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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을 타고(1)

by 주이슬 Mar 26. 2025


네 아이와 조약돌을 가득 실은 나룻배가 물 위를 휘청거렸다. 시온과 이재가 노를 하나씩 맡아서 저었지만, 처음 합을 맞춰보는 거라 그런지 배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금방이라도 물에 빠질 것 같아 린델은 작은 배 난간을 양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잘 좀 해봐!”

유나가 재촉하자 시온과 이재가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성실하게 합을 맞춰나갔다. 한참 제자리만 돌던 나룻배는 드디어 철벅, 쏴. 철벅, 쏴. 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물이 쪼르륵 흐르는 소리가 린델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정말 여기로 쭉 가면 주춤이들 볼 수 있는 거 맞아?”

“그렇다니깐. 저번에 고운이 그 괴물 버리러 갔었잖아.”

‘괴물’이라는 시온의 말에 린델은 입안을 살짝 깨물었다.

“그때 이재랑 나랑 숨어서 다 지켜봤어. 이 배를 타고 앞으로 쭉 갔거든.”

시온이 잠깐 손을 멈추곤 검지를 앞으로 쭉 뻗었다.

“저기, 저 돌무더기 높게 쌓인 곳 보이지? 아마 저기로 갔을 거야.”

유나는 열성적으로 말하는 시온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배에 실은 조약돌을 하나 집어 물수제비를 띄웠다.

“야! 그만 던져! 몇 개 안 남았다고.”

시온의 볼멘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통, 통” 물수제비 뜨는 소리가 경쾌하게 퍼졌다. 유나는 “하나, 둘, 셋…”하며 물수제비 횟수를 세더니 이윽고 철퍽 주저앉았다. 배가 크게 휘청였다. 유나는 배를 꼭 잡고 가만히 앉아 있는 린델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무슨 생각 해?”

린델이 불안한 눈으로 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진짜 이런 짓 해도 돼? 혼나면 어떡해.”

“안 혼나. 걔넨 저주받은 애들이잖아. 혼내주러 가는 건데 뭐. 오히려 칭찬 들을걸? 나 믿어봐.”

유나는 다정하게 린델의 손을 감싸 쥐었다. 포동포동하고 따끈한 유나의 손이 닿자 린델의 귀에 열이 확 올랐다. ‘저주받은 게 아닌데’라는 말은 입안을 맴돌다 결국 허공으로 사라졌다.

“유나는 린델만 좋아해. 너 그거 차별이야.”

이재가 심술 난 목소리로 말했다. 민망해진 린델은 유나에게 잡힌 손을 슬쩍 빼낸 다음 목을 쭉 빼고 어디쯤 왔는지 뒤돌아봤다. 강변 너머로 무성하게 우거진 풀과 여러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을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보호소가 있는 곳은 로안이 수업 시간 때 알려준 것처럼 척박해 보였다. 풀도 듬성듬성 나 있어서 누군가 억지로 심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커다란 돌무더기인 줄 알았던 구조물이 제모습을 드러냈다. 직사각형의 2층짜리 건물 한 채였다. 그 건물은 그늘나무로 짓는 토타족의 집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가 올라가 있긴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고, 틈새를 진흙과 돌, 바싹 마른 나뭇가지, 잎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정히 쌓아 올렸다기보단 재료를 뭉텅이로 발라 놓은 것과 비슷해 보였다. 유나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으, 저게 뭐야? 이상해. 정말 저기에 주춤이들이 살고 있는 거야?”

노를 쉴 새 없이 젓느라 얼굴이 빨개진 시온이 거친 숨과 함께 겨우 말을 뱉어냈다.

“아마… 그럴… 걸.”

그러더니 노를 배 위로 집어 던지며 “더 이상 못 해!”하고 고함을 친 후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이재도 노를 슬며시 내려놓고 나룻배에 앉았다. 유나는 배에서 건물까지의 거리를 대충 가늠하더니 “이만하면 충분할 거 같아”라고 했다.

