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거짓말
새벽이 밝아오자, 아카데미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기괴한 생물들이 곳곳을 배회했고, 학생들은 임시 대피소에서 떨고 있었다. 엘레나와 카이는 밤새 싸웠지만, 이 생물들은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이상해," 엘레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 바람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 마치 그들이 우리와 다른 법칙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카이도 지쳐 보였다.
"내 검도 마찬가지야. 베어도 상처가 아물어버려."
그때, 어제 밤 균열에서 나타난 그 신비한 존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30대 정도의 남성으로 보였지만, 그의 눈에는 수천 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너희들이 고생하고 있구나,"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슬펐다.
엘레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죠? 어제 밤 균열에서 나온 건 봤어요."
남자는 쓸쓸히 미소 지었다.
"내 이름은 베리타스. 그리고 나는...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러 왔다."
"진실이요?" 카이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베리타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모든 것... 너희가 경험한 모든 모험, 모든 싸움, 모든 승리와 패배... 그것들이 과연 진짜일까?"
엘레나는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물론 진짜죠. 우리가 직접 겪은 일인데."
베리타스는 고개를 저었다.
"엘레나, 너는 언제부터 스카이 아카데미에 있었지?"
"저는... 저는..." 엘레나가 말을 멈췄다. 이상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부터 아카데미에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카이, 너는 어떠니? 너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나?"
카이도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왕자라고 했는데... 하지만 어떤 왕국의 왕자인지, 내 부모가 누구인지..."
베리타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의 기억은 조작된 것이다. 너희들은 진짜 엘레나와 카이가 아니야."
"뭐라고요?" 엘레나가 충격을 받았다.
베리타스는 손을 들어올렸다.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가 사라지고, 그들은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수많은 유리관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두 개의 유리관에는...
"저건..." 카이가 경악했다.
유리관 안에는 엘레나와 카이와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떠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있었고, 수많은 전선이 그들의 머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저들이 진짜 엘레나와 카이다," 베리타스가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은..."
엘레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의 피부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복잡한 마법 회로들이 보였다.
"우리는... 인공 생명체인가요?" 엘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베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기억 투영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짜 엘레나와 카이의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지."
카이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가 겪은 모든 일들이 가짜라는 거예요? 우리의 감정도, 우리의 사랑도?"
"아니다," 베리타스가 단호히 말했다.
"너희의 감정은 진짜다. 너희가 느낀 모든 것들은 실제였어.
다만, 너희가 기억하는 과거가 조작된 것일 뿐이야."
엘레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누가 우리를 만든 거죠? 왜?"
베리타스는 실험실의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답이 있다."
그들이 따라가자, 거대한 컴퓨터 같은 장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마침내 왔구나," 그 여성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여성이 돌아섰을 때, 엘레나와 카이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요라 마스터였다.
하지만 어제 밤 아르카누스와 함께 사라진 게 아니었나?
"이요라 마스터?" 엘레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요라 마스터는 미소 지었다.
"놀랐니? 하지만 어제 밤 죽은 것도 나였고,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나야.
시간은 생각보다 복잡한 거란다."
베리타스가 설명했다.
"그녀는 시간 루프를 만들었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미리 이곳에 자신의 복사본을 만들어둔 거야."
이요라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이 모든 실험의 목적은... 완벽한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지."
"완벽한 영웅이요?" 카이가 물었다.
"그래," 이요라 마스터가 설명했다.
"진짜 엘레나와 카이는 너무 약했어. 그들로는 꿈꾸는 신을 막을 수 없었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더 강한 버전의 그들을 만들어낸 거야."
엘레나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는 당신의 실험용 쥐였다는 거예요?"
이요라 마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실험용 쥐가 아니라, 구원자야. 너희들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진작에 멸망했을 거야."
그때, 갑자기 실험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죠?" 베리타스가 물었다.
이요라 마스터는 컴퓨터를 확인했다.
"진짜 엘레나와 카이가 깨어나고 있어. 그들이 너희들의 존재를 감지한 거야."
유리관 속의 진짜 엘레나와 카이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저들이 깨어나면 어떻게 되죠?" 엘레나가 물었다.
이요라 마스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이 사라져. 같은 존재가 두 명 있을 수는 없거든."
카이는 검을 뽑았다.
"그럼 우리가 먼저 그들을 막아야겠군요."
"안돼!" 베리타스가 외쳤다.
"그들을 해치면, 너희들도 함께 사라져. 너희들은 그들의 일부니까."
