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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명 Nov 01. 2024

비 온 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주변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눈앞 사물들은 선명하게 보인다


과학적 원리가 있겠지만

찾아내기 귀찮다는 핑계로

세상의 잡음과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간 건 아닐까

마음으로 추론한다


비 온 뒤,

계절이 옷을 벗으니

약간의 한기가 코 끝에 맴돈다

너는 옷을 벗지만

나는 조금 더 두터운 코트를 입어야겠다


추위를 막으려 깃을 세우고,

깃을 붙잡는 손이 시릴 때

발개지는 묘한 쾌감을 아는가

어떤 추위는 나를 매력적으로 감싼다


컴컴해도 선명한 거리 속을

통과할 때 보이는

폐유리가 박힌 정사각형 보도블럭

저물어야 더 선명히 보인다

추위는 이제 반짝임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추위를 잊은 채 반짝임에 온 시선을 둔다


매일 빛났는데

눈앞에 두고, 발아래 두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절을 걸었다


비는 피하는 게 생활이지만

비일상에서만 오는 소식이 있다


비를 맞고서야

나를 두드리는

노크소리를 듣는다


비를 맞아야만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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