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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달걀이냐? 인생은 죽음 앞에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존치즈버거


To. 친애하는 코튼 킴


사비나! 한때 엄마에게 이 이름은 답답한 내면에 숨을 불어넣는 주문과도 같았지. 오늘 내가 추천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야. 엄마는 어릴 때 누구보다 사비나처럼 살고 싶었어. 벽을 뚫고 우리를 탈출한 한 마리 맹수처럼 도발적이며 자유롭게 인생을 사는 것. 다다른 곳이 지옥이어도 좋으니 나의 의지와 나의 리듬으로 가고 싶었어. 끝없이 강제된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비나의 탈주는 행위예술 같기도 했어. 오로지 자기 안의 에너지로 버티는 사람. 사비나처럼 살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되었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7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테레자,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라는 인물은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시작으로 열리는 이 소설은 몸소 영원회귀를 실천하듯 각 장이 대칭을 이루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짊어지게 되는 삶의 무게 혹은 의무, 강제된 획일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토마시, 토마시와는 정반대로 진지한 자세로 지상에 무겁게 뿌리내린 웨이트리스 출신의 테레사, 자신을 짓누르는 공산주의 사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분투하는 사비나, 그리고 그녀의 애인이자 유부남인 대학교수 프란츠를 중심으로 한 사랑 이야기야. 사랑 이야기라니 어쩐지 설레고 근사할 것 같지만, 밀란 쿤데라는 그렇게 해맑은 작가는 아니란다. 그들의 사랑을 통해 인생이라는 지리멸렬의 세계를 누구보다 세밀히 관찰할 수 있지. 책을 덮고 나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죽음이란 무엇인가 같은 심도 깊은 사유에 허덕이게 돼.


물론 그렇게 허덕이려면 책을 몇 번은 본 상태여야 하고 대부분 처음 읽고 난 후에는 “도대체 이게 뭔 소리지? 내가 지금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가?”라는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어려운 책이지만 인생이라는, 매번 다른 맵으로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어려운 게임을 생각하면 이 책이 난해할 수밖에 없음에 동의하게 되지.





거칠고 폭력적인 태도의 엄마 맡에서 자란 테레자는 고향의 작은 술집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지. 어느 날 출장으로 그 도시에 들른 외과의사 토마시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토마시는 이혼남이었고 자신의 아들마저 외면할 정도로 자기 삶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한없이 가벼운 삶을 향한 열망은 사랑에도 마찬가지였어. ‘에로틱한 우정’이라 명명하며 사비나와도 얼레리 꼴레리 같은 요상한 우정 관계에 있는 바람둥이 중에 상바람둥이였지. 그런 그가 테레자를 만나며 삶이 변하기 시작해. 테레자는 토마시의 이런 습성을 잘 알아서 괴로워 하지만 두 사람은 어쩐지 서로를 떠날 수 없어. 토마시가 명망 있는 의사에서 신념을 변절하지 않은 죄로 노동자로 밀려 나는 순간과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자유로운 사람이었음을 깨닫는 죽음의 순간까지 둘은 함께 하지.


사비나는 화가야. 장마도 끝났는데 그녀 발밑엔 언제가 공산주의의 조국이 젖은 우산처럼 달라붙어 그녀를 진저리 나게 만들지. 사비나는 누구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법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지만 망령처럼 그녀의 조국이 따라와. 소설의 배경이 된 1968년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명칭의 국가였으며 공산주의가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어. 이 때문에 민주자유화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 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한 시기를 견뎌야만 했지. 사비나는 자신의 나라에서 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떠났어. 한 가정의 가장이자 교수라는 직업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프란츠는 사비나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녀가 가진 ‘가벼움’의 이미지가 무엇보다 그를 강력하게 사로잡아. 사비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프란츠는 가정을 버리기로 다짐하지만 사비나는 사랑을 위해 ‘힘’을 포기하려는 프란츠의 ‘선한 의지’에 질려 그를 떠나지. 격렬한 육체적인 사랑에 탐닉하는 사비나가 보기에 프란츠는 너무 따분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지. 프란츠는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기 위해 태국에 갔다가 강도를 만나 사망해. 4명의 인물 중 사비나만이 유일하게 생존하지.


도처에 산재한 무거움들. 외면해도 내 발끝에 찰싹 달라붙어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고뇌들. 그 무거움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어. 과거에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이젠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삶은 어떻게 이만큼 와 있지.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어.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됐을 텐데.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다시 조바심이 일어.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지지 않아도 될 짐을 지고 힘겹게 나아가지. 사람이 자기 죽는 날짜를 안다면 달랐으려나? 정신없이 살다 갑작스레 마주하는 죽음의 그림자. 친구의 부고든 간발의 사고이든 연유야 어찌 되었든 죽음 근처로 간 우리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어. 그리고 생각해. 우리의 존재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허약하다고. 생이 마치 하나의 농담처럼 나를 납작 눌러버려. 많은 사람들이 중심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치지. 삶의 중심, 나라는 존재의 중심. 무거운 돌을 괴어 종잇장이 날아가지 않게 잡는 문진처럼, 느닷없이 불어 닥치는 생의 소용돌이에 대비하듯 근엄한 얼굴로 중심을 잡지만, 사실 삶 자체라는 것이 영원히 반복되는 가벼움의 연속이라면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사실 우리가 이겨내야 할 건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이 아닐까. 이렇게 고단하게, 매일매일을 분투하며 사는데 삶이라는 게 알고 보면 먼지마냥 허무하게 날아가버리는 것이라니!





