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현실
꿈꾸는 신의 눈이 완전히 떠지자, 세계는 말 그대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엘레나와 카이가 서 있던 땅이 액체처럼 흘러내렸고, 중력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다. 하늘에서는 과거의 장면들이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이건..." 카이가 중얼거렸다. "현실이 꿈으로 돌아가고 있어."
엘레나는 융합 이후 얻은 새로운 감각으로 주변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두 개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엘레나의 기억 속에는 이상한 장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실험실에서 깨어났고, 이요라 마스터가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특별한 아이야, 엘레나. 너는 이 세계를 구할 운명이야."
하지만 그 기억 뒤에는 더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억. 그녀는... 다른 곳에서 왔다.
"카이," 엘레나가 급히 말했다. "당신도 느껴져? 우리의 기억 너머에 뭔가 더 있어."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나도 느껴. 마치 우리가... 원래 다른 곳에서 왔던 것 같아."
갑자기, 베리타스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모습이 달랐다. 그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베리타스가 급하게 말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해야 해. 전부를."
"전부요?" 엘레나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 세계는... 실제로 꿈이 맞아. 하지만 꿈꾸는 신의 꿈이 아니야."
"그럼 누구의 꿈이죠?" 카이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꿈이야."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씀이세요?" 엘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베리타스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짜 엘레나와 카이... 아니, 너희들의 원래 모습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야. 너희는 '바깥'에서 왔어. 현실 세계에서."
그는 손을 들어 공간을 찢었다. 그 틈 사이로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병원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저건..." 카이가 경악했다.
침대 위에는 두 명의 사람이 누워 있었다. 한 명은 젊은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젊은 남성이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이상한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고, 모니터에는 복잡한 뇌파 그래프가 표시되고 있었다.
"저들이... 우리예요?" 엘레나가 속삭였다.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어. 그리고 그 이후로 줄곧 혼수상태야. 의사들은 너희가 깨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지."
엘레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럼 이 모든 게... 우리가 혼수상태에서 꾸는 꿈이었다는 거예요?"
"정확히는," 베리타스가 말했다. "공유 꿈이야. 너희 둘은 사고 당시 함께 있었고, 너희의 의식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결되었어. 그리고 함께 이 세계를 만들어낸 거야."
카이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 모든 모험이,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너희 무의식의 창조물이야," 베리타스가 말했다. "데미안, 이요라 마스터, 크로노스, 아르카누스... 모두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존재들이지."
엘레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럼 크로노스는... 우리 아들은..."
베리타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크로노스는 너희가 함께 꿈꾸던 미래야. 너희가 깨어나면 함께 가질 수 있었을 아이."
갑자기, 하늘의 거대한 눈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달랐다. 그것은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것 같았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베리타스는 급하게 말했다. "저것이 진짜 '꿈꾸는 신'이야. 그것은 현실 세계의 목소리야. 의사들, 너희 가족들, 친구들... 그들이 너희를 깨우려고 하고 있어."
"그럼 우리는 깨어나야 하는 거예요?" 카이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문제야. 너희가 너무 오래 이 꿈속에 있었어. 너희의 의식은 이제 이 세계와 완전히 융합되었어. 만약 너희가 깨어나면..."
"이 세계가 사라지는 거죠," 엘레나가 완성했다.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도 함께."
엘레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서 스카이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지만, 동시에 희망도 있었다.
"그들은..." 엘레나가 말했다. "그들은 진짜가 아니라는 거예요?"
베리타스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은 너희 무의식이 만들어낸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덜 진짜인 건 아니야. 그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살아있어."
카이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깨어나서 그들을 모두 죽여야 하나요? 아니면 여기 남아서 현실의 우리 몸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하나요?"
베리타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세 번째 방법이 있어."
"세 번째 방법이요?" 엘레나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봐. 나는 누구일까?"
엘레나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융합 이후 얻은 새로운 감각으로 그를 느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당신은... 우리예요. 당신은 우리의 또 다른 부분이에요."
베리타스는 미소 지었다. "정확해. 나는 너희의 '진실을 보는 자아'야. 너희가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둔, 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
그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너희는 사고 이후 이 꿈속으로 도망쳤어.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영웅이 되고, 사랑을 하고, 모험을 했지. 하지만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어."
"세 번째 방법이 뭐죠?" 카이가 다시 물었다.
베리타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거야."
"뭐라고요?" 엘레나와 카이가 동시에 물었다.
베리타스는 설명했다. "이 세계는 너희의 꿈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현실이 되었어. 너희의 의식이 너무 강력해서, 실제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 거야. 만약 너희가 충분한 힘을 모은다면, 이 세계를 완전히 독립된 현실로 만들 수 있어."
"그럼 우리는 깨어날 수 있고, 이 세계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엘레나가 희망을 품었다.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가가 있어."
