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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3. 2023

봄의 색은 변하지 않고 바뀐다

세상이 온통 꽃천지다. 기후온난화를 걱정하지만 잠시 내려놓고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본다. 꽃구경은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열흘의 타이밍을 잘 만나야 꽃구경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꽃들도 시차를 두고 피어나니 다른 꽃잔치를 계속 누릴 수 도 있고 지역적 기온차에 따라 또 다르니 찾아다니면 계속 무릉도원을 거닐 수 도 있긴 하다.


그래도 꿀벌처럼 꽃을 찾아다닐 수 있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세상사는 일이다. 일상에서 오며 가며 눈에 들어오는 꽃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계절이 바뀌었음에 감사하게 된다. 설사 주말에 시간을 내, 꽃 무더기 흐드러진 교외를 찾게 되면 그 보다 더 귀한 장면을 언제 다시 만날까 코끝이 시려진다.


양지바른 아파트 뜰에 피었던 목련꽃은 이미 연초록의 잎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무밑에 떨어져 핏빛으로 산화되고 있는 처절한 모습조차 숙연하다. 담장을 덮고 있던 노란 개나리도 언제인가 색을 바꾸어 입었다. 


색은 시간을 입는다. 색의 시간은 아예 존재를 바꾼다. 특히 봄의 색은 그렇다. 시간이 되면 떨구어버린다.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마치 그 색을 그대로 가져갈 요량처럼 말이다. 색이 변하느니 그냥 떨어지련다.

그래서 봄의 색은 순식간에 바뀐다. 가을의 색은 서서히 물드는 것에 반한다. 봄의 색은 변하는 것이 아니고 바뀌는 것이다.


봄 꽃구경하면 아스라이 피어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벚꽃 속에 숨어있다 모습을 드러낸다. 봄 나들이 갈 때면 장롱 속에 간직했던 한복을 꺼내서 봄 색에 맞추셨다. 그리고 양산도 챙기고 버선에 흰색 고무신을 신으셨다. 꽃구경의 진수를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그래서 이 무렵이면 소리꾼 장사익의 '꽃구경' 노랫가락이 떠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져 노래를 끝까지 듣지를 못한다. 꽃구경 노래의 원문은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시다.



== 따뜻한 봄날 / 김형영 ==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웅큼 한 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장사익 '꽃구경'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V85oUlG8K_w

꽃은 시간이다. 멈춰있지 않는다. 생명이다.

꽃은 심상을 들뜨게 하는 유혹이다. 잿빛 세상에서 반짝이며 피어나는 보석이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함의 색이 봄 꽃의 매력이다. 겨우내 버티고 있었을 에너지의 끝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화려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끌린다. 생명의 존엄이 꽃잎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바람에 휘날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벚꽃 잎 한 장 한 장이 아련한 이유이며 봄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노란 개나리 꽃잎, 솥뚜껑 밀가루 위에 내려앉은 진분홍 진달래가 화전으로 다시 피어나는 모습까지 꽃의 시간은 이제 가슴속에 머릿속에 박제되어 가고 있다.


볼 수 있을 때 눈에 담아 놓고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또다시없을 그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리번거려야 한다. 내가 보지 않고 보지 못하면 봄날은 어느 순간 저 멀리 가버리고 없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일 수밖에 없음을 눈치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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