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Surf Tour
"배럴안에 있을때가 가장 평온해요"
Kelly Slater의 인터뷰 영상에서 내가 꽂힌 부분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평온함의 페르소나를 세계 surf 챔피언에서 찾게 될줄이야. Kelly Slater는 20년간 세계 정상을 지킨 42살의 서핑 챔피언이다. 할아버지뻘 나이로 얼마전 또 우승을 했다. 승리에 대한 집요함, 끊임없는 자기관리, 업에 대한 애정 등 인터뷰만 봐도 존경심이 들었다. 유투브에서 관련영상을 하나씩 야금야금 보다 보니 거의 모든 영상을 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더 나이먹기 전에 서핑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갈까? '발리'로 가자!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여행의 큰 줄거리를 정했다. (속전속결)
1) 서핑 제대로 배우기
2) 현지 음식 제대로 맛보기
3) 숨겨진 여행지 탐방
그리고 발리로 떠난다는 사실을 잊고 바쁘게 살다가 출발했다.
원래 한국 서핑 캠프는 피하려고 했다. 굳이 발리까지 가서 한국사람들이랑 복작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국 캠프가 더 저렴했다. 그리고 사실 스노보드, 웨이크보드 경력자인 나는 서핑도 순식간에 마스터할 줄 알았기에 아무 데서나 배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ㅋㅋ 그래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한국 서핑 캠프를 예약했다.
캠프는 관광객이라곤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스미냑에서 살짝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친절한 캠프 사장님은 다인실 금액으로 개인실을 예약할 수 있게 해주셨다.
서핑을 접하는 첫날.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유튜브에서 ‘how to surf like a pro’와 같은 영상을 보면서 수차례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친 터라 금방이라도 배럴을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ㅎㅎ
그런데 첫날 방문한 스랑안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파도는 어림잡아서 100m 밖에서 철썩거리고 있었다. 저 멀리까지 패들링 해서 나가야 했다. 한 5분 열심히 패들링 했을까? '어? 이거 꽤 힘이 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열심히 라인업까지 나갔다. 그리고 파도가 밀려오는 거에 맞춰서 강사가 내 보드를 힘껏 밀어줬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멀리까지 패들링 해서 나오느라 팔힘이 많이 빠져있었고, 이따금씩 나를 덮치는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에서 몇 바퀴 통돌이를 당하니 보드 위에서 균형 잡고 엎드려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악착같이 일어나려다가 바다에 빠지고 보드에 기어올라오기를 몇 번 하니 체력이 바닥이 났다. 바닷물도 엄청 들이켰다.
이제는 뭍으로 나가야겠다 생각하고 해변을 향해 남은 힘을 쥐어짜서 패들링 했다. '어?' 단 1m 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초조해졌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제자리에서 용을 썼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였다. 헉헉 대면서 또 한 10분을 생각 없이 앞으로 돌격했다. 이제는 더 이상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침착하자' 일단 보드 위에서 쉬면서 체력을 충전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니 해류가 나를 바다로 밀어내고 있었다. 일단은 해류에서 벗어나야 했다. 보드를 90도 돌려서 해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패들링 했다. 더 이상 팔이 안 올라가면 보드에서 내려서 발차기하면서 옆으로 움직였다. 어느 순간부터 뒤에서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해변으로 나를 밀어냈다. 겨우 발에 땅이 닿았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핑을 통해서 되새기게 될 줄은 몰랐다. 숙소에 돌아와서 rip(이안류)에 대해서 공부했다. 뭔가 찌릿찌릿한 경험이었다.
첫날의 경험 덕분에 발이 닿는 Kuta 해변에서는 자신감이 붙었다. '입 서핑'은 참 쉽다. 패들링을 해서 라인업까지 나아간다. 보드 위에서 자리를 잡고 파도가 나를 밀어내기 시작하면 열심히 패들링을 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낮추고 앞뒤 좌우 균형을 잡는다. 상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면 보드도 함께 돌아간다.
10일 동안 무참히 넘어지고, 통돌이 당하고, 물 마시면서야 겨우 몸에 익힐 수 있었다. 4일 차부터 몸도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패들링을 힘차게 해도 몸이 쉽게 지치지 않았다. 파도를 제대로 잡았을 때 느낌이 너무 좋다. 슈슈슉 파도 위를 미끄러지면서 빠르게 앞으로 나간다. 긴박하지만 평온한 느낌이다. 더 잘하고 싶어 졌다. 다음에는 꼭 숏보드까지 마스터하고 싶다.
캠프의 강사는 모두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Nias 출신이다.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지 섬 모양으로 타투도 하고 있었다. 이중 책임자는 한때 퀵실버에서 스폰서를 받는 유명한 프로 서퍼였다고 한다. 물속에서는 정말이지 한 마리 물개와도 같았다. Nias 출신이어서 모두 그 섬말을 쓰고 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친척인 셈이다. 내가 10일 안에 파도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10일 동안 우리가 방문한 곳은 Kuta , Serangan, Batu bolong , Jimbaran이었다. 각 스팟에 대해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Kuta는 발이 닿기에 라인업까지 걸어나갈 수 있어서 심적으로 안정감이 들고 체력 소모가 덜하다. Serangan은 보통 우기에 많이 가는 포인트라고 한다. 라인업까지 멀리 나가야 한다. 바투 볼롱은 먼가 젠틀하고 배려심 넘치는 파도였다. 끊김이 없었고 부드럽게 서퍼를 쭈욱 밀어주는 느낌. 짐바란은 너무 파도가 작아서 시시하지만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바투 볼롱 비치가 제일 좋았다. 다음에 시간이 난다면 여기에 베이스를 잡고 죽어라 연습하고 싶다.
내년에는 살을 빼고, 몸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도전해 보고 싶다.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스포츠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본다. 웨이크 보드는 가뿐하게 투웨이크는 넘는 수준인데, 웨이크보드 보다 2배 더 어렵고 2배 더 재밌는 것 같다. 더 잘하고 싶고, 얼마안되는 일부에게만 허락된 환상적인 파도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 체력적으로는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내 꼭 다시 오리라.
Kuta beach
발리 여행의 정석 (1.서핑 편 - https://brunch.co.kr/@joohoonjake/38)
발리 여행의 정석 (2.음식 편 - https://brunch.co.kr/@joohoonjake/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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