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운 Aug 27. 2024

구멍난 배 1편. 국민학교.

1. 국민학교

우연에는 필연이 감추어져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나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벽산 아파트 3동 501호에 산다. 방에 공장이 많다. 집 앞에는 아침마다 고소한 두유 냄새를 풍기는 두부 공장이 있고, 더 멀리에는 주말에 자전거 타면 재미있는, 자동차 운전면허 연습장이 있다. 그리고, 뒤로는 수풀이 우거진 공원이 험 욕구를 자극한다.


그곳에는 빽빽한 나무들과 곤충들 가득하고, 공장 사람들이 버린 기계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분에, 여름에는 매미, 잠자리, 송충이가 그 기계들 위에서 각자의 박자로 노래를 부르며, 자기들 인생을 즐긴다. 협화음이지만, 활기찬 합창이다.


한 번은 굼벵이를 주워 키웠는데, 매미가 되는 자연의 신비를 경험했다. 물론, 다시 공원에 놔두니, 날지를 않아서, 개미들한테 먹히는 자연의 잔혹함도 볼 수 있었지만.


학교를 가려면 사방에 불꽃 용접을 하는 공장지대를 지나쳐, 두유 냄새가 나는 두부 공장을 끼고돌아야 한다.


오늘도 실내화 가방을 들고, 등교한다. 학교 가기 싫다. 애들을 괜히 괴롭히는 양성현이라는 놈 때문이다. 4학년 때는 얌전했던 친구였는데, 5학년 되니까 날뛴다. 키가 또래보다 한 뼘 정도 커서 그런가. 나는 키순으로 매긴 번호 3번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보다 작은 애가 둘이나 있으니.


"김명욱!"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익숙한 목소리.


"어. 석관이냐."


제일 친한 친구, 최석. 안경을 쓰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는 10번 정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야. 내가 실내화 가방 들어줄게!"


나는 낚아채듯, 석이 실내화 가방을 빼앗는다.


"어? 고마워. 별로 무겁진 않지만."


진짜 안 무거웠다.


"그래. 힘이 좀 남아서."


"야. 근데 그거 알아? 우리 학교 전설?"


이는 내 손에 들린, 자기 실내화 가방을 의아한 얼굴로 보다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우리 학교 전설?"


"응."


"뭐? 대충은......"


이가 말하는 우리 학교 대한 전설. 그 내용은 세 가지이다. 그중에 두 가지는 아는 데, 나머지 한 가지는 일부러 듣지 않고 있었다. 실, 알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 이제 죽을지도 몰라."


"설마...... 나머지 하나를 들어버린 거냐?"


"아. 어제, 그 미친 양성현이가 듣기 싫다는 데 억지로 말하더라고."


전설 세 가지를 모두 알면 죽는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가만, 그럼 양성현도 알고 너도 아는 거네?"


"그치?"


"근데, 어제는 어디까지 다녀왔냐?"


양성현은 나와 석이에게 번갈아 가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우리 집과 석이 집 방향은, 그놈 집과 완전 반대인데. 이유는? 미친놈 생각을 정상인이 알 수가 없지.


"거의 그놈 집 근처까지. 짜증 나 죽을 뻔했어."


"죽을 뻔? 너 비밀 세 개 다 알잖아? 어차피 죽으니까, 그놈하고 같이 죽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석관이는 배신감이 물든 얼굴로 부들부들하다가,


"야! 내가 너한테도 말할 거다. 혼자 죽기에는 쓸쓸하니까. 같이 가자고. 친구야."


어깨동무한다.


"아 몰라. 안 들려. 인생은 혼자야."


나는, 어깨에 올린 석관이 손을 슬쩍 피하며 귀를 막고 교문을 지나,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최석이는 그런 나를 필사적으로 따라 들어와, 내 손에 들린 자기 실내화 가방을 낚아채며,


"됐다. 내가 너한테 그러겠냐...... 나랑 양성현 둘만 간다. 행복해라. 실내화 가방 들어준 건 고마웠다."


쓸데없이 비장한 얼굴이었다. 왠지 미안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고마워."


진심이었다. 아직 죽긴 싫다. 다만, 친구 마음 씀씀이가 밉진 않았다. 내가 아는 전설은, 운동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후문에 있는 유관순 누나 동상이, 자정에 서로 결투한다는 소리.


