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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30. 2023

웃어도 그 안이 보이지 않아서

[들개와 노견] 2부 2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밤 11시, 망고가 운다. 하루 두 차례인 산책에 길들지 않아서 용변 조절이 힘든 것이다. 참다 참다 잔디밭에 일을 볼 법도 한데 제집 마당에는 오줌 한 번 지리지 않는다. 잔디밭 곳곳이 오줌(똥)밭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나는 이 길거리 출신의 신사견 덕분에 지린내 없는 청결한 마당을 누린다. 깔끔을 떠시겠다는데 나도 협조를 해야지, 밤산책을 나선다. 산책이 수월해진 것은 기분 탓일까. 전처럼 네 발을 막무가내로 휘저으며 저 혼자 앞장서지 않는다. 오늘따라 밤배의 등불은 수십 개의 자동차 상향등을 동시에 켠 것처럼 또렷하고 눈부시다. 녀석과의 휘황한 앞날을 의미하는 걸까.



밤 11시 50분, 힘들지 않게 산책을 마치고 평화롭게 잠든다. 그런데...... 새벽 2시, 망고가 운다. 역시, 방심은 이르다. 나가보니 목줄을 묶은 쇠기둥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나무에 줄이 자꾸 감겨서 쇠기둥으로 바꾼 것인데 녀석이 힘으로 넘어뜨린 것이다. 쓰러진 받침대에 줄이 꼬인 채 꼼짝 못하고 있는 망고. 이후로도 새벽 4시, 새벽 5시......  세우면 넘어뜨리고, 세우면 또 넘어뜨리고 꼭두새벽에 팔근육이 펄떡 선다. 이 무거운 돌을 쓰러뜨릴 만큼 망고의 힘이 자랐다고 생각하니 빼앗긴 잠도 억울하지 않다(새벽 6시까지는 그랬다).



새벽 6시 5분. 마지막으로 쇠기둥을 넘어뜨리고 구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나의 너그러움도 함께 자빠진다. 현관문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야!!!" 내 얼굴을 본 망고가 성난 호랑이를 본 듯 정지한다. "잠 좀 자자고!!!" 아파트 층간 소음에 버럭하여 위층에 쳐들어간 사람 꼴이다. 일주일째 잠 부족에 시달리니 이성은 비뚤어지고 인성은 망가진다. '왜 이래, 나한테 친절했잖아~', 하는 표정으로 금방 시무룩해진 망고. 바로 성질을 죽이기가 민망해서 찢어진 눈을 하고 속으로는 딱 두 시간만 자게 해달라고 빌면서 문을 닫았다.



이만큼 망고의 힘이 자란 것이겠지



오후에 집에 들른 루바가 쇠기둥과 망고집 어닝을 손봐준다. 이 남자가 있어서 삶이 나아가진다. 그리고 희멀건한 망고의 죽은 털을 빗질해주는 루바, 둘이 몹시도 다정해 보여서 깜깜했던 앞날에 불이 켜지려다가 그것도 잠시, 루바에게 넘겨받은 빗이 내 손에서 툭 동강난다. 불길한 조짐이 피어오르는 이때, 루바가 부러진 빗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망고에게 줄 뼈다귀 간식을 가방에서 꺼낸다. 순식간에 간식을 몽땅 해치운 망고. '그래, 빗을 부러뜨릴 만큼 네 털이 강해진 것이라고 착각하자.'



빗이 약한 걸까, 망고 털이 세진 걸까
뼈다귀 먹방






          루바가 제집으로 돌아가고 서둘러 목장 갈 채비를 한다. 차 앞에서 주저하는 망고를 억지로 안아서 뒷좌석에 태운다. 여전히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침은 줄줄 흐르는데. 차에 내려서 녀석은 불편한 발로도 신나게 목장을 누빈다. 행운과 불운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더라도 그럴 때마다 "같이 걷자"고 망고에게 외쳐본다. 내 기분이 말끔해지니 망고의 얼굴도 밝아 보이고, 망고와 부쩍 친해진 것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는 둘의 걸음이 막 깡충거린다. 이때! 멀리서 웬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가 우리에게 다가올수록 망고가 뒷걸음질치며 남자의 눈을 피한다. 신나서 방방 뛰던 녀석이 갑자기 겁을 먹으니 나도 당황스러운데, 망고는 당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땅속으로 파고들 기세다.



