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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명 Oct 20. 2024

또 다른 흥미


봄과 초여름 퇴근길을 좋아한다


버스 중간에 내려

큰 사거리 횡단보도 한 번,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한 번을 건너고

블록 위를 걷다 보면


캠퍼스와 젊음, 그리고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을까 싶은

크고 푸른 나무 사이를 지나친다

집까지 가는데 삼십 분


계절의 냄새를

한 번 잘못 들이키기라도 하면

곧장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돌아돌아 간다

어차피 도착점을 알고 있으니

거리를 늘이는 건

집으로 가는 또 다른 흥미


천천히 가도 아직 밝다


가을 퇴근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서기도 전에

해는 자취를 감추고


거리를 나서면 왜인지 모르게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어둑한 적막 속의 질주는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고

짖어대는 울음 같았다


어두운 저녁도 싫지만

일몰과 동시에

해보다 더 저무는

묘한 내 마음이 싫었다


마치 쓸쓸하려

탄생한 듯

터뜨려지는 허무


그래서 가을을 걷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

무엇도 느끼지 않고

버스에 실려 가고 싶었다


이상하게

이 가을밤을

밝은 저녁보다

더욱 걷고 싶다

안고 싶다


하염없이 걸어도 좋다

어차피 도착점을 알고 있으니

정처 없이 걷는 게 아니지

방황하는 게 아니지


이 방향으로,

저 길로,

그 틈으로

걸음을 바꾸는 일은

집으로 가는 길에 해보는

또 다른 흥미


이제야 알았다


도착점을 알고 걷는

더디고도 많은 걸음은

인생의 또 다른 흥미


집으로 가는

다양한 경로를 알았다


가을밤은 이제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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