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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Oct 30. 2024

한집 살지만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버성긴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에게 정성을 쏟는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오선지에 올려두면, ‘도도도도도’가끔 ‘레’의 남편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순서대로 절대 올라가지 않는 아내는 14년째 함께 살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이다.

남편은 기념일마다 꽃을 사 오고, 아이들과 집안일을 살뜰히 챙기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엄마처럼 먼저 건넨다. 나보다 설거지를 잘하고, 매일밤 잘 자라고 인사해 주는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다.

남편은 고요한 바다 같다. 잔잔한 바다 같은 삶에 다양한 크기의 돈을 던지는건 대부분 나이다. 마치 주식처럼 오르다 떨어지고, 떨어지는 것 같으면 오르는 매우 폭넓은 감정을 지닌 아내와 살고 있는 덕분에, 남편의 잔잔한 바다는 자주 일렁이고, 때론 파도가 친다. 남편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지겹지가 않아!나는 지겨울 틈이 없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는 걸 결혼 후에 알았다.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남편의 역할로는 합격점을 줄 순 있는데 남편은 다음생에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남편과 살고 있지만, 우리 일상도 다른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옆집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 ‘어쩜 그래’ 하다가도, 그 옆옆집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좋겠다’ 물개 박수가 절로 나온다. 결혼해 아이가 있는 가정의 일상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어디에 관점을 두고, 남편을 바라보냐에 따라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남편을 원수 같은 관점에서 보면 웬만한 원수 저리 가라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면 님이라고 하지만, 님이 아닌 니미럴(제기랄의 전남방언)이 되기도 한다. 세상 좋은 남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주최강 남편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쉽게 인정하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라고 다르겠는가!


며칠 전 요가를 무리하게 한 탓인지 잠들기 전 무릎에 파스를 바라는 나를 보며, “무릎 또 아파? 파스 발라?" 하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남편은 "우리는 매일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것 같다"며 한참을 웃었다.


결혼 14년 차쯤 되니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말보다 더 자주 하는 대화가 생겼다.


“안 깨고 잘 잤어?”

“무릎은 괜찮아?”

“파스 붙여줄까?”

“비타민 D는 먹었어?”

“안연고 넣어줄까?”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다녀”


한 침대에서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순간순간 서로의 안부와 건강을 챙긴다. 영양제를 챙겨 주고, 침대에서 파스를 붙여주며, 잠잘 때마다 혼자 못 넣는 안연고를 매일 넣어준다. 몸이 아플 때 안마와 찜질도 마다않고 해 준다. 곱게 늙어 함께 손잡고 놀러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면 건강해야 한다고~이제 건강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서로의 운동을 권하며 격려한다.


박준 시인의 시처럼 “서로의 전부를 쥐어준 때”가 우리도 있었다. 가진걸 모두 내 주어도 아깝지 않았고, 기꺼이 모든걸 해주고 싶었던 것들이 매 순간있었다.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름의 격차는 쉽게 줄지 않고, 쓸데없이 고집은 더 세지고, 열정적이고 불타오르는 사랑이 식어가고 있음을 문득 문득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선택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함께 나눈 약속을 지키기 위해-매 순간 버성긴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이는데 정성을 쏟는다.


오늘아침도 굿모닝 키스와 커피 향이 가득한 에스프레스 한잔 따위는 내던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침에 깨어있음에 감사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 비타민D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저 오늘도 무탈하길 서로에게 바라면서-

(에밀리파리에 가다 3.9화 장면 중)



부부  _ 문정희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 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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