개가 자신을 보고 자지러진 모습에 남자는 영문을 몰라 망고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나는 망고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해보려 애쓴다. 하지만 꼼짝 않고 포복하여 엎드린 망고, 고개를 땅바닥에 떨구고 박힌 돌처럼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 "무사마씸(왜 그래요)?" 남자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자리를 내빼는 망고, 순간 박차고 나간 망고 때문에 목줄을 잡은 내 팔에 충격이 온다. 숨이 넘어갈 듯 헥헥거리는 망고와 어안이 벙벙한 남자, 그리고 아픈 팔을 감싼 나까지......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셋은 어쩔 줄을 모른다.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처음 보는 남자를 주시한다. 목장길 청소를 하는 60대의 왜소한 남자,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망고의 눈이 남자의 오른손에 반응한다. 망고의 시선 끝에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청소 집게다! 일할 때의 습관인지 쓰레기를 줍는 상황이 아닌데도 남자는 청소 집게를 딱딱 소리내며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망고의 눈은 겁에 질린 채로 허공에 박힌다.



"입양한 개인데 (이 개에 대해서) 제가 아직 잘 몰라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자리를 피해주세요."라고 다급하게 남자에게 소리친다. 떨떠름한 얼굴로 남자가 망고를 지나쳐가고. 길 한복판에 주저앉은 망고는 사라지는 남자에게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내가 망고 옆에 주저앉으려던 찰나, 이번에는 눈앞에 차가 나타난다! 길을 비켜줘야 하는데 망고는 일어날 생각이 없고. 목줄을 위로 당겨서 망고를 억지로 일으키자 청소 집게를 든 남자가 사라진 반대 방향을 향해 망고가 헛발질을 해댄다.



코앞까지 가까워진 차를 보고 급한 마음에 망고의 목줄을 강제로 길가 풀밭으로 확 끌어당긴다! 내 뜻도 모르고 다시 자리러지는 망고, 망고의 비명이 바다 끝까지 닿겠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나를 이상한 눈으로 훑는다. 맙소사, 흡사 동물학대 현장인 것이다. 심란해하는 운전자에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주세요'라고  아무리 무언으로 애걸해도 이날, 이 순간의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서 운전자의 거북한 눈빛은 나를 따갑게 베고 지나갔다.






청소 집게를 든 남자도, 혐오의 눈으로 나를 훑던 차도 떠나고...... 목장 입구에 단둘이 남은 망고와 나. "너, 대체, 왜......" 할 말은 찾지 못하고 한숨만 입안에 들어찬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거야, 그깟 청소 집게가 뭐라고 난동을 부리냐고.' 알고 싶은데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갑자기 녀석이 멀게 느껴진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관계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전혀 낯선 존재로 돌변한 망고.



녀석이 진정하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폭행의 기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때 당한 내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사람에게 청소 집게로 맞았을 망고의 기억 역시 그럴 것이다. 녀석의 삶에 박힌 트라우마는 몇 개나 될까. 아직 차 타기를 무서워하는 망고를 위해 차를 목장에 두고 집까지 함께 걸었다. 바닥에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집에 도착하니 2시간이 지났다. 차로 1분 거리만큼 가까운 줄 알았던 우리가 '진짜 우리'가 되는데 오늘처럼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너와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제집에 지쳐서 잠든 망고를 본다. 빗물을 등에 업은 풀처럼 무겁게 누인 몸, 그런데...... 녀석이 웃고 있다. 웃어도 그 안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울음이 차올랐다.



(산책 중) 네가 웃어도
(산책 후) 네 안이 보이지 않아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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