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보다 전화가 쉽고 편해지는 나이가 되어가나 봅니다.
언젠가부터 키오스크 앞에 서면 우리 부부는 서로 먼저 할 것 없이 신발끈이 묶고 싶어 진다.
요즘은 이런 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는데, 라떼는 밥값이나 돈내기 싫어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표현이다. 한마디로 돈 안 내려고 신발끈 묶는 척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 부부는 돈을 서로 안 내려고 한다기보다 키오스크가 이제 점점 더 세분화되고 난해지니, 카드를 서로에게 내밀며 주문하는 걸 은근히 떠넘긴다. 간단한 키오스크가 무슨 문제겠느냐~ 커피 추가 옵션까지가 딱 무난하다. 좀 더 많은 걸 요구하게 되면 손가락도 두뇌회전도 느려지고 버벅거리게 된다.
키오스크(kiosk)는 터키어(또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말로, 영어에서는 신문·음료 등을 파는 간이 판매대나 소형 매점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정보통신에서는 대중이 쉽게 정보서비스를 받거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한 무인 단말기를 가리킨다.
[출처:중앙일보]
광고에서 요아정 요아정 하길래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요아정 : 요거트아이스크림의 정석의 줄임말.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원하는 토핑(과일, 과자 등)을 올려 먹는 음식점의 명칭이었다니 아! 세상의 줄임말을 다 없애고 싶은 욕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요아정을 보고 진심 그러고 싶어 졌다.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집 근처에 있으니 한번 가보자 싶어 요아정으로 향했다. 키오스크가 당당히 차지하고 있길래 그래! 이쯤이야 하고 켠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무슨 옵션 선택하는 게 이렇게 많은지 뒤에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한참을 키오스크와 씨름 중이다. 오늘도 신발 끈을 묶으며 보다 못한 남편이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거기에 나온 세트로 시켜(이미 메뉴로 만들어진 패키지)“ 그래, 세트메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 베스트로 한 개 담고, 따라온 소룡이는 아이스크림에 원하는 토핑을 넣겠다더니 “엄마 나 미쯔만 넣을게” 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주문이 복잡했던 첫 기억은 ‘서브웨이’였다. 빵종류, 소스종류 선택이 얼마나 많은지~ 한참 고민스러울 때 쓰는 말 ‘아무거나처럼’ ‘어울리는 걸로 해주세요.’하면 알아서 만들어 준다. 익숙해지면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요청하는 방법으로 주문을 배웠다.
이제 주문은 배달 앱이나 키오스크다. 키오스크에는 ‘아무거나, 어울리는 것’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친절한 매장에선 “주문이 어려우신 분들은 카운터에 이야기하시면 주문 도와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써붙인다. 사실. 카운터 주문도 망설여지긴 한다. 옵션 선택이 너무 많고, 젊은 친구들의 말이 빠르니 주저주저하게 된다. 차라리 뒤에 사람만 없다면 키오스크가 더 낫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미래의 내 모습 같아 씁쓸해진다.
이제 기계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문자보다는 전화가 편해지고, 전화보다는 만나서 속시원히 해결하는 게 더 안정적이다.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바꾸는 일도 귀찮게 느껴진다. 쓰는 기능이라고는 늘 비슷하고, 최첨단 기능이 탑재된들 거의 사용하질 않으니 말이다. 데이터 옮기는 작업도 귀찮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바쁘게 결재하거나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슬슬 불편함이 많아진다.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니 이 또한 배워야 하겠지? 나이 좀 먹었다고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지 말고, 변화에 대응하고 뭐든 즐겁게 배우는 중년이 되어야겠다.
다음번에는 요아정에서 사람이 가장 없는 한가한 시간에 오래오래 천천히 키오스크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이것도 넣어보고, 저거도 넣어보고, 그래서 다음에 남편과 갔을 때는 당당히 세트메뉴 말고, 직접 만든 멋진 토핑을 올려서 남편에게 보란 듯이 대접해야지. 세트 따윈 시키지 않겠다는 아주, 쓸데없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실해야 함을 알고 자신의 삶도 존중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부인하고 있다. “다른 방도가 없어. 이렇게 살 수밖에는” 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의 중심에서 얼마든지 다른 반경의 원들을 그릴 수 있다. 이처럼 삶의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흔히 모든 변화는 기적처럼 여겨지지만, 그 기적은 지금이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
<월든_헨리데이빗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