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Feb 27. 2024

줄 세우기는 본능이다

동물들의 특징 중 하나가 구성원 간의 위계(Hierarchy)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본능의 발현으로 보인다. 특히 군집을 이루고 사는 동물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늑대, 사자, 원숭이 그리고 호모사피엔스 인간까지, 모여 살면서 집단의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모여산 다는 게 핵심이다. 모여산 다는 것은 포식자들의 횡포를 벗어나고자 하는 피식자들이 모여 집단의 힘으로 버텨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다. 힘이 약한 개체는 모여 살아야 생존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독립생활을 하는 곰이나 호랑이 같은 동물들은 유아독존이다. 자기 이외에는 절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군집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 바로 효율성이다. 많은 개체가 함께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를 가장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도입된 운영체계가 바로 위계질서다. 힘이 세거나 지혜가 있거나 지식이 있어 집단에 이득이 되는 개체를 리더로 세운다. 그 뒤로 줄줄이 서열을 정해 위치에 맞는 임무를 부여하고 거기에 따른 대가도 받는다. 무엇이 되었든 자기의 위치에서 최소한의 역량만큼만 행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집단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거대한 몸집의 위력으로 부활하고 힘을 발휘한다.


인간 사회로 넘어오면 이 위계는 사회의 모든 종교, 조직, 집단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계층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 위아래가 확실해야 일관성과 획일성이 확보되어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가능해진다. 위계와 서열을 없애고 만민 평등과 공동배분을 외쳤던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도, 이런 동물 본연의 위계 구조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평등한 것처럼 위장을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카르텔을 만들어 또 다른 위계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론은 그럴듯했지만 현실에서는 작동되지 않는 이데아였던 것이다. 위계가 인간의 본능인 것을 무시한 사상체계는 그렇게 인류사에서 사그라들었다.

인간 본능의 위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가깝게는 내 주변 사람들의 모임을 봐도 알 수 있다. 2명 이상만 모여도 역할 분담을 하고 회장을 세우고 총무를 맡긴다. 위계는 완장을 채우는 일이다. 완장은 힘이며 권력이 된다. 완장은 위계의 상징이다. 군대 계급이 그렇고 직장의 직급이 그렇다. 계급과 직급에 맞는 일과 임무가 주어지고 완장을 찬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일과 업무를 해내고자 노력하게 된다. 일과 업무가 제대로 되게 하고, 유지하고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조직 관리 방식이 적절한 사람에게 완장을 채워주는 거다. 


위계가 가장 엄격한 조직이 최근 파업에 나선 의사 선생님들과 군대, 법조계, 스포츠계다. 대부분 엄격한 위계가 필요한 조직은 사람의 생명과 관계있거나 반드시 승패를 봐야 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한 치의 실수나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할 있는 방법이 바로 선후배들의 동료애로 극복한다. 위계로 인해 오히려 끈끈해져야 훌륭한 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급에 철저히 복종하는 일이다. 계급이 높을수록 전쟁 경험과 지식이 많을 수밖에 없기에 상사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훈련하고 움직여야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다.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벌어지면 전쟁터와 똑같다. 어떻게든 승패가 결정되는 곳이다. 싸움에 나섰으면 이겨야 한다. 당연히 선후배들의 끈끈한 동료애로 잘 갖춰지고 무장된 전술을 통해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 뛸 수 있는 숫자까지 정해져 있는 스포츠에서 구성원 한두 명이 삐걱거리면 전체조직 전술 전략에 문제가 발생한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안컵경기 대회 때 그 진행과정을 통해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위계를 흔들어 창의성을 발휘하는 조직도 있다. 바로 기업이다. 기업 환경은 급변한다. 위계로 인한 의사전달 및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직급을 없애고 부르는 호칭에 영어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고 위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고 이를 지휘하고 통합할 리더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조직이다. 


위계의 효율성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 각자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자신감이 겸비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작가의 이전글 필리핀 세부 탈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