프란츠의 죽음도 그래. 죽음이라는 자체는 너무 슬프지만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면 인생이 그냥 농담과도 같아.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사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투쟁이라는 걸 하나.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여기 드러눕자!” 하고 말 수도 없는 게 인간이기도 하지.


인간이란 죽음 앞에서 수치조차 잊은 채 살고자 버둥거려. 동네 목욕탕에 불이 난 적이 있어.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옷도 챙겨 입지 못한 채 허둥지둥 바깥으로 나왔지. 지나가던 아이들은 철 모르게 웃어젖혔어. 몸을 가리느니 얼굴을 가리라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어. 이게 농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현명한 처사였다 생각해.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 그들이 걸어온 생애가 어떤 것이고 그들이 매사 근엄한 얼굴로 있었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한낱 미물로 전락하지. 영혼을 후려치는 두려움. 인간의 본성은 공포 앞에서 드러나고 그 공포는 반드시 죽음과 연결되어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만큼 가벼운 것이 없어.


니체의 영원회귀가 섬뜩하게 들릴지도 몰라. 반복해도 같은 생. 어차피 반복해도 달라질 수 없다면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과 같지. 이 삶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되려면 가벼움을 참아야 하고, 반복될 수 없음을 인지한 채 자신만의 멜로디를 엮어 내야 한다는 것. 나도 니체를 좋아해. 사탕발림 없이 우리 삶을 직시하게 하니까. 기대와 희망 따위를 품지 않은 채 나를 움직이게 하지. ‘그래야만 하니까.’ 무의미한 생이라면 그만큼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모든 게 우연이라면, 그 속에서 나만이 아는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며 또 여러 모습으로 변모하기도 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본래 타고난 특성은 남아있고 환경에 의해 성품이나 인격이 변하기도 한다는 말. 살아있는 동안 많은 실험을 해보았으면 좋겠어. 인생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무거움과 가벼움을 선택할 권리는 오로지 너에게 있어. 무겁게 살아가도 언젠가는 짐을 벗고 가벼움의 세계로 갈 수 있고 가벼운 걸음도 어떤 계기를 만나 무거움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사비나를 꿈꾸던 나는 이제 누구보다 나 자신이 테레자와 가까운 인간임을 알게 되었어. 이 깨달음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금 또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겠지. 지금으로서는 그래. 기막힌 탈주를 하기엔 책임질 것들이 많지. 그리고 나에게 부과된 그 책임을 사랑하게 되었어.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건 그만큼 사랑하는 것들이 내게 많이 생겼다는 말이겠지. 끝없이 고통받아도 지상에 발 붙이고 생생한 현실을 살고 싶어. (물론 너무 열 받을 땐 여전히 사비나를 부르며 정신의 탈주를 꿈꾸고 있긴 해.) 끝없이 바닥을 치며 상처를 입었지만 뼈가 으스러진 덕분에 요즘은 고무인간이 된 기분이야. 한데 탄성만큼 좋은 게 없더라. 무기력한 타협을 시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힘의 반동을 따라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찰지게 착취하는 법을 뜻하는 거야. 이게 다 뭔 소리냐고?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끊임없이 너를 가두는 억압들과 대치하면서. 사랑하는 나의 딸이 너무 큰 고통 속에 아파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 하지만 사람이 자기 방식의 탄력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스스로 부딪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인생은 한 번 살아. 용기 있게 부딪히고 때로는 확 갖다 박아버려. 테레자처럼 동등하지 않은 존재를 향한 연민도 있지 마. 토마시처럼 연애는 절대 하지 말고 다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끝까지 고수해. 그럼에도 마음속엔 생생한 사비나를 길러. 사비나는 프란츠의 선함을 키치라며 신물 냈지만 악랄함이 숭배 대상이 되는 요즘 같은 때엔 우리에겐 이런 시늉이라도 필요한지 몰라. 정답은 없어. 엄마도 뭔가 아는 척 하지만 10년 후엔 그거 다 개소리였다고 물리려 할지도 몰라. 나는 그저 위험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너의 뒤에서 지켜볼게. 너는 너만의 방식을 찾아.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해. 사람은 연약해. 엉뚱한 실수로 생을 마감할 수 있어. 그래서 조심해야 해. 하지만 너무 조심스럽게만 살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지. 힘을 길러 내면의 근육을 기르고 정신적 영양분을 꾸준히 섭취해. 그럼 가동 범위가 늘어날 거야. 유연하게 팔을 뻗어 너를 짓누르려는 것들과 맞서. 그리고 모두 실패해도 괜찮아. 너에겐 돌아올 집이 있어. 니체가 영원회귀를 말했다면 엄마는 집으로의 회귀를 말해주지. 걱정 말고 살아. 걱정은 걱정이 찾아올 때 해도 좋아. 내가 널 믿는 만큼 너도 너 자신을 믿길 바라. 우리는 한낱 미물이고 죽음 앞에 우리 생은 이보다 더 황당한 농담이 따로 없지. 이왕 농담할 거라면 꽤 근사한 농담이 낫지 않겠어? 어차피 이번 생은 나도 처음이야. 퇴고 불가능한 이 삶에서 실수는 필연이지. 정신없는 삶의 좋은 친구가 되자.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멋지게 줄타기하면서. 삶을 온전히 나의 것이 되게 만들자.




From. 삶의 한 치 앞은커녕 코 앞에 장애물도 못 봐서 자주 넘어지는, 덜렁이 엄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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