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의 운동회인가?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다.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 무라카미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학창 시절 운동회는 손꼽아 기다리는 학교 행사 중 하나였다. 엄마가 김밥을 싸 오시고, 함께 운동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 손등에 1등부터 5등까지 스탬프를 찍어 줬는데 언제나 4등이 찍혀있었다. 평소에 워낙 운동도 안 좋아했고, 욕심도 없고 해서 인지 4등도 나쁘지 않았다. 그저 그날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자체적으로 아이들끼리만 운동회를 하는데 이번에 작은아이 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부모님과 함께 하는 레트로 운동회 “명랑운동회”가 열렸다.
도시락을 싸고, 돗자리를 챙겨서 아이와 학교를 향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운동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이는 설레었고, 행복해 보였다.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체육시간에 여자애들 대충 하고 다 앉아 있어서 싫다고 투덜 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맞아요. 접니다!.) 지금 매일 하는 운동도 살기 위한 생존운동이요. 몇 년을 했는데 여전히 운동을 안 할 수 있다면 강하게 거부하고 싶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은 거의 앉아 있거나 공 맞아서 일 번으로 나가는 게 나라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라는 사람이 운동회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번 운동회는 아버지회에서 주최하는 거라 당연히 아빠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종목에 엄마 필참! 이라니-
명랑운동회의 취지는 승리보다, 안전,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데 더 의의가 있으니, 부모님들 과열되게 너무 열심히 하시지 마시라는 학교 측의 당부가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부이고, 부모들이 그럴 수 있나? 우리 아이가 보고 있는데 말이다.
첫 번째 종목은 과자 따먹기, 아- 듣기만 해도 분명 넘어질 것 같은 불길함이 휘감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 없듯이 출발하자마자 넘어져서 양쪽 무릎이다 깨졌다. 창피함보다 남편의 원망이 컸다. “내가 안 나간다고 했지?” 괜히 남편 탓을 해본다. 남편은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게 마음에서 나듯 ‘난 역시 운동은 아닌가 봐’라는 마음에 조금 슬퍼졌다. 게다가 눈치 못 챙긴 남편은 넘어진 원인은 마음은 빨리 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균형을 잃어 넘어진 것 같다고, 굳이 분석을 한다. 아! 갑자기 마음속에서 피눈물이 철철 흐른다. 무릎도 아프고, 마음은 더 쓰렸다. 남편과 딸아이는 엄마 괜찮냐고 자꾸만 신경을 쓰고, 다른 경기고 뭐고 5분 거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경쟁 없이 말 그대로 명랑운동회를 즐겼고, 어른들은 취지대로 즐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마음과 달리 듣지 않는 몸 덕분에 많이들 넘어졌다. 특히, 아빠들은 젖 먹던 힘을 내며 기를 쓰고 달리는 뒷모습을 보며,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시네- 부모님들 몸살 나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년에 운동 좀 했다는 남편은 기를 쓰고 달리더니 다음날 온몸이 쑤신다고 곡소리를 낸다.
여기 초등학교는 아이들 줄 세우기를 하지 않는다. 예상처럼 백, 청팀은 동점으로 아름답고, 즐겁게 운동회는 막을 내렸다. 운동회 마치고 나오는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들은 가을 하늘처럼 밝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함께 땀 흘리고, 응원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내주는 따뜻함이 가득 묻어나는 운동회였다. 엄마의 희생으로 소중한 무릎과 맞바꾼 부모님과 함께하는 운동회가 딸아이에게 즐거웠던 순간이 추억으로 남게 되었길 바라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내년 명랑운동회 불참을 선언하며, 운동 잘하는 둘째 언니에게 대리 참석이라도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던 내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참여한 운동회가 나 역시 즐거웠었네 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