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런데도 또 거짓말을 하는 나약한 인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째 남편의 바람이었다.
상대방 여자는 내가 이미 너무 잘 아는, 남편의 첫 번째 두 번째 바람 상대, 그의 첫사랑이다.
이젠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익숙해졌을 정도라 웃음이라도 터져 나와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첫 번째 두 번째와 똑같이
순식간에 심장이 쪼그라들고,
그 쪼그라든 심장이 다시 안 펴진 상태로 바싹 말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간은 반복되는 아픔에 적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 번 정도는 반복에 들지 못하는 건가?
왜 오히려 점점 더 괴로운 걸까?
그의 폰을 바라보며 채 몇 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처음 바람피운 것을 들킨 건, 놀랍게도 결혼 후 반 년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의 첫사랑으로부터 카톡이 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 여자는 죄가 없었다.
그가 결혼했다는 걸 모르고 그냥 구남친에게 연락했었던 것뿐인데, 그가 결혼 사실을 숨기고 몰래 만나기 시작했던 거다.
그러다 나에게 들통난 이후, 자기가 만나던 남자가 기혼자라는걸 알게 되었고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그 여자가 무슨 죄가 있겠냐며 난 그녀를 동정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누구를 동정한 건지.. 하...)
그의 두 번째 바람 상대도 역시 그 여자였다.
이제 그 여자는 부부의 세계 속 여다경이다.
내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저 년은 천하의 ㅅㅂ년이라고 당당히 욕할 수 있는 여자가 된 거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때 이혼을 안 한 게 내 가장 큰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왜 두 번이나 바람피운 남편과 헤어지지 않았느냐.
이 질문은 아직 누구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익명의 공간인 이 브런치에 처음 밝히는 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두 번째 바람을 알게 된 이후 이혼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안다.
두 번째 알게 되었을 때 이혼 안 한 나도 참 멍청이라는 걸.
웃기게도 그때까지도 내게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던 거다.
좋은 남자였다.
착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고, 똑똑하고, 어른에게 예의 바르고, 어린 사람들한테도 친절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철벽남에 애처가로 소문난, 좋은 남편이고 좋은 남자였다.
바람피운 기억만 내 머릿속에서 삭제하면, 이렇게 좋은 남자를 내 인생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99가지의 장점이 있는 사람이니, 1가지의 단점 정도는 잊히겠지, 가려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삐 삐 삐 삐 -- 철컹"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던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
난 1초도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돌아온 그를 바로 불러 세워서 물어봤다.
"나한테 할 얘기 없어요?"
그는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난 피식 웃으면서 조용히 온화하게 말했다.
"아직 그 여자랑 만나고 있잖아요."
"무슨 소리야? 아니야."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나오는 그의 거짓말.
고마워요.
덕분에 이제 정말 당신과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