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윤동주 탄생 100주년
“(…) 그는 한 女性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女性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告白하지 안했다. 그 女性도 모르는 친구들도 모르는 사랑을 回答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苦悶도 하면서 希望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_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발문(강처중) 중에서
윤동주.
어쩔 수 없다. 그 이름은 밤에 나지막이 불러야 한다. 낮처럼 환해서는 곤란하다. 부끄럽고 염치가 없어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수가 없다. ‘동주 낭독회’를 가진 시간도 그래서 밤 9시였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 염치를 잃은 시대, 우리는 동주를 읊을 수밖에 없었다. <밤9시의커피>가 이날을 위해 만든 블렌딩 커피는 ‘별헤는 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를 잘 번지게 만든 커피.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12월 30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우리 넷은 동주를 읊기 위해 모였다. 서울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밤9시의커피>는 이날 움직이는 카페를 열었다. 다소 쌀쌀했지만 동주를 그리는 우리의 온기로 이를 덮었다. 커피 한잔, 그리고 누군가는 凍酒를, 다른 누군가는 憧酒를 마시면서 우리를 이야기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_「참회록」 중에서
「참회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동주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인 1942년 1월 24일에 쓴 詩이다. 즉 경성에서 마지막으로 쓴 詩. 그렇다면 동주는 왜 참회해야 했을까. 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일본으로 가려면 창씨개명이 불가피했다.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로 했다. ‘平沼東柱’라는 일본 이름을 받기 닷새 전 동주는 이 詩를 썼다. 「참회록」은 그렇게 나왔다.
“그거 아세요?”
詩를 쓰고 있는 문학청년 동호가 불쑥 말을 꺼냈다. “동주는 하숙집에 있다가 홀로 이 언덕에 오르곤 했대요. 드문드문 보이는 경성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아마 사랑하는 여성도 생각했겠죠.”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동호는 동주가 사랑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동주는 사랑한다는 흔한 말조차 건네질 못했다. 주춤거린 것도 아니었다. 벼리고 벼리면서 흔한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다른 시어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겐 벼락처럼 다가온 사랑이었을 거예요. 연희전문학교에서 만났어요. 동주는 산책을 좋아했어요.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 교정을 걷다가 눈이 번쩍 뜨인 거죠.” 일곱 살 터울의 여동생(윤동주의 동생 윤혜원 씨는 2011년 12월 호주 시드니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에게는 때론 짓궂은 장난을 치는 오빠였지만 다른 여성에겐 쉬이 말을 붙이지 못한 동주였다.
“아~ 산책하는 사람에게 온 축복이었네요!”
노동자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쉼을 취하고 있는 미연이 말을 받는다. “아마도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정에서 꽃잎이 날리듯 한 여성이 다가왔겠죠? 그림 같아요. 눈에 선해요.” “하하, 그런가요. 미연 씨도 산책을 워낙 좋아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동호는 동주가 산책뿐만 아니라 운동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직접 재봉질을 한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즐겼다. 의외처럼 여겨지지만 그는 공격수였다. 그의 문학을 채운 것은 비문학이기도 했다. 연희에서의 생활은 충만했다. 의대를 보내고자 했던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문과로 진학했던 동주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벗들과 문학을 논하고 교지 편집과 등사도 그의 몫이었다. 웅변과 기하학도 빼어났지만 그는 대놓고 그런 재주를 내세우진 않았다. 물론 그에게 밤 산책은 빠질 수 없는 일과였다. 詩를 읊고 시상을 떠올린 것은 일정 부분 산책에 기댄 결과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가진 관심은 동주가 사랑한 여성이었다. 한 잔 더, 별헤는 밤을 내리면서 동호에게 물었다. “어떤 여성이었어? 동주가 짧게라도 고백한 거야? 어떻게 됐어?”
커피가 뚝, 멈췄다.
동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별을 헤다 말았다. ‘별헤는 밤’은 해발 1900m 이상에서 자란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공정무역 커피를 기본으로 했다. 밤하늘에 별이 촘촘하게 박힌 곳. 별을 헤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땅이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하다. 그래서 여성스러운 커피라고 불러도 좋을 이 커피에 인도 아티칸과 에티오피아 구지 존 아크라비가 스며들고 번졌다. 나는 커피를 내리다 말고 동작을 멈춰야 했다. “죽었어요. 요절이죠.” 고백도 못했는데, 커피는 번지다 말았다. “아니, 왜왜, 어쩌다?” 나보다 더 흥분한 것은 동주의 詩를 달달 외우고 다니는 미연이었다.
