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도망

by 주명


즐거운 도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슬퍼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우울해서

도망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누워 밤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니까


좋아하는 노래를 무한 반복하면서

내일이 오니까 그만 들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는

도망의 밤이 어울리는 계절이니까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맡기는 대책 없음에도

전혀 창피할 게 없는 쫓겨남이 필요하다

여름엔 좀 그래도 된다


언제까지 청춘일 수 없다

청춘이라 우겨도

청춘이라 인정해 주지 않는 시간이 오니까


사람과 시간이 때로 내게 매정해도

그게 청춘을 청춘답게 하는 규율일지도


데미안은 늘 속삭였었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도망간 곳에선

내가 불쑥 튀어나올까


그토록 어려운 일이

도망을 가면 쉬운 일이 될까


어쨌거나

즐거운 도망을 찾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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