 교차로 횡단보도에 녹색의 동시 신호가 들어온다. 그곳에 학생들을 비집고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한 사람, S가 있다. 종로3가역에서 환승을 하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내리자 출근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대한 바통처럼 서로를 부딪치며 지난다. 몇 개의 물길로 덩어리져 가는 인파를 거슬러 S는 강원도행 버스를 탄다. 고속버스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하루 두 번 운행하는 마지막 마을버스에 아슬하게 몸을 싣는다. 2004년 늦은 봄, S는 강원도 정선의 첩첩산중 오지를 걷고 있었다.



S는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형제에게 폭행을 당했다. 공포에 질려서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폭행이 끝나고 그가 방에서 나가자 S는 곧장 방문을 잠갔다. 머리카락이 뜯기고 입 밖으로 핏물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귀보다 심장을 더 크게 때려 부쉈다. 

이후, 폭행이 또 한차례 일어났을 때 S는 자신이 인간에 의해 죽을 수도, 인간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정신은 파괴되었고, 더 맞을 힘도 바닥났다. 집을 떠났다. 남쪽에서 태어났으니 북쪽으로 갔다. 가능한 점점 멀리. ‘온몸을 두들겨 맞을 만큼 자신이 잘못을 했나’ 머리에 구멍이 날 정도로 생각했다.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 되자 이번에는 구멍 난 머리에 누군가가 불을 지르고 그 구멍을 막아버린 것처럼 고통스럽게 머리가 녹아내렸다. 



고향과 멀어질수록 형제와 가까이에 살고 있는 부모와도 덩달아 멀어졌다. 어떤 부모 자식 간보다 친밀한 관계를 꿈꾼 S였다. 하지만 부모와 가까워지니 형제와 떨어진 거리도 덩달아 좁혀져서 소름이 끼치고 두려움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부모와 형제, 둘 중 하나의 관계만 가까이 취한다는 건 풀지 못한 숙제가 되어 이후 10년 동안 S를 괴롭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어하지 못한 스스로를 용서해도 된다는 사실을, 부모와의 거리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번뇌를 이기는 동안 S는 혼자였다. '혼자'에 최선을 다하면 모든 번뇌가 벗겨지고 마지막에는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사는 동안 학교에 박히지 못하고 오지를 떠돌았다. 대리석보다 푹신한 흙이, 조명보다 새까만 밤이, 노랫소리보다 바람이 일으키는 소리가 편했다. 무엇보다 인간이 없는 곳에서 민낯의 자신을 대면하고 싶었다. 답을 찾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채로 10년이 되던 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스스로를 더 외진 곳에 가두고 벌을 주고 싶었다. 충청도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 캐리어 하나와 장우산 하나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것이 S가 가진 짐의 전부였다.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동안(연장 근무가 다반사였다) 병원 수액의 포장 비닐에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 하루에 같은 동작을 적게는 3천 번, 많게는 6천 번을 반복했다(일주일 중 최고 생산량은 6,337개였다). 6개월이 지나자 다행히 자신을 내리누르던 번뇌가 종이비행기를 접은 색종이처럼 단조롭게 날아갔다. 그곳에서 한 번의 연애를 했다. 



공장을 그만두고 두 번째 연애를 한 남자와 인천에서 6년을 함께 살았다. 어느 날 그가 길거리 애견숍에서 생후 4개월 된 흰색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아들의 명의로 진 빚이었다). 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물정 모르는 S가 그에게 해결해 보자는 소리를 먼저 했다. 이후 6년 동안 죽기 직전까지 일을 했다. 돈 버는 기계처럼 벌고 갚기만을 반복했다. 빚의 액수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의 길이가 1밀리라도 줄어드는 것이 오직 희망이었다. 그의 개인 회생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S의 명의를 빌려서 살던 남자의 인생에 다시 본래의 이름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곁으로 떠났다. 