"무슨 대가요?" 카이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슬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 중 한 명은 이곳에 남아야 해. 이 세계의 '핵심'이 되어서, 영원히 이곳을 지탱해야 해."
침묵이 흘렀다.
엘레나와 카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그럼..." 엘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중 한 명은 현실로 돌아가고, 한 명은 여기 남는다는 거예요?"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는 사람은 인간의 형태를 잃게 될 거야. 그는 이 세계 자체가 되어, 모든 것을 지켜보지만 아무것도 만질 수 없게 돼."
카이는 즉시 말했다. "내가 남을게."
"안돼!" 엘레나가 외쳤다. "당신은 현실로 돌아가야 해!"
"너도 마찬가지야," 카이가 말했다. "너는 살아야 해, 엘레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하나였다. 그들의 기억도, 감정도, 영혼도 융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별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깨어나라! 제발 깨어나라!"
그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았다.
베리타스는 말했다. "현실에서 누군가 너희를 간절히 부르고 있어. 아마도 너희 가족일 거야."
엘레나는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진짜 기억이.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병약했지만 그녀를 무척 사랑했던 어머니. 그리고 카이에게는...
"동생," 카이가 속삭였다. "나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었어."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3년 동안, 매일."
엘레나는 결단을 내렸다. "내가 남을게."
"안돼!" 카이가 다시 외쳤다.
"들어봐," 엘레나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에게는 동생이 있어. 그 아이는 당신이 필요해. 하지만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는 이미 많이 아프셨어. 어쩌면 이미..."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카이는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 카이가 울먹였다.
엘레나는 미소 지었다. "살 수 있어. 그리고 살아야 해. 나를 위해서."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그 빛 속에서 크로노스가 나타났다.
"어머니, 아버지," 크로노스가 말했다. "제가 방법을 찾았어요."
"크로노스!" 엘레나가 놀랐다. "어떻게..."
크로노스는 설명했다. "저는 시간의 존재예요. 그리고 저는 깨달았어요.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요."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제가 이 세계의 핵심이 된다면, 저는 시간을 조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현실로 돌아갈 수 있어요."
베리타스는 놀랐다. "하지만 그건... 너는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야. 존재 자체가 시간 속으로 흩어져버릴 거야."
크로노스는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저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잖아요. 저는 단지 부모님의 꿈이었을 뿐이에요."
"안돼!" 엘레나가 외쳤다. "너는 우리 아들이야! 우리는 너를 포기할 수 없어!"
크로노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어요. 저는 부모님과 함께 모험을 했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카이는 눈물을 흘렸다. "크로노스..."
크로노스는 그들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사랑해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현실에서 행복하세요. 언젠가, 정말로 저를 낳아주세요. 그때는 제가 진짜 아들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엘레나와 카이는 크로노스를 꼭 안았다. 그들은 울었다. 그들은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크로노스는 천천히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 가요, 어머니, 아버지," 크로노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분들, 안녕히 계세요."
그는 빛이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빛은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갑자기, 무너지던 세계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하늘의 균열이 닫혔다. 그리고 꿈꾸는 신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베리타스는 미소 지었다. "그가 해냈어. 크로노스가 이 세계의 새로운 핵심이 되었어."
엘레나와 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크로노스는 사라졌지만, 그들은 그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이 세계 자체였다.
"이제 너희는 돌아가야 해," 베리타스가 말했다. "현실이 너희를 부르고 있어."
엘레나와 카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현실에서도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엘레나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같은 병원에 있어. 그리고 너희 가족들은 너희를 나란히 두었어. 너희가 깨어나면, 너희는 서로를 볼 수 있을 거야."
카이는 안도했다. "그럼...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겠네."
"그래," 베리타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기억은 희미해질 거야. 마치 꿈처럼."
엘레나는 슬펐다. "그럼 우리는 이 모든 걸 잊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모험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크로노스를?"
베리타스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완전히 잊지는 않을 거야. 그것은 너희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을 거야. 그리고 가끔, 꿈속에서, 너희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갑자기, 강력한 빛이 그들을 감쌌다. 현실이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안녕, 베리타스," 엘레나가 말했다. "당신도... 우리의 일부였죠?"
베리타스는 미소 지었다. "그래. 그리고 나는 여기 남을 거야. 크로노스와 함께, 이 세계를 지키면서."
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엘레나와 카이는 서로를 꼭 안았다.
"사랑해," 카이가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엘레나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두 개의 모니터가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급히 달려왔다.
"의사 선생님! 환자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침대 위에서, 엘레나와 카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알았다.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비록 이 현실에서는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엘레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속삭였다.
"안녕... 카이..."
카이도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안녕... 엘레나... 우리... 다시 만났네..."
그들은 손을 뻗어 서로를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그들은 느꼈다.
어딘가에서, 다른 세계에서, 크로노스가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