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주변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눈앞 사물들은 선명하게 보인다
과학적 원리가 있겠지만
찾아내기 귀찮다는 핑계로
세상의 잡음과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간 건 아닐까
마음으로 추론한다
비 온 뒤,
계절이 옷을 벗으니
약간의 한기가 코 끝에 맴돈다
너는 옷을 벗지만
나는 조금 더 두터운 코트를 입어야겠다
추위를 막으려 깃을 세우고,
깃을 붙잡는 손이 시릴 때
발개지는 묘한 쾌감을 아는가
어떤 추위는 나를 매력적으로 감싼다
컴컴해도 선명한 거리 속을
통과할 때 보이는
폐유리가 박힌 정사각형 보도블럭
저물어야 더 선명히 보인다
추위는 이제 반짝임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추위를 잊은 채 반짝임에 온 시선을 둔다
매일 빛났는데
눈앞에 두고, 발아래 두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절을 걸었다
비는 피하는 게 생활이지만
비일상에서만 오는 소식이 있다
비를 맞고서야
나를 두드리는
노크소리를 듣는다
비를 맞아야만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