그의 삶을 제 삶이라 여기고 안았는데 부모를 원망하고 증오하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토록 미워하던 가족의 품으로 갔다. 남은 빚 때문에 아직은 먹고사는 일이 힘에 부친다며 제 손으로 데려온 강아지를 D에게 키우라고 떠밀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S는, 훗날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을 탓하며 남자를 원망하며 살거나 반대로 남자 역시, S의 청춘을 앗아간 죄책감으로 살아갈 바에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서 한 사람만 따르는 개처럼 한참을 그에게 매달리고 연연했다.



버림받은 처자식 꼴을 하고 공항에서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던 날, 오랜 시간 케이지 안에서 힘들어하는 강아지를 울음을 참으며 달랬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신을 차리자고, 강아지와 자신을 지켜내자고 눈을 부릅떴다.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 갔으니 이번에는 북쪽을 떠나 고향보다 더 먼 남쪽으로 갔다. 가본 적 없고, 연고도 없는 겨울의 섬. 강아지를 데리고 회사 기숙사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성산의 귤밭 마을에 방 한 칸을 구했다. 밤낮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껌껌한 밤에도 희미한 새벽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오지를 여행했던 S에게 어둠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족보다도 친근했다. 



섬에 오니 어느새 긁혔던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고 찔린 기억이 아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외진 곳을 찾아들어도 밥벌이는 해야 했고, 역한 인간이 득실대는 회사는 소란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찌든 습도까지 더해진 미세먼지에 괴롭기도 육지와 마찬가지였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섬에서 나가지 않았다. 섬에 오니 우주 자체가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는 더 외진 우주로 가고 싶었다. 

거꾸로 거스르는 세계에서 S는 갓 잡아 올려 비늘을 쳐낸 물고기처럼 마침내 생살이 시뻘게진 벌거숭이가 되었다. 비로소 자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비를 맞고 웅크린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처음 만난 겨울의 섬






          망고를 때리는 세찬 비를 허리를 숙여 막는다. “망고야!” 외쳐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는다. 빗물에 다 젖은 털을 보니 저승에서 죽음 직전의 개를 데리러 온 것처럼 망고 주위에 검은빛무리가 돈다. 비를 맞고 죽은 강아지가 있었던가? 지나간 뉴스를 떠올려 보다가 앞뒤에서 녀석을 살피는데 만지기가 겁이 난다. “망고야!” 다시 한번 망고의 귀에 대고 고함을 치자 그제야 실눈을 뜨는 망고. “귀가 먹었냐! 죽은 줄 알고 놀랐잖아!” 그 자리에서 십 년 늙은 나를 아무렇지 않게 보는 녀석. “집을 두고 왜 비를 맞냐고, 이 지지리 궁상아~” 망고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데 순간, 등짝을 얻어맞은 기분이다...... 비를 쫄딱 맞고 있는 녀석의 상태는 아무렇지 않다. 길을 떠돌 때부터 녀석은 비가 오면 바닷가 풀숲에서 혼자 태연히 비를 맞고 잠든 것이다. 한두 방울 떨어지면 도시에서는 우산부터 펼쳤다. 비에 젖는다는 건 측은하고 처량한 일, 그래서 재빠르게 빗물의 흔적을 털고 닦기 바빴다. 그러나 지금 망고에게 비는 아무 상관없는 일. 그 말인즉, 비가 오기 때문에 산책을 거른다는 공식은 녀석에게 성립되지 않는다. 역시나, 산책을 나가자고 녀석이 뻐근한 몸을 일으킨다. 



망고와 폭우 아래를 뛴다. 빗속을 뚫고 달리는 망고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도 의연하다. ‘과거'라는 비를 맞은 나를 이제는 슬피 여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때, 눈앞에 과거의 내가 나타났다. 처절히 기다린 이 순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 말했다.



“쏟아지는 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가만히 맞고 너를 지켜냈어.” 

 


나는 나를 지켜냈다.



비를 맞는 망고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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