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등록 패가 밤에 깨어났다.
엘레나는 잠들지 않고 있었다. 회복실에서 돌아온 뒤로 침대에 눕지도 못했다. 돌판 안쪽에서 밀려 나오던 작은 손, 아이가 삼킨 말, 카이의 흔들린 숨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아버...
또 늦은 사람.
그 두 문장이 서로를 물고 돌아갔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임시 등록 패가 푸른빛을 냈다. 처음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 받았던 위치 확인 표식. 원래는 엘레나의 현재 위치를 교수진에게 알리는 감시 장치였다.
그런데 오늘은 반대로 움직였다.
패 표면에 지도가 떠올랐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중심탑, 동쪽 강의동, 남쪽 기숙사, 북쪽 지하 시험장. 그리고 지도 가장자리, 수업 안내도에도 없는 서쪽 첨탑 하나가 금빛으로 표시되었다.
표시 아래 이름이 적혔다.
ARCANUS LAB-0
엘레나는 숨을 멈췄다.
아르카누스.
금서실 명부에서 보았던 이름. 실험체 0번의 확인자로 적혔던 이름. 예언 마지막 줄을 삭제하게 만든, 모든 기록의 뒤편에 숨어 있던 이름.
방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봤어."
카이였다.
엘레나는 문을 열었다. 카이는 검을 차고 있었다. 전투 준비가 아니라, 오래된 죄를 만나러 가는 사람의 차림이었다.
"당신 등록 패도 움직였어요?"
"내 건 없어."
"그럼 어떻게 알았죠?"
"네 패가 움직이는 날을 기억해."
"또 예전 반복에서요."
"그래."
엘레나는 등록 패를 손에 쥐었다.
"오늘은 말릴 건가요?"
"말릴 사람은 따로 있어."
복도 끝에 이요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등불도 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은빛 로브는 선명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전날 회복실에서 보였던 균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엘레나."
"서쪽 첨탑으로 가려는 걸 알고 계셨군요."
"그곳은 폐쇄 구역이다."
"금서실도, 지하 시험장도 그랬어요."
"이번에는 다르다."
"항상 다르다고 하시네요."
이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아르카누스가 누구죠?"
이요라의 손이 굳었다.
"지금 그 이름을 어디서 봤지?"
"제 등록 패가 알려줬어요."
"보여 다오."
"싫어요."
짧은 대답이었다.
이요라의 눈이 흔들렸다. 엘레나는 처음으로 그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를 보호하려는 거라면 설명하세요. 막으려는 거라면 비켜 주세요."
"너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제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 결과가 999번인가요?"
카이가 장갑 끝을 잡아당겼다.
이요라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그 숫자를 어디까지 봤니?"
"충분히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보러 가는 거예요."
이요라가 손을 들었다. 복도 바닥에서 은색 봉인선이 솟아올랐다. 엘레나의 발목을 감으려는 빛이었다.
카이의 검집이 움직였다.
엘레나가 먼저 손을 폈다.
바람이 불었다.
아카데미 안에서 허락받지 않은 바람. 은색 봉인선이 흔들렸다. 엘레나는 그것을 자르지 않았다. 대신 선 사이로 자기 발을 빼냈다. 묶임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묶임이 닿지 못하는 틈을 찾았다.
이요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누가 그 방식을 가르쳤지?"
"제가 배웠어요."
"그건 아르카누스의 방식이다."
엘레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 더 확인해야겠네요."
서쪽 첨탑은 아카데미의 지도에서 지워진 건물이었다. 높은 담장 너머로 꼭대기만 보였고, 학생들은 그곳을 오래된 관측탑이라고 불렀다. 가까이 가자 관측탑이 아니라는 게 바로 드러났다.
창문이 없었다.
바람이 드나들 틈도 없었다.
첨탑 벽에는 낡은 봉인 문자가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몇몇 글자는 이요라의 필체였고, 더 오래된 글자는 금서실에서 본 연구 기록의 필체와 닮았다.
등록 패가 뜨거워졌다.
문이 열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돌문이 안쪽으로 밀리자 차가운 공기와 오래 묵은 종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카이는 먼저 들어가려 했다.
엘레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봐요."
"위험해."
"위험한 걸 당신만 먼저 보는 방식은 끝났어요."
카이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옆으로 비켜섰다.
"앞에서 세 걸음 이상 떨어지지 마."
"명령인가요?"
"부탁."
엘레나는 대답 대신 안으로 들어갔다.
첨탑 안쪽은 연구실이었다.
둥근 벽 전체가 서류장으로 막혀 있었다. 유리관은 없었다. 피 냄새도 없었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모든 것이 너무 정돈되어 있었다. 실패와 죽음을 표로 옮겨 놓으면 이렇게 깨끗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엘레나를 밀어냈다.
중앙 책상 위에는 낡은 스케치들이 펼쳐져 있었다.
엘레나는 첫 장을 보고 멈췄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과 같은 얼굴이었다.
스케치 속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 좁은 턱, 왼쪽 눈 밑의 작은 점까지 같았다. 아래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W-017. 봉인 적합률 31%. 기억 보존 실패.
다음 장.
같은 얼굴.
조금 더 어린 얼굴.
W-041. 바람 반응 과잉. 소실.
다음 장.
같은 얼굴.
W-088. 태양석 접촉 후 심장 정지.