왜 싸우는지,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두 분 다 훌륭한 위인들일진대.


그리고, 새벽 1시가 되면, 학교 뒤 창고에서 귀신들이 술래잡기한단다. 이렇게 두 가지였다.


나머지 하나는 모르고, 평생 모를 생각다. 오래 살 예정이니.


"명욱아 안녕!"


자리에 앉자, 단발에 통통한 여자애가 인사한다.

내 짝꿍 혜정이다. 뽀얀 얼굴이 귀엽지만, 내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 우리 반 애들이 놀리니까.


"어. 그래."


그래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염병!"


반갑지 않은 목소리. 양성현이 나를 부른다. 또 무슨 시비를.


"왜?"


만 큰, 비린내 나는 멸치 같은 녀석이 양성현. 마, 다에서 헤엄치다, 어부한테 잡히면 멸치볶음이 되리라. 그만큼, 멸치랑 얼굴도 닮았다.


내 이름이 명욱인데 억지로 명욱. 명욱. 하다가 염병으로 부른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이 궁금하다. 어떻게 명욱이가 염병이 되는지. 


"오늘 학교 끝나고 썩었네랑 잠시 남아라."


잠시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용기가 없다.


"......"


"왜 대답이 없냐?"


"알았어."


썩었네는 석이한테 저놈이 지어준 별명. 역시, 억지로 석관, 석관 하다가 이를 악물고 썩었네. 그리되었다. 말했듯이, 석이와 나, 그리고 저놈의 집에 가는 길은 반대방향이다. 괴롭히는 것인지,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지, 외로워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명욱아. 선생님한테 일러. 쟤 왜 저러냐."


양성현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혜정이가 속삭인다. 왠지 울컥거려서 역시 퉁명스레 말했다.


"됐어. 신경 꺼."


"걱정해 줘도 그래."


내 짝 혜정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한다. 근데, 얘는 요즘 왜 이리 나한테 잘해주지? 설마......


"너. 내 마니또냐?"


"마니또? 무...... 슨...... 아니거든."


엄청나게 당황한다. 우리 담임이 요즘 마니또 라고, 무작위 추첨을 통해 상대를 고르고, 한 달에 최소 세 번 이상 눈에 띄지 않게 챙겨줘야 하는 그런 제도를 만들었다.


당황한 얼굴이 귀엽다. 맞나 보네. 근데, 눈에 띄는데.


"아무튼, 나도 쟤 싫어. 나한테 이상한 별명 붙였단 말이야."


"무슨 별명?"


"말 안 할 거야."


또 이를 악물고, 괴상한 별명을 붙였겠지.


"야. 됐고, 넘어오지 마라."


근데, 신경 쓰기 귀찮. 내 말에 혜정이는 눈을 흘긴다.


"자. 자. 다들 책 펴라."


마침, 담임이 들어와서 수업이 시작되고, 졸다가 손바닥 몇 대 맞고, 그러다가 점심시간. 


"아, 맞다. 오늘은 내가 당번이었지."


우리는 급식 시범학교라서, 급식한다. 밥, 국은 알아서, 맛있는 반찬 한 가지는 학생들이 푸는 데, 오늘은 내 담당이다.


권력이다. 나름. 석이는 많이 주고, 혜정이는 정량 배식하고. 다음엔 양성현.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기분 나쁘게.


"염병! 가득 줘라."


가슴이 턱 막힌다. 다른 애들도 보고 있다. 쥐어짜듯 대답한다.


"안돼. 그럼 모자라."


"디진다?"


다시, 주먹을 날리는 상상. 근데, 싸우면 지겠지. 키는 크니까. 나는 그냥 똥 씹은 표정으로 많이 줬다.


"그래야지. 어디서......"


한숨이 왔다. 뭔가 서럽기도 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석관이가 불렀다.


"왜?"


"아까 봤어. 네가 급식 당번인데 윽박지르는 거. 저 새끼 오늘 까자. 집에 가는 길에."


"우리 둘이?"


이길 텐데.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속마음은 들키기 싫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싸움은, 뭔가 자신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어제 거의, 저 새끼 집 앞까지 다녀왔다고."


"그래. 아침에 네가 말했어. 이미."


아 근데, 양성현 저 새끼, 진짜 왜 저러지. 게다가 거부하면 가끔 때린다. 근데 정말 자신은 없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너 태권도 배웠잖아. 이럴 때 쓰는 거야."


