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 작가가 웨딩 스냅을 찍혀보는 일
웨딩 스냅 작가로 2년 정도 일했을 무렵, 나도 내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결혼이란 일련의 컨베이어벨트처럼 생략 없이 밟아야 하는 의식들이 많은데, 그중 웨딩 촬영이 메인이다.
먹는 걸 좋아한다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 것처럼, 찍는 걸 좋아한다고 찍히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렌즈 뒤에 서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앞에 서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질색하는 편이다.
렌즈가 나를 향할 때마다 총구가 겨눠지는 기분이다. 얼음이 된다. 목 아래는 그나마 낫지만 표정 연기를 요구받는 순간 신인 배우처럼 연거푸 NG를 낸다. 계속해서 “이게 잘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배우는 돈 받고 찍는 거니까 사과라도 하지. 나는 돈 내고 찍는 고객인데.
반면 예비 신부는 찍히는 걸 아주, 아주 좋아한다. 우리 커플은 총 세 번의 웨딩 촬영을 했다. 한 번은 홍콩에서 야외 스냅, 한 번은 일반 스튜디오 촬영, 마지막 한 번은 지금 내가 소속된 업체 대표님께 대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 적당히 좋아해서는 쉽지 않은 횟수다.
드레스도 직접 알리, 테무에서 구매했다. 당근으로 다시 판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네.
신부는 단순히 좋아하는 걸 넘어서, ‘잘’ 한다. 작가가 10을 디렉션 주면 15를 해낸다. 워낙 출중한 미모 덕도 있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게 모델 같다. 나는 사진에서 웃는 게 푼수 같은데, 신부는 ‘적당히 예쁘게’ 웃는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표정과 예쁘게 안 나오는 자세를 정확히 안다.
나는 촬영을 하는 사람에서 촬영당하는 사람이 되면서 “아 이런 거구나"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찍히는 경험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찍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다.
1) 어떻게 고객을 응대하고 리드하는가 (서비스업 마인드)
웨딩 촬영은 본질적으로 서비스업이다. 고객은 결과물보다 먼저 ‘작가’를 경험한다. 홍콩에서 촬영했던 작가는 분위기를 풀겠다며 신랑을 놀리는 농담을 몇 차례 던졌는데, 그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정말 농담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끝이 매끄럽지 않았다.
현장의 공기가 결과물에 그대로 묻어난다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데, 자연스러운 표정이 가능했을 리가. 결론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결과물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홍콩 사진을 별로 꺼내보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촬영을 2번이나 더 하게 된 단초가 됐다.
또 한 번은 웨딩 스튜디오 촬영이었는데, 사진작가에게서 묘하게 술 냄새가 났다. 아마 전날 회식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라고 금주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고객이 느낄 정도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랑신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날을 위해 몇 주 동안 다이어트를 하며 준비했는데, 그 정성에 술냄새가 섞여선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촬영 전날 금주는 나만의 철칙이 됐다. 예전엔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엄격히 자제한다.
2) 어떻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유도하는가 (디렉션의 기술)
예비 신부와 함께 웨딩 촬영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고객은 꼭 내가 상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가는 고객을 내 생각대로 끌어오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세 번째 촬영에서 우리 대표 촬영이 그랬다.
대표는 먼저 고객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파악했다. 촬영 전부터 원하는 시안이 있는지, 그리고 왼쪽 얼굴이 나은지 오른쪽 얼굴이 나은지와 같은. 예비 신부는 자연스러운 웃음과 포즈에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대표는 최대한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쾌한 대화와 분위기로 촬영장을 리딩했다.
반대로 뚝딱이인 나를 위해선 손을 잡고 걷는 모습, 뒷모습, 실루엣 위주의 구도에서 나를 잘 활용했다.
내 웨딩 촬영 이후부턴 나도 "고객 이해하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먼저 준비하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 고객은 프로 모델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디렉션을 줄 때 늘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하면 가장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건 사진의 퀄리티보다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편해야 잘 나오기 때문이다.
3) 찍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정선을 이해하기
찍히는 사람은 늘 불안하다. 지금 나 예쁜가? 어색하진 않나? 작가가 말은 안 하지만 불만이 있는 걸까? 이 모든 게 마음속을 요동친다. 그걸 직접 체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어색한 표정이 자꾸 이 멋들어진 촬영 분위기를 산통깨는 것 같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최소한 인물 촬영은 현장에서 기술자보단 공감하는 사람에 가까워야 한다. 대표는 촬영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카메라 LCD화면을 통해서 어떻게 촬영이 되어가고 있고, 어떤 표정일 때 예쁜지를 피드백했다. 나는 그날, 내 사진보다도 나를 어떻게 대해줬는지로 3명의 작가를 기억한다.
물론 이 모든 건 결국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담보로 하는 이야기다. 모든 게 좋아도, 사진이 안 예면 말짱 도루묵일 테니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웨딩 스냅 작가인 내게는 ‘실전 교육장’이기도 했다. 대게는 나쁠 때 쓰는 말이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처럼, 찍는 사람은 찍히는 와중에도 작가만 보게 됐다.
그런 여러 번의 담금질이 있고 난 후에 지금은, 조금은 카메라 앞에서 여유가 생긴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