그때, 유리관이 깨지기 시작했다.
진짜 엘레나와 카이가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복사본인 엘레나와 카이를 노려보았다.
"너희들이 우리의 삶을 훔쳐간 거구나," 진짜 엘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기억을,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모든 것을," 진짜 카이가 덧붙였다.
복사본 엘레나는 슬펐다.
"우리는... 우리는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진짜 엘레나는 비웃었다.
"살고 싶다고? 너희는 애초에 살아있지도 않았어. 너희는 그냥 기억의 조각들일 뿐이야."
갑자기, 두 엘레나 사이에 강력한 마법의 충돌이 일어났다.
진짜 엘레나의 바람 마법과 복사본 엘레나의 바람 마법이 부딪혔다.
"흥미롭군," 베리타스가 중얼거렸다.
"복사본이 원본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어."
두 카이도 검을 뽑고 대치했다.
그들의 검술은 완전히 똑같았다.
이요라 마스터는 당황했다.
"이상해. 복사본들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베리타스는 미소 지었다.
"그것은 그들이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이죠?" 이요라 마스터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설명했다.
"복사본들은 원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어.
그들은 데미안과 싸웠고, 시간 여행을 했고, 크로노스를 만났어.
그 모든 경험들이 그들을 원본보다 더 강하게 만든 거야."
진짜 엘레나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는 뭐가 되는 거야? 우리가 진짜인데!"
베리타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이 세계를 사랑하고, 누가 더 이 세계를 지키려고 하느냐 아닐까?"
그때, 갑자기 실험실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두 쌍의 엘레나와 카이가 싸우면서 발생한 마법의 충돌이 공간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곳이 무너지고 있어!" 이요라 마스터가 외쳤다.
베리타스는 결단을 내렸다.
"모두 내 말을 들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어."
"무슨 방법이죠?" 복사본 엘레나가 물었다.
"융합이야," 베리타스가 말했다.
"원본과 복사본이 하나가 되는 거야.
그러면 두 존재의 기억과 경험이 모두 합쳐져서, 더욱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진짜 카이는 거부했다.
"싫어! 왜 우리가 가짜들과 합쳐져야 해?"
복사본 카이도 망설였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요?"
베리타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풍부해지는 거야.
너희들의 모든 기억, 모든 감정, 모든 경험이 하나로 합쳐져서,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어."
실험실의 붕괴가 가속화되었다.
천장에서 거대한 돌덩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이요라 마스터가 외쳤다.
"빨리 결정해!"
복사본 엘레나는 진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함께 할까요?"
진짜 엘레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복사본 엘레나의 눈에서 진실한 마음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좋아," 진짜 엘레나가 말했다. "함께 하자."
두 엘레나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강력한 빛이 그들을 감쌌다.
그들의 몸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카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카이와 복사본 카이가 손을 잡자, 그들도 빛에 감싸였다.
융합이 완료되었을 때, 새로운 엘레나와 카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 강해 보였고, 그들의 눈에는 두 배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어떤 기분이니?" 베리타스가 물었다.
새로운 엘레나는 미소 지었다.
"완전해요. 처음으로 완전한 기분이에요."
새로운 카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기억이 선명해요. 진짜 기억도, 만들어진 기억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저예요."
이요라 마스터는 감탄했다.
"놀라워. 완벽한 융합이야."
하지만 베리타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시험이 시작이야."
"무슨 시험이요?" 엘레나가 물었다.
베리타스는 실험실 밖을 가리켰다.
"꿈꾸는 신이 다시 깨어나고 있어.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깨어날 거야.
너희들의 융합이 그를 자극한 거야."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나의 꿈을 방해하는가..."
그 목소리만으로도 실험실 전체가 흔들렸다.
아니, 세계 전체가 흔들렸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 싸움이야," 베리타스가 말했다.
"너희들이 이기지 못하면, 모든 현실이 사라져."
엘레나와 카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완전했다.
그들은 모든 기억과 모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준비됐어?" 엘레나가 카이에게 물었다.
카이는 미소 지었다. "언제나."
그들은 손을 잡고 실험실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거대한 눈이 떠 있었고, 그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꿈꾸는 신," 엘레나가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막을 거예요."
"감히..." 꿈꾸는 신이 분노했다.
"감히 나의 꿈에서 나를 거역하려 하는가..."
갑자기, 현실 자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녹아내렸고, 하늘이 갈라졌으며, 시간이 뒤섞였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엘레나가 말했다.
그들의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했고, 그들은 함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계를 사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