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책하실래요?

삶을 걸어간다

by 주명


운동을 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향이라 동네 주변을 도는 산책도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토요일 집 근처 대학교를 한 바퀴 돕니다.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부는 날은 산책하기 좋은 날입니다. 미세먼지까지 없으면 금상첨화지요. 산책을 잘하지 않는 핑계를 당당하게 대자면 미세먼지가 가득한 요즘 밖을 돌아다니는 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래도 산책을 한 번 나가볼까요?

캠퍼스를 산책하다 보면 실험실 연구원처럼 마스크를 쓰고 걷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술판이 벌어지는 대학생들의 소규모 체육대회를 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학교 안 연못 근처에서 비눗방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도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웃음 다 가져다 웃으며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들도 보입니다. 주말의 학교는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조용해 평일보다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차분하지만 활기차 보입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생기가 느껴지니까요. 산책하러 나온 사람의 표정과 행동은 학교, 회사, 집안에서와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유가 느껴지는 행동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미소며, 나누는 대화까지 평일엔 숨어 지내던 사람의 여러 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통통거리는 생기가 맴도나 봅니다. 사람과 사람의 따스한 온기도 느껴집니다. 그 곁을 걸으면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홀로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는 사람들은 물리적인 길을 걷지만 홀로 걷는 사람들은 아스팔트의 길과 함께 마음의 길도 걷습니다.

누군가는 상념의 길을 걸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민의 길을, 또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길을 걸어갑니다. 같이 걸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 안으로 깊숙이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시키기 위해 감정을 추진력으로 뜀박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관찰하는 저도 홀로 걷는 산책자가 되겠지요.

이 산책의 시간에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거나 다 같이 들을 수 있도록 노래를 틀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뮤직비디오가,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들어도 큰 잘못이 되지 않기도 하니까요. 산책은 발길 닿는 대로 원하는 곳을 원하는 만큼 걷는 일입니다.

산책은 시공간과 감정, 사람 사이를 걷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를 걷는 일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재빠른 몸짓으로 걸어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계속 이 산책을 할 테니까요.

우리는 삶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 삶은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 덕에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걸어야 하는 산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쟁하듯 걷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녹음 사이를 걸을 때 힘을 빼고 천천히, 숲이 내뱉는 산소를 들이마시며 걷는 것처럼 살아갈 때도 산책로에 펴있는 들꽃처럼 삶의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유유히 걸어가면 됩니다. 아파트 낡은 담장에 붉게 피어오른 장미도 느린 걸음으로 걸을 때 알아봤습니다.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걸을수록,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아요.

계속 산책하고 싶습니다. 급하게 걷지도 않고 작은 것에 시선을 두고 내가 걷고 싶은 데까지 걷고 싶습니다. 피곤할 땐 잠시 쉬었다가 달리고 싶을 땐 두 발과 팔을 빨리하며 내 시간을 걷고자 합니다.


삶은 걷고자 하는 자에게 무한한 산책로입니다.

같이 산책하실래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