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초여름 퇴근길을 좋아한다
버스 중간에 내려
큰 사거리 횡단보도 한 번,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한 번을 건너고
블록 위를 걷다 보면
캠퍼스와 젊음, 그리고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을까 싶은
크고 푸른 나무 사이를 지나친다
집까지 가는데 삼십 분
계절의 냄새를
한 번 잘못 들이키기라도 하면
곧장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돌아돌아 간다
어차피 도착점을 알고 있으니
거리를 늘이는 건
집으로 가는 또 다른 흥미
천천히 가도 아직 밝다
가을 퇴근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서기도 전에
해는 자취를 감추고
거리를 나서면 왜인지 모르게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어둑한 적막 속의 질주는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고
짖어대는 울음 같았다
어두운 저녁도 싫지만
일몰과 동시에
해보다 더 저무는
묘한 내 마음이 싫었다
마치 쓸쓸하려
탄생한 듯
터뜨려지는 허무
그래서 가을을 걷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
무엇도 느끼지 않고
버스에 실려 가고 싶었다
이상하게
이 가을밤을
밝은 저녁보다
더욱 걷고 싶다
안고 싶다
하염없이 걸어도 좋다
어차피 도착점을 알고 있으니
정처 없이 걷는 게 아니지
방황하는 게 아니지
이 방향으로,
저 길로,
그 틈으로
걸음을 바꾸는 일은
집으로 가는 길에 해보는
또 다른 흥미
이제야 알았다
도착점을 알고 걷는
더디고도 많은 걸음은
인생의 또 다른 흥미
집으로 가는
다양한 경로를 알았다
가을밤은 이제 어둡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