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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8. 2023

출근 잡담

오늘은 차를 운전하여 출근했습니다. 1년에 다섯 번 정도 될까요?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경우가 말입니다. 제가 차로 출근하는 날은 강의를 하러 가야 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회사 교육원 건물에서 하는 교육과정에 개설되는 해외부임자 교육이나 부장 진급대상자들을 위한 항공비즈니스과정에 미디어트레이닝 강의를 가야 하는 경우가 있고 간혹 특별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강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날입니다. 수강자들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1년에 한두 차례 교체되는 인력들인지라 새로운 대상들이 들어오면 강의날짜와 시간들이 정해집니다. 회사 사내 강의 한지가 20년도 넘었지만 이 특별한 과정의 강의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3년이 넘었군요. 강의는 커뮤니케이션 관련입니다.


저는 평소 출퇴근은 전철로 합니다.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오면 출근시간은 정확히 40분 소요되고 퇴근시간도 50분 안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도어투도어로 말입니다. 차를 가지고 출근해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걸립니다. 


오늘도 전철로 출근하는 똑같은 시간인 6시 20분에 출발을 했는데 사무실에 도착하니 7시 10분이 넘습니다. 전철보다 10분이 더 소요됐습니다. 전철로 출근하면 휴대폰으로 이메일도 체크하고 페이스북 및 포털 사이트도 검색해 보고 가끔 백팩에 있는 책도 꺼내 읽기도 합니다. 운 좋게 빈자리라도 있어 앉으면 눈감고 졸 때도 있습니다. 나름 출근길 40분의 시간을 하루 시작의 워밍업으로 삼기에는 최적의 시간과 조건입니다.


그런데 차를 운전하여 출근을 하면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데 오롯이 운전하는데만 집중을 해야 합니다. 라디오를 켜놓고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노래, 시사평론가의 잡담을 들을 수는 있지만 온통 신경은 앞차의 꽁무니만 쫓아가게 됩니다. 그것도 서울시내 주행속도가 50km인지라 차가 막히던 안 막히던 거의 정속주행을 할 수밖에 없고 계속되는 신호등의 막힘으로 인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는 18km밖에 안됩니다. 주말에 뛰는 거리보다 조금 더 긴 거리밖에 안 돼서 가끔은 그냥 뛰어서 출퇴근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참 오늘 운전하여 차를 가지고 출근한 이유는 강의를 가야 하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무실에 10Kg짜리 쌀 한 포대가 있습니다. 사무실에 웬 쌀? 직원들도 제 책상 뒤에 놓여있는 쌀을 보면 와서 "웬 쌀이에요?"라고 묻습니다. 오늘은 강의도 가야 하고 겸사겸사 쌀을 싣고 가려고 차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쌀은 아주 특별한 쌀입니다. 고향후배 부부가 강화도에서 지난해 농사지어 수확한 햇살을 도정해서 지난주에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40대 초반 부부인데 둘 다 내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후배는 방송인이고 남편은 유명 사모펀드기업에서 펀드매니저를 합니다. 강화도 논은 100평 정도인데 주말 소일거리로 해보자고 해서 2년 정도 됐답니다. 사실 주말마다 가서 농사짓는 것은 아니고 위탁농사를 하는 거랍니다. 논농사야 매일 손이 가는 일이 아닌지라 모내기하고 벼를 벨 때 정도만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해 수확하면 10kg짜리 쌀 20포대 정도는 나온다고 합니다. 쌀포대도 두 부부의 사진을 넣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모델로 함께 출연하여 디자인을 직접 하고 자기들 이름을 넣어 쌀이름도 만들었습니다. 참 재미있게 사는 사랑스러운 부부입니다. 몇 개 안 되는 쌀포대 중에서 하나를 직접 들고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명절 밑이라 저 쌀로 떡을 만들어 먹을까 고민 중입니다. 한 번에 떡을 만들어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마음도 있어 매일 조금씩 조금씩 밥을 지어먹는 게 더 좋을 거 같기도 합니다. 밥이라는 에너지를 먹는 게 아니고 후배 부부의 정성을 같이 먹는 것이라 정말 밥맛이 끝내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눈도 온다고 하는데 운전을 조심조심하고 강의도 잘하고 쌀 도 잘 싣고 가야겠습니다. '가재 잡고 도랑 치고' 일거양득의 시간입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뿌리고 출근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운전하게 됨을 양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분리수거 잘하고 일회용품 안 쓰며 환경보호를 위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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