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맥동

by TJ

세 번째 아침은 종소리보다 먼저 왔다.


엘레나는 침대 밑으로 손을 넣었다. 손톱 끝에 긁힌 선이 닿았다.


하나.


둘.


둘 아래에 새긴 글자도 남아 있었다.


금서실. 두 사람. 문과 칼.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하루는 지워졌다. 하지만 침대 다리 안쪽의 흠집과 손바닥의 미완성 1000은 다시 살아남았다.


책상 서랍을 열자 검은 종이가 접힌 채 들어 있었다.


두 사람만 남았다.


하나는 문이고, 하나는 칼이다.


문장 아래에 밤사이 새 글자가 생겨 있었다.


문 아래를 보라.


엘레나는 종이를 접었다. 금서실 문 아래가 아니라, 더 아래. 아카데미 바닥 아래. 지하 시험장. 바람이 없던 방. 바닥 밑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푸른 바람.


이번에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방문 앞에는 카이가 서 있었다.


엘레나는 문을 열다가 멈췄다.


"언제부터 있었어요?"


"종이 울리기 전부터."


"문 앞에서 밤새 서 있었던 건 아니겠죠."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


"믿기 어렵네요."


카이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짧았다.


"금서실?"


엘레나는 검은 종이를 내밀었다.


카이는 문장을 읽고 얼굴을 굳혔다.


"지하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지 말자고 해도 갈 거지."


"이미 아시네요."


"그럼 조건을 정하지."


카이는 소매를 걷었다. 전날 새긴 상처 옆에 새 선 하나가 있었다. 오늘의 시작을 표시한 듯했다.


"첫째, 문을 열지 않는다. 둘째, 피를 흘리지 않는다. 셋째, 네가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말한다."


"넷째."


엘레나는 그의 팔을 보며 말했다.


"당신도 흔들리면 바로 말해요."


카이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말로만요?"


"좋아."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


아카데미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복도 끝 창문으로 새벽빛이 들어왔고, 청소 담당 학생들이 물통을 들고 지나갔다. 계단 아래에서는 오늘도 파란 잉크병이 떨어졌다. 엘레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잉크가 번지는 모양을 보았다.


어제와 같은 얼룩.


하지만 잉크가 퍼지는 속도는 조금 달랐다.


작은 변화가 있다.


그 사실이 엘레나를 앞으로 밀었다.


지하 시험장으로 내려가는 문은 동쪽 강의동 아래에 있었다. 이후 잠겼던 철문에는 새 봉인이 덧씌워져 있었다. 은색 선 세 개가 문틀을 감싸고 있었고, 가운데에는 이요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카이가 무릎을 꿇고 봉인을 살폈다.


"어제 없던 봉인이야."


"반복 안에서도 이요라 마스터가 손을 댄 건가요?"


"아니면 반복이 이 문을 더 빨리 닫고 있어."


"문이 기억한다는 뜻이에요?"


"장소도 기억해. 사람보다 오래."


엘레나는 손바닥을 문에 가까이 댔다. 1000의 마지막 획이 따끔거렸다. 철문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쿵.


심장 박동 같았다.


쿵.


아카데미의 바닥 전체가 아주 조금 숨을 쉬었다.


"들려요."


"뭐가?"


"아래에서 박동이 나요."


카이는 문틀에 귀를 댔다. 그의 얼굴이 느리게 굳었다.


"나도 들려."


"전에는 못 들었어요?"


"전에는 이 정도로 가까이 오기 전에 문이 열렸어."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문이 열린 적 있군요."


"있어."


"그리고?"


"더 큰 반복이 시작됐어."


카이의 목소리는 낮았다. 설명이 아니라 기억의 잔해를 밟는 목소리였다.


"하루가 아니라 계절이 되돌아갔다. 죽은 사람도 돌아왔지만, 돌아온 사람들은 조금씩 달랐어. 이름을 잃거나, 얼굴을 잃거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지."


"그래서 문을 열면 안 된다고 한 거예요?"


"그래."


"안쪽에 누가 있어요?"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검은 종이를 꺼냈다.


문 아래를 보라.


"대답하지 않으면 제가 직접 확인해요."


