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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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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25. 2018

겨울 단상


어느덧 겨울 냄새가 나는 계절이 왔다. 오후 4시에 창밖 풍경은 벌써 어둑하다.이게 그리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겨울을 좋아한다. 그냥 추운 날이 좋다. 더우면 짜증이 나서 "아 너무 덥다"라는 말이 많아지는데, 추우면 말을 아낀다. 더 조용해진다. 카페에 들어가면 코가 빨개져서 콧물이 나올 때만 아니면, 겨울이 더 좋다. 추우면 웅크리게 되고, 웅크리면 괜히 포근하고 편하다. 




붕어빵과 국화빵이 거리에 나오고, 크게 숨쉬면 김이 나온다. 아직 1년이 끝나지 않았는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말랑거리는 글은 덜 쓰게 됐다. 내가 느끼는 알록달록하거나 거무튀튀한 감정을 활자로 풀어내는 게 조금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TV에 나오는 시사 뉴스에도 큰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그저그런 시멘트 감성을 갖는 건가? 싶었다. 




바깥으로 훅하고 내뱉지 않는다고 해서, 안에 없는 건 아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여전하다. 다만, 그걸 덜 내뱉을뿐. 진폭이 좁은 사람은 아니다. 관종들은 다 그렇다.




자주 가던 동네 카페가 닫았다.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그곳은 가족이 운영했다. 왜 닫냐고 물은 내 질문에 아드님은 좀 더 크게 확장할 거라고, 잠시 문을 닫는 거고, 곧 하남에 다시 열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나왔다. 




새로 아지트를 찾았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다. 커피보다 차를 주 무기로 내세우는 이곳은 부부가 운영하는 모양이다. 사장님 부부의 노트북 바탕화면엔 손을 꼭 잡고 있는 자기네 그림이 있다. 이 카페는 화실을 겸한다. 카페 곳곳엔 그림이 걸려있다. 아예 카페 왼쪽인 그림 수업을 하는 화실이 따로 있다. 




무언가를 보내고, 무언가에 새로 정착한다. 아델 노래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신 노래는 잘 안 듣게 된다. 이승환, 지오디, 윤종신, 이센스, 백예린, 백아연, 이적까지. 듣는 노래만 듣게 된다. 듣다 보면 이런 기억도 떠오르고, 저런 기억도 떠오른다. 분명히 지금을 걷고 있는데, 머리 속에는 옛날 생각이 가득 찬다. 노래의 힘이란. 




사소한 거에 크게 감동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동은 곧 영감이고, 영감은 곧 창조성이다. 무언가를 보고 '에이'라는 말이 나오거나 '야 그거는 원래 그래'라고 코웃음 칠 때보다 '우와'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걸 뭐 그렇게 보냐? 라는 다소 시니컬하고 의뭉스러운 눈빛보다, 너무나 크게 감동해 감정이 일렁이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것처럼. 




세상만사 너무나 지겹고, 너무나 화나는 일이 많다. 반짝이며 일렁이던 친구들도 염세적으로, 시니컬하게 변했다. 나도 조금은 그럴 거다. 댓글은 지옥도고, 뉴스창은 개판이다. 그럼에도 하루가 의미 있는 이유는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감동과 감정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백예린과 스텔라장의 목소리, 전도연의 연기, 이승환의 콘서트, 수많은 책에 담겨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식과 사소한 일상의 반짝이는 감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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