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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 이부장 Jul 01. 2024

05...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40대 중반, 준비되지 않은 이직이야기... Part05

이직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평소 고민해 보지 않은 주제였다. 막연하고 막막했다. 경험자들께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분들이 주변에도 있었다. 임원으로 입사하신 분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는 과장되게 친절하고, 겸손했다가 적응을 못하고 다시 떠난 분들이 많았었다. 더러 소수의 인원이 조직에 스며들어 잘 적응 했고, 일부는 팀장 등 조직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 회사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터라, 예민해지고 소심해진 탓에 그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스펙(Specipication) 좋은 경력자들과 경쟁하며, 자리를 지켜왔던 탓에 곰곰이 따져 봐도 그들 중 맘을 터놓고 고민할 만한 사람을 만들지 못했었다.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회사 일은 인맥(人脈)이 반이라고, 특히 Staff은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 한 사람도 허투루 대하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나는 소수의 인원들하고만 소통하며 살아왔나 싶다. 한심했다.


불현듯 한사람이 떠 올랐다. 여러 차례 이직 끝에 임원이 된 동기 녀석이었다. 전략팀 대리시절 경력으로 입사한 동값내기 미국인이었다. 미국인 신분으로 군대도 다녀왔고,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를 미국본토에서 다니다 불현듯 귀국해서, 우리 회사 전략팀으로 경력 입사 했었다. 조직문화 등 갈등이 있었던 녀석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계열사로 이직했다. 이직 후에도 녀석은 꾸준히 이전 직장 사람들과 인맥을 유지하고, 때때로 만나서 식사를 하는 등 내 기준에선 유일하게 넉살 좋은 친구였다.


금요일, 연락을 받은 녀석은 마침 주변에 올 일이 있으니 저녁을 먹자고 했다. 혹여 누가 들을까 조심스러워 장소를 일식집으로 예약하고 친구를 만났다. 계열사로 이직했던 녀석은 나보다 먼저 팀장이 되었고, 교육회사, 식품회사를 거쳐 얼마 전, 의료 관련 회사로 옮기며 드디어 임원이 되었다. 다양한 업종이지만 M&A 또는 전사전략 역할을 유지했었다. 녀석은 자랑하고 싶었는지, 최근 무용담을 꺼내며, 이직한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탄탄한지 한 껏 자랑을 했다. 금융감독원에 올린 감사보고서에 본인의 서명도 보여주었고, 신문기사에 자기 이름이 언급된 글도 보여줬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회사에 지금도 경력자 모집 하냐?"


다행일까? 녀석은 회사에서 전략/경영기획을 맡고 있는 상무인데, 재경부문의 임원까지 겸하고 있어 업무량이 많다 했다. 마침 회사가 오너 3세로 경영권 이관 작업을 하고 있고, 본인도 이를 위해 채용이 된 상황이라 회사에 건의해서 사람을 충원하는 것은 승인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보니, 채용을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재직한 회사(제조업) 대비 재계 순위는 높지 않으나, 대기업군에 속하고, 인지도면에서는 오히려 좋았다. 한 달 전만 해도, 근거 없는 자신감에 요청을 받았어도 거절했을 터였으나, 마침 이직을 고민 중인 내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옮길 생각 있으면, 이력서 작성해서 보내줘."


쿨하게 말하는 녀석의 모습이 패기 있어 보여 부러웠다. 회계나 세무 실무를 해 보지 않았지만, 기획이나 경영분석 업무는 오랫동안 해왔으니, 못할 일도 아니고, 팀원으로 숨죽이고 버티는 것보다, 보란 듯이 임원으로 이직해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었는지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한 껏 솟아올랐다.


"내가 최근에 이력서를 써 본 적이 없는데, 너 이직할 때 썼던 것 좀 공유해 주라. 참조하게...."


생각해 보니, 거의 20년 전, 그러니까 대학졸업 때 쓰고는 그 뒤론 기억이 없었다. 물론 경력란에 적을 것이 더 많이 생겼지만, 20년 차에 걸맞은 이력서는 어떻게 작성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여러 차례 이직한 녀석의 이력서를 참조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터넷에도 경력직 이력서 샘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왠지 어설퍼 보일 것 같아 싫었다. 나만의 개성을 살리고 싶기도 하고, 재경이나 전략 이력을 갖은 이들의 특징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개인 이메일로 받아 본 녀석의 이력서는 상업적이지 않고 담백했으나,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기본 사항으로 학력과 어학역량을 표기했고, 업무경력과 성과를 카테고리(Category)별로 묶어서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표현하면서 시계열화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호소하고 싶은 성과에 대해서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디테일(Detail)하게 정리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비상경영이라는 미명하에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정상출근을 했고, 9시부터 CFO 회의실에 모여 6개월치 이동계획을 보고 했다. 매출이야 생산계획을 기반으로 하지만, 국가 간 이동 중인 반제품 및 제품재고 규모, 개발 중인 제품의 해외 사이트별 폐기비용 등을 주단위로 수립하고, 정량화하는 것은 몇 년째하고 있어도 당체 적응이 되질 않았다. 단일사업부로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 52시간 근무 규정 같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다행히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보고를 마쳤다. 옹상무는 주말 CFO 보고엔 용책임을 쉬게 했다.

퇴근 후, 책상에 앉아 20여 년간의 경험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했다. 학력과 어학역량을 적은 뒤에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경력직이다 보니,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정량화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만 있을 뿐, 수행했던 주요 프로젝트(Project)별로는 머릿속에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실패사례를 통해 배운 교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 했다.


매년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는 한 선배의 말이 떠 올랐다. 그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요 성과들을 회사 노트북에 공들어 정리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을 보며 이직할 것도 아닌데,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냐며 비아냥 거렸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보고서 초안을 잡듯, 대략의 얼개만 정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회사에 가서 그동안 보고했던 자료를 보며 이력서 작성을 위한 내 프로필(Profile)을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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