엘레나는 종이를 넘기는 손을 멈췄다.
카이가 다가오려 했다.
"오지 마요."
그는 멈췄다.
엘레나는 마지막 장을 보았다.
W-000. 마지막 열쇠 후보.
스케치는 비어 있었다.
얼굴이 그려지지 않은 자리 아래에 작은 문장이 있었다.
자연 출생체가 실패한다면, 설계된 아이가 필요하다.
엘레나는 웃음 같은 숨을 내뱉었다.
"설계된 아이."
카이가 낮게 말했다.
"엘레나."
"부르지 마요."
"엘레나."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녀는 책상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봉인 표식 설계도가 걸려 있었다. 손바닥 모양의 문양, 아카데미 지하 시험장의 원, 태양석 조각이 놓이는 제단의 홈. 모든 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엘레나의 손바닥과 같은 미완성 숫자가 그려져 있었다.
숫자 옆에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완성 전 개방 금지.
"완성되면 뭐가 열리죠?"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또 모른다고 할 건가요?"
"몰라서가 아니야."
"말하면 제가 문 쪽으로 한 걸음 간다고요?"
"이번에는 네가 무너질까 봐."
엘레나는 돌아섰다.
"이미 무너지고 있어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그게 더 낯설었다.
"그러니까 말해요. 무너진 다음에 제가 뭘 붙잡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
카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연구실 안쪽 장치가 켜졌다.
둥근 수정판 하나가 책상 위로 떠올랐다. 표면에 먼지가 흩어지고, 낮고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록 0-13. 작성자 아르카누스.
엘레나와 카이는 동시에 수정판을 보았다.
목소리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문장 끝마다 닳지 않은 집착이 남아 있었다.
자연 출생 윈드콜러는 모두 실패했다. 바람은 문을 듣지만, 문을 견디지 못한다. 태양석은 기억을 붙잡지만, 육체를 보존하지 못한다. 예언은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 예언은 절차다.
엘레나는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수정판의 빛이 더 밝아졌다.
따라서 마지막 열쇠는 발견되는 존재가 아니라 제작되는 존재여야 한다. 재료는 바람을 듣는 혈통, 태양석 반응체, 봉인문에 거부당하지 않는 기억 구조.
카이가 책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엘레나는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가 다시 배웠다.
기록은 계속됐다.
이요라는 반대했다. 그녀는 아이가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는 도구 없이 닫히지 않는다. 실패한 아이들의 이름은 남기지 않는다. 이름은 문을 부른다.
엘레나는 이요라의 이름에서 멈췄다.
반대했다.
숨겼다.
막았다.
그 말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녀를 찢었다.
수정판 속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실험체 0번은 이름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요라는 이름을 붙였다. 엘레나. 빛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부적절한 감상이다.
엘레나는 손을 뻗어 수정판을 붙잡았다. 빛이 손바닥을 통과했다.
"그만."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감상은 실패의 원인이다. 다음 기록에서 실험체 0번의 태양석 반응을 측정한다. 만약 반응률이 1000에 도달하면, 봉인 절차를 시작한다.
수정판이 깜박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재생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아이를 만들었다.
연구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엘레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숫자는 여전히 미완성인 채 빛나고 있었다. 1000이 되지 못한 선. 그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절차.
그녀는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 웃음이었다. 짧고, 메마르고, 칼날 같은 웃음.
"만든 사람보다 제가 저를 더 잘 알아야겠네요."
카이가 한 걸음 다가왔다.
"엘레나."
"괜찮다고 말하지 마요."
"말 안 해."
"제가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마요."
"그 말도 안 해."
"그럼 뭘 말할 건데요?"
카이는 오래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미안해."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당신이 만들었어요?"
"아니."
"하지만 알고 있었죠."
"일부만."
"그 일부 때문에 제가 계속 문 앞에 섰고요."
"그래."
짧은 인정이었다. 변명은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연구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이요라가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수정판을 보았고, 펼쳐진 스케치들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엘레나를 보았다.
"결국 봤구나."
엘레나는 스케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제가 몇 번째예요?"
이요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0번이면 처음인가요, 마지막인가요?"
이요라의 입술이 떨렸다.
"둘 다다."
그 대답이 연구실 바닥에 떨어졌다.
엘레나는 스케치를 내려놓았다.
"내일 설명하세요."
"지금..."
"아니요. 지금은 제가 들을 수 없어요."
이요라가 다가오려 하자 엘레나는 바람을 세웠다. 얇지만 단단한 바람이었다. 이요라는 멈췄다.
"내일, 거짓말 없이요."
"엘레나."
"그리고 그 아이 이름도."
카이가 눈을 감았다.
이요라는 그를 보았다.
두 사람 모두 말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등록 패를 쥐고 연구실을 나섰다. 서쪽 첨탑 밖으로 나오자 새벽이 오고 있었다. 하늘은 엷게 밝았고, 아카데미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손바닥의 1000은 잠들지 않았다.
마지막 획이 아주 조금 더 길어져 있었다.
엘레나는 그것을 보며 낮게 말했다.
"완성되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낼 거야."
그때 등록 패 뒷면에서 미세한 금속음이 났다.
엘레나는 패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없던 뒷면에 새 문장이 떠오르고 있었다.
창조 기록 열람 조건.
피험체 본인과 예언 작성자의 동시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