아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동태를 살폈다. 나룻배와 건물까지의 거리는 수영해서 가기엔 조금 멀어 보였고, 그렇다고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유나가 바닥에 실려 있는 조약돌 중 하나를 손에 꼭 쥐었다. 이재와 시온도 덩달아 하나씩 집어 든 채 숨을 죽이고 저 너머를 쳐다봤다. 린델도 조용히 옆에 놓여 있던 조약돌을 살짝 쥐어봤다. 반들반들한 몽돌이 손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야, 나왔어! 나왔다!”

시온의 호들갑에 아이들이 건물 쪽을 응시했다. 커다란 건물에서 주춤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린델의 또래처럼 보이는 아이들부터, 마니와 로안처럼 성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그들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휘청이거나 멈칫거렸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었다. 린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마치 균형을 잃은 곤충이 뒤집어진 채로 빠르게 바둥대는 걸 볼 때처럼, 도와주고 싶지만 손을 대긴 두려운 느낌이었다.

유나는 배 위에 두 발을 딛고 우뚝 섰다. 그러고는 꼬리를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잠깐 중심을 잡은 뒤, 곧이어 힘껏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이재와 시온도 따라서 돌을 던졌다. 휙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재와 시온이 던진 대부분의 조약돌은 물속으로 힘없이 퐁당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린델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을 꽉 깨물고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던지는 모습이 경쾌한 퐁당 소리와 잘 어울렸다. 유나가 던진 돌은 지면까지 여유롭게 가 닿았다.

돌이 땅에 튀며 흙먼지를 일으키자 주춤이들이 나룻배를 쳐다봤다. 그들은 삽과 곡괭이, 갈퀴 등을 쥐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농사를 지으러 가는 길인 것 같았다. 린델은 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을 건너와 저 무시무시한 무기로 본인들을 위협하는 상상을 했다. 누가 알겠는가. 땅 위에서는 잘 못 걷더라도, 수영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첨벙소리와 휙 소리, 지면에 닿을 때마다 탁, 타닥 하고 튀는 소리가 섞였다. 린델의 걱정과는 달리 주춤이들은 물속으로 달려들긴커녕 경계하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러던 중 린델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아이가 돌을 하나 집어 들어서 힘껏 던졌다. 돌은 조금밖에 날아가지 못한 채 금방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이는 돌과 운명을 같이하기라도 한 듯 비틀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유나와 이재, 시온이 그 모습을 보며 신나게 웃었다.

잇몸까지 시원하게 드러내며 웃던 유나가 굳어 있는 린델을 바라봤다. 유나의 시선을 눈치챈 린델의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린델은 눈을 꼭 감고 돌을 던졌다. 팔을 최대한 뒤로젖히고, 두 발과 꼬리엔 힘을 줘서 지면을 탄탄하게 받친 다음, 연습했던 것처럼 허리도 함께 앞으로 돌리면서 손을 힘껏 뻗었다.

돌이 휙 소리를 내며 날아가 지면에 꽂혔다. 이재랑 시온이 환호하며 린델의 두 어깨를 두드렸다. 유나도 “잘 던지는데?”라며 한마디 했다. 고양감에 휩싸인 린델은 다시 한번 돌을 집어 던졌다. 들떠서 팔을 살짝 위로 뻗은 게 화근이었을까. 경쾌한 소리를 내며 질주하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조약돌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갔다. 린델과 아이들의 고개가 돌을 따라 돌아갔다. 아이들이 고개를 멈춘 곳엔 아직 넘어진 채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주춤이가 있었다.

“안돼!”

린델의 바람과는 달리 돌은 주춤이의 정수리 위로 뚝 떨어졌다.

나룻배 위에 있던 네 명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근처에 있던 주춤이들이 머리를 감싼 채 뒹굴고 있는 아이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린델은 얼굴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손이 떨리고 구역감이 살짝 일었다. 작은 돌이어서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았지만, 자세하게 확인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주춤이들은 아이의 머리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룻배를 쳐다봤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분명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은 린델의 심장을 마구잡이로 쥐어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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