"안쪽에 있는 건 한 사람이 아니야."


"균열이야. 그런데 가끔 사람 목소리로 말해."


"아이 목소리."


카이의 손이 멈췄다.


"너도 들었어?"

"끝에서요. 북쪽 지하에서."


카이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늦었어."


엘레나가 낮게 말했다.


카이의 얼굴에서 방어가 한 꺼풀 벗겨졌다. 거기에는 오래 잠들지 못한 사람의 피로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알아요?"


"아직 말할 수 없어."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했죠."


"거짓말은 아니야. 말하면 네가 문을 열려고 할 거야."


"그 판단은 제가 한다고 했어요."


"이번만은 안 돼."


카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엘레나, 부탁이야. 오늘은 확인만 해."


부탁.


그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엘레나는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을 내렸다.


"확인만."


"고마워."


"아직 고맙다고 하기 이르죠."


카이는 봉인의 가장 얇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금빛이 그의 손등에서 올라와 은색 선을 살짝 밀었다. 봉인이 부서지지는 않았다. 문틈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올라왔다.


바람 없는 지하 시험장에서 불어오는 바람.


엘레나는 그 공기 안에서 소리를 들었다.


엘레나.


아니.


목소리가 스스로를 고쳤다.


열쇠.


엘레나의 몸이 굳었다.


카이가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말을 했어?"


"제 이름이 아니라..."


목 안쪽이 말라붙었다.


"열쇠라고 불렀어요."


문 안쪽의 박동이 커졌다.


쿵.


쿵.


쿵.


카이는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문틈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와 그의 손을 밀어냈다.


아래로 내려와.


이번에는 엘레나의 귀가 아니라 뼈에 닿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부르고 있어요."


"따라가면 안 돼."


"따라갈 거예요."


"엘레나."


"문을 여는 게 아니에요. 확인하는 거죠."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문틈을 통과해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 벽에는 등불이 없었다. 그런데도 바닥 문양이 희미하게 보였다. 시험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때는 차갑고 비어 있던 복도가 오늘은 살아 있는 생물의 목구멍처럼 꿈틀거렸다.


시험장 문은 열려 있었다.


안쪽 원형 바닥에는 소환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엘레나가 푸른 바람을 들었던 지점, 바로 그 가운데 선이 깨져 있었다. 균열은 가는 머리카락처럼 시작해 바닥 끝까지 이어졌다.


그 틈 아래에서 푸른 빛이 뛰었다.


쿵.


쿵.


바닥 아래에 심장이 있었다.


엘레나는 균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가 반복의 중심인가요?"


"중심으로 이어지는 입구."


"문은 어디 있죠?"


카이는 바닥 원 안쪽을 가리켰다.


"네가 서 있는 곳."


엘레나는 내려다보았다. 소환진의 선들이 그녀의 신발 끝으로 모여 있었다. 바람 정령을 부르는 원이 아니었다. 부르는 척하며 무언가를 잠그는 문양이었다.


"시험장이 아니었네요."


"시험장이기도 했어."


"누굴 시험했는데요?"


카이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문이 반응하는지."


엘레나는 웃지 않았다.


"저를 여기 세웠던 이유가 그거였군요."


"내가 정한 건 아니야."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었죠."


카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바닥 아래의 푸른 빛이 엘레나의 손바닥과 같은 박자로 뛰었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카이가 잡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늦었다. 손끝이 깨진 문양에 닿았다.


시야가 뒤집혔다.


그녀는 같은 시험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온전했고, 원 안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엘레나와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다. 아이의 손목에는 붉은 실이 감겨 있었고, 실 끝은 문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군가 말했다.


반응 없음. 다음 개체로.


장면이 끊겼다.


다시 시험장.


이번에는 원 안에 다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도 엘레나와 닮았다.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창백했다.


문양이 타올랐다.


아이의 몸이 빛으로 흩어졌다.


실패.


또 다른 장면.


또 다른 아이.


또 다른 실패.


엘레나는 손을 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들이 겹쳤다.


자연 출생체 반응 붕괴.


봉인 적합률 부족.


기억 보존 실패.


마지막 표본 준비.


그때 푸른 바람이 장면을 찢고 올라왔다.


