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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동자(2)

by 주이슬 Mar 23. 2025


저 멀리 마니네 집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린델은 마당에 서 있는 익숙한 두 명을 알아보았다. 가린과 하델이었다. 둘은 지유, 고운과 동그랗게 모여서 이마를 맞댄 채 아무런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나나도 그 모습을 발견했는지 점차 걸음이 빨라졌다. 린델은 나나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꼬리로 지면을 도움닫기 하며 뜀박질해야 했다. 집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매캐한 냄새가 났다. 처음 맡아본 냄새는 아니었다. 린델은 코를 몇 차례 킁킁대다 뜀박질을 멈추곤 우뚝 섰다. 꼬리가 가볍게 떨렸다. 약초처럼 싱그러운 향에 달큰함이 섞여 있고, 코를 톡 쏘는 향도 느껴졌다. 푸른 갈퀴를 태울 때 나는 냄새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뜀박질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이 풀을 태우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일 년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의식을 치를 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린델, 멍하니 있지 말고 당장 집으로 들어가!”

나나는 린델을 울타리 안으로 떠민 뒤 마니네 집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린델은 발이 떨어지질 않아 가만히 선 채로 멀어지는 나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나가 네 사람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맞대고 있던 이마를 뗀 뒤 푸른 갈퀴를 한 단씩 집어 들었다. 그리곤 온 집안과 바깥을 돌아다니며 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잿빛과 짙은 파란 빛이 섞인 연기가 매캐하게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연기가 바람에 실려 린델의 가까이 날아왔다. 눈이 따가웠다. 연기가 보호가 아닌 공격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운이 크게 기도문을 외우자, 우렁찬 목소리가 지면을 타고 린델의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울렸다. 진동에 맞춰 린델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또 한 가지는…….”


아이가 태어난 날 이후로 마니와 로안은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 둘은 열매를 따러 숲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마당에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자라다 만 눈물초가 노란빛을 띠며 시들해져갔다. 마당에 심긴 꽃을 돌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산책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린델은 괜히 둘의 집 앞에서 풀과 꽃을 뜯으며 소꿉놀이를 했다. 그러면 언제라도 로안이나 마니가 활짝 웃으며 “린델, 네가 좋아하는 햇살버들 차를 끓였어! 얼른 마시러 들어와.”라고 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집 안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분명 린델의 목소리와 콧노래를 들었을 법한데도 화답하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따스한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심심하면 물가로 놀러 가는 계절이 되었다. 하지만 마니와 로안은 여전히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간혹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을 때 말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무더위도 곧장 지나고 바람이 점점 시원해졌다. 한창 노을향이 자라고 잔물결 열매가 익을 대로 익어 툭툭 떨어지는 계절이 왔다. 린델은 어떤 날은 잔물결 열매를, 어떤 날은 노을향을 가져다 둘의 집 앞에 조용히 놔뒀다.

노을향은 보랏빛의 넓은 이파리로, 로안과 마니는 이걸 그냥 들고 다니며 냄새 맡길 좋아했다. 마음이 서글퍼지는 향이 난다고 했다. 린델은 그게 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이른 새벽이나 추운 겨울 아침에만 맡을 수 있는 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현관문 앞에는 하루이틀 열매와 이파리가 쌓여갔다. 린델은 열매에 벌레가 꼬일 때면 새로운 열매로 바꿔서 가져다 놓았다. 노을향 이파리가 바싹 마르면 새로운 풀을 꺾어서 가져다놨다. 한동안 둘은 영원히 사라질 줄 모르는 것처럼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빈도가 잦아졌다. 린델은 곧 마니와 로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뜬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린델은 밤마다 창문가에 서서 옆집 동향을 살폈다. 원래 이 시간쯤엔 창문 가에 놓인 촛불이 노란색으로 일렁여야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그럴 낌새가 영 보이지 않았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하니?”

뒤를 돌아보자 하델이 서 있었다. 그는 린델의 시선을 따라 창문 밖의 옆집을 바라봤다.

“마니랑 로안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시간이 늦었으니 자고 있을 거야.”

“같이 집에 가보면 안 돼요?”

하델은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너무 늦었잖아. 나중에.”라고 답했다.

“얼른 자야지. 그래야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진단다.”

“꼬리도 튼튼해지고요?”

린델이 몸을 누이며 뱉은 물음에 하델은 다정하게 웃으며 이불을 덮어줬다.

“마니랑 로안은 토타족이죠?”

린델이 질문하자 하델은 즉각 “그럼.”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모운이 태어났어요?”

하델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턱 근처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고 중얼거렸다.

“모운이라는 말을 하면 안 돼. 그 아기는 모운이 아니야. 단지… 우리보다 조금 약할 뿐이야.”

“로안은 주춤이가 태어날 걸 알고 있었을까요?”

“그건 아닐 거야. 그걸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린델은 입술을 쭉 내민 채 질문을 이어갔다.

“마니랑 로안은 착하잖아요. 왜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긴 걸까요?”

“토타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기도 해. 우리가 그 일로부터 깨닫는 게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우릴 싫어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린델은 입술을 여전히 앞으로 한껏 내밀곤 생각에 잠겼다. 하델이 살짝 웃으며 린델의 입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친 다음 이마에 길게 입을 맞췄다. 그리곤 자신의 왼쪽 뺨을 린델의 보드라운 이마에 가져다 댄 채 짧은 기도를 올렸다.

“린델이 자는 동안 보호받길. 토타의 자애로움이 온몸으로 스며들길 바랍니다.”

평소와 달리 하델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린델을 꼭 안고 있었다. 그의 딱딱한 광대뼈가 린델의 이마를 찔렀다.

“숨 막혀요….”

린델이 볼멘소리를 하고 나서야 그는 얼굴을 떼고 다정한 눈으로 린델을 바라봤다. 가린처럼 자애로움이 느껴지는 눈. 유나처럼 흑요석같이 검게 빛나는 멋진 눈동자. 린델은 이불을 눈 바로 밑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곤 웅얼거리며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하델… 내가 만약 주춤이로 태어났으면, 날 버렸을 건가요?”

하델의 눈이 커지더니 이윽고 린델의 눈을 피해 맞은편 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곳을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다시 한번 턱 근처를 좌우로 여러 번 쓸었다. 그리곤 눈을 천천히 세 번 감았다 떴다. 끔뻑. 끔뻑. 끔뻑. 그리곤 입을 뗐다. 혀가 입천장에서 떨어지며 “쩝” 소리가 났다.

“넌 평생 우리와 함께 살았을 거야.”

기대하던 답을 듣자 린델이 작은 한숨을 폭 쉬었다. 하지만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영 찜찜했다. 뾰족한 무언가가 심장 부근에 걸려 있다가 점점 목을 타고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사랑해 린델.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초가 꺼지며 연기가 방 안에 퍼졌다. 문이 닫혔다. 린델은 조용히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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