나는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어릴 때부터 태권도해서 지금 3품이다.


"사범님이 애들 때리면 안 된대. 그래서 참는 거야."


사실쫄았다. 발차기해도, 그놈 머리까지는 무리다. 비겁하게 꼬추를 때릴 수는 없고.


"너 처맞는 건 되고?"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난 혼자라도 저 새끼 깔 거야. 썩었네라고 부르는 것도 맘에 안 들어."


"혼자?"


"그래. 혼자."


"알았어. 알았어. 나도 도울게."


"우리 둘이면 이길 수 있을 거야!"


약속해 버렸다. 두려지만 뭔가 설레었다.

근데, 나는 3번, 석관이는 10번. 둘이 합쳐 13번인데, 양성현은 40명 중 38번이다. 싸우려니, 키 번호가 꼭 만화 속 악당, 전투력 수치 같아서 입맛이 쓰다. 종례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시간은 더 빨리 간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반장의 구령에 따라 모두, 담임에게 인사를 했다.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석관이가 비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준비됐냐?"


"어...... 어...... 후우......"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쫄은거 아니지? 마음 단단히 먹어."


"쫄기는 누가!"


"누구긴 누구야. 너지. 평생 염병알이라는 소리 들을래? 아마, 결혼할 때도 그럴걸."


내 결혼식까지 와서 그런다고? 신부가 도망갈 수도 있잖아? 그러면 안 되지.


"알았다고, 썩었네야."


투닥거리는 데 양성현이 다가온다. 오늘따라 키가 더 커 보인다. 우리가 마른침을 삼키는 데, 의외의 소리를 한다.


"야. 오늘은 니들끼리 가라. 담탱이가 나 부른다."


양성현이 선생님께 불려 간 모양. 혜정이가 윙크한다. 내가 일렀어. 입 모양이 그렇다. 그렇게, 우리의 반란 계획. 아무 일 없이 끝났다.


그 이후, 양성현은 절뚝이며 학교에 다녔다. 우리 담임이 종아리를 100대 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똥 씹은 표정으로 사과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마니또 공개 날.

내 마니또는 짐작한 대로 정이었다.


"뭐 예상했어."


내 말에 혜정이는 그냥 으쓱했다. 알고 보니 양성현이 '꼬잉꼬잉'이라고 놀린 모양.

혜정이는 선생님께 이르고, 부모님께도 이르고. 그래서 양성현이 절뚝이가 되어 버렸다. 

겸사겸사 우리들 고충도 이른 모양. 기특하다.


참고로 '꼬잉꼬잉'은 미국 돼지가 우는 소리란다.

진짜 별명 짓는 재주는 타고났다. 어떻게 그렇게 재수 없이 잘 짓는지.  양성현이 그렇게 조용해지고, 평화가 찾아왔. 집에 가는 길에, 석관이가 물었다.


"야. 명욱아. 너가 내 마니또였는데, 왜 나 뭐 안 챙겨줬어?"


"챙겨줬는데?"


"뭔데? 기억이 안 나는데......"


"실내화 가방 들어줬잖아."


"......"


납득 안 가는 얼굴. 다시 뭐 됐다는 얼굴로 바뀐다. 그러다가 심각한 얼굴로 바뀌더니,


"근데. 우리 학교 비밀 세 가지 알고, 한 달 뒤면 죽는다던데. 안 죽네."


"그러게. 양성현도 너도 살고 있잖아. 왜 안 죽어?"


"근데. 너도 안 죽었잖아."


석관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자,


"너도 이미 세 가지 다 알고 있어. 찝찝해할까 봐 말 안 한 거야."


"그게 무슨......"


"첫 번째가 이순신 유관순 싸움. 두 번째가 귀신 술래잡기. 세 번째가 비밀을 모두 알면 죽는다는 사실 그 자체야. 그니까 너도 세 가지 알고 있던 거지."


그랬구나. 나도 세 가지 다 알고 있는 거구나. 자기 가슴이 턱 막혔다.


"그럴 수가......"


"하핫.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그래도 괜히 찜찜해진 나는, 죄 없는 석관이에게,


"이. 썩었네야! 기분 찝찝하게."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소리쳤고,


"염병알이 살았으면 됐지."


석관이는 웃으며 받았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꼬잉꼬잉이 멀리서 손흔들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