열쇠.


엘레나는 현실로 튕겨 나왔다.


카이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엘레나!"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손끝에서 피가 났다. 아주 작은 상처였다. 그런데 바닥의 균열이 그 피를 향해 움직였다.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문양 전체가 붉게 켜졌다.


카이가 엘레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안 돼."


바닥 아래에서 목소리가 났다.


피를.


엘레나는 손을 감쌌다.


피를 주면 문이 열린다.


목소리는 이제 푸른 바람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겹이었다. 아이의 목소리, 바람의 목소리, 오래된 기록을 읽는 목소리. 그중 가장 작은 목소리가 마지막에 남았다.


조금만.


카이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물러나."


"아이예요."


"아이가 아니야."


"방금 들었잖아요."


"그래서 더 위험해."


엘레나는 카이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때 시험장 문이 열렸다.


이요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늘 단정하던 은빛 로브는 어깨가 비뚤어져 있었고, 한쪽 손에는 봉인석이 들려 있었다. 엘레나는 처음으로 이요라의 얼굴에서 통제가 무너진 흔적을 보았다.


"거기서 떨어져."


명령이었다.


카이가 엘레나 앞을 막았다.


"마스터."


"비켜라, 카이."


"설명부터 하십시오."


"비켜."


이요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바닥 문양은 엘레나의 피 한 방울을 붙잡은 채 계속 붉어지고 있었다. 이요라가 봉인석을 던졌다. 돌이 원 가장자리에 닿자 은색 사슬 같은 빛이 퍼져 균열을 눌렀다.


쿵.


바닥 아래의 박동이 반발했다.


이요라가 한 걸음 비틀거렸다.


"이건 학생이 볼 것이 아니다."


엘레나는 카이 옆에서 나왔다.


"학생을 세워 만든 문이잖아요."


이요라가 얼어붙었다.


"무엇을 봤지?"


"저와 닮은 아이들."


푸른 봉인문 안쪽에서 갈라진 바람 소리만 흘렀다.


"실패라는 말도 들었어요."


이요라의 손이 떨렸다. 아주 조금. 하지만 엘레나는 보았다.


"마스터, 저는 뭡니까?"


"지금 답할 수 없다."


"그 대답은 너무 많이 들었어요."


"엘레나, 지금 네가 묻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저 문을 닫는 일이다."


"문 안에 누가 있어요?"


이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 아래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직 닫지 마.


이요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듣지 마라."


"왜요?"


"네가 들으면 저쪽도 너를 듣는다."


카이가 낮게 말했다.


"이미 들었습니다."


이요라는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막았어야지."


"이번에는 엘레나가 결정합니다."


"그 결정이 세계를 반복시켜도?"


"숨긴 결과가 지금입니다."


둘 사이에 오래된 칼날 같은 간격이 섰다.


엘레나는 그 간격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카이와 이요라는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다. 한 사람은 지키려고 숨겼고, 한 사람은 통제하려고 잠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엘레나는 계속 문 앞에 세워졌다.


그녀는 피 묻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문이 제 피를 원해요."


이요라가 즉시 말했다.


"절대 주면 안 된다."


"왜요?"


"열리니까."


"열리면 뭐가 나와요?"


"네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것."


"아니요."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가 감당할 수 없는 거겠죠."


이요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카이는 엘레나를 보았다. 막으려는 눈이 아니었다. 말릴 준비를 하면서도, 그녀가 어디까지 갈지 기다리는 눈이었다.


엘레나는 균열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상처에서 피가 더 흐르지 않도록 꾹 눌렀다.


"오늘은 안 열어."


바닥 아래의 박동이 멈칫했다.


"하지만 네가 누구인지는 알아낼 거야."


푸른 빛이 가늘게 떨렸다.


엘레나는 낮게 말했다.


"내 이름은 엘레나야. 열쇠라고 부르고 싶으면, 먼저 왜 잠겨 있는지 말해."


시험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이요라도, 카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바닥 아래에서 작은 웃음 같은 숨이 들렸다.


이번에는 너무 작아서 바람인지 목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엘레나는 더 선명하게 들었다.


이번에도 늦었어.


봉인문 안쪽에서 아이가 말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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