그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었다.
그저 죽은 것으로 추정될 뿐. 작고 초롱초롱한 여성이었다. 대부분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밝은 기운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강단도 있어서 누군가 여성을 우습게 보거나 얕잡아본다 싶으면 당장 날벼락이 떨어졌다. 동주는 백양로를 거닐면서 그녀를 몇 차례 마주쳤다. 수줍게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 지는 못했다. 그녀와 처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것은 문학 동아리에서였다. 그녀도 문학을 사랑했다. 함께 詩를 읊고 문학을 논했다. 동주는 그녀에게 마음을 뺏겼다. 내향적인 동주와 달랐다. 미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동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동주가 자신과 다른 모습에라도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동주가 詩에 더욱 침잠했던 이유에는 그녀도 있을 거예요.” 동호가 넌지시 미연을 바라봤다.
불온한 시대, 불운한 연인
동주는 커피를 좋아했다. 넉넉한 집안이었기에 커피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잠들지 않고 詩를 쓰거나 그녀를 떠올릴 때도 커피를 마셨다. 산책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동주는 그녀와 커피를 함께 마시는 것을 꿈꿨다. 그러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을 강렬하게 열망하고 몸으로 뛰고 있었다. 그녀는 독립항쟁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 독립항쟁가였던 주세죽을 흠모했다. 그녀에게도 동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 앞에서 유난히 쭈뼛거리는 동주의 모습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나는 애가 탔다. “동주가 고백했다면 두 사람 어떻게 됐을까?”
동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받았다. “둘 다 요절하지 않고 좀 더 살아서 詩나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을까요? 사랑이 또 다른 운명을 점지했을 것 같아요. 동주가 이 언덕에 함께 오르자고 힘들게 말을 꺼내고 그러자는 답까지 받았는데 결국 실현되지 못했어요. 동주는 이 언덕에 함께 오르면 아마 고백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어머 어떡하니, 어떡해. 그럼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죽은 거야?” 미연이 물었다.
“레지스탕스 활동이란 게 그렇잖아. 늘 위험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 날 그들 아지트에 일본 순사들이 들이닥쳤나 봐. 학생들을 마구 잡아갔는데 그녀도 잡혀갔어. 당연히 고문을 당했을 텐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죽었다는 얘기가 돌 수밖에 없었지. 일본으로 보내졌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하여튼 조선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봤다는 사람이 없어.”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_ 「이별」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
끝끝내 고백하지 못한 사랑. 회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홀로 간직했다고 누가 동주를 어리석다고 말할까. 미연이 憧酒를 홀짝 들이키면서 말했다. “슬프다, 그치? 조국을 파는 시궁창 같은 사람들은 오래 살고, 아니 자손 대대로 지위와 계급을 누리고. 이게 뭐야.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잖아.” 미연의 눈망울에 물이 그렁그렁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詩와 문학을 흠모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감싸고 있었다. 서울 시내 저 빛나는 네온사인은 부끄러움을 알까. 아니면 동주의 사랑을 알까.
동호가 「눈 오는 지도」를 읊조렸다. 詩를 들으면서 그녀의 이름도 순이가 아니었을까, 떠올렸다. 이동식 카페로 움직였던 <밤9시의커피>의 밤도 詩와 함께, 커피와 함께 깊어갔다. 동주가 떠나면서 이 땅의 부끄러움도 점점 소멸되어 갔던 것은 아닐까. 덕분에 우리는 점점 뻔뻔해지고 염치가 없어지고 있다. 아니 혐오와 모멸의 언어로 내뱉기에 바쁘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동주가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_영화 <동주> 중에서
동주로부터 ‘春光乍洩’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 햇살’이라는 뜻이다. 그 말에 어울리는, 4월이면 생각나는 그 사람, 장국영도 사랑에 목마른 자였다. 커피에 사랑이 번진다. 사랑한다면, 이 말부터 꺼내도 좋은 계절이다.(실은, 이 말을 꺼내기 좋지 않은 계절은 없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100년을 기다려온 말이다. 동주가 겨울 밤하늘, 바람이 스치는 별이 되어 詩처럼 빛나고 있다.
좋은 밤이다.
당신이라는 별이 생각나는 밤이다.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당신이라는 詩가 보고 싶은 밤이다.
(※ 동주가 사랑했던 여성과 커피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