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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09. 2022

독일에서 청포묵이 그리울 때면 이것으로 묵을 쑨다.

이것은 묵인가? 젤리 인가?


더워도 너무 덥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지속됐다.

비가 잦은 독일에서 몇 주간 비도 내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더위의 연속이었다.

길을 걷다 만나는 햇빛이 반갑다가도 어느새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지고 "아 진짜 덥다!" 소리가 랩처럼 쏟아진다.

독일의 여름은 끈적한 아열대성 더위는 아니지만 자외선이 강해서 조금만 나가 서 있어도 머리에 연기가 모락모락 날 지경이 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더위가 지속되다가도 하루 사이에 온도가 뚝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다시 더워지기도 한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는 것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독일 날씨에 익숙해지다 보면 잠깐을 위해 전기세도 비싼데 굳이 선풍기, 에어컨을 장만하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해를 거듭할수록 더워지고 있다 보니 독일 여름에도 자연스레 선풍기, 에어컨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중교통인 버스나 전차를 타도 냉방이 되는 차들예전보다 훨씬 자주 지고 백화점을 비롯한 상점들에도 냉방시설이 되어 있는 곳들이 많아졌으며 가정집에서도 선풍기 등의 냉방 용품을 사용하는 집들이 늘었다.

그럼에도 아직 아이들 학교 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다.

책받침으로 부채질하며 버티던 옛날 옛적 우리 학창 시절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렇게 폭염이 지속되는 날이면 독일 학교에서는 Hitzefrie 힛제프라이 라고 해서 단축 수업을 하고 애들을 집으로 빨리 보내 준다.

학교는 주마다 단축 수업 등 폭염에 관한 규칙이 각기 정해져 있다.(Hitzefrie-Regelrung 요 이야기는 다음번에...)


어느 독자님이 영농후계자 같다고 응원해 주신 우리 집 텃밭은 올여름 풍년이다.

그렇게 더위로 몸부림? 치던 어느 날 오후...

폭염으로 단축 수업을 하고 일찌감치 귀가하신 중2의 막내는 아이스크림 녹듯 흐물거리며 변성기로 굵어진 목소리로 "더워 더워!"를 노래하고 있었고 냉방 시설이 없기는 매한가지인 병원에서 퇴근한 엄빠는 바닥에 붙은 껌처럼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지? 라며 대답 없는 날씨에게 따져 대고 있었다.

머리도 멍해지고 입맛도 없고 무엇보다 불을 켜고 뭔가를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듯했다.


한낮의 직사광선을 제대로 받아 달구어진 집안은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간간히 창밖에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부나 보다.

그럼에도 바깥에 머물고 있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집안으로 들어올까 두려워 창문 여는 것을 포기 한 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차가운 음료나 아이스크림은 먹을 때뿐이고 물수건과 차가운 물도 그때뿐이다

어쩌다 트는 선풍기 바람도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렇게 덥고 지치는 날 여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있다.

촐촐하게 쒀진 얇고 하얀 묵 위에 시원한 오이채와 김 가루 그리고 파 마늘 갖은양념 넣고 버무린 청포묵 무침.

그 말랑하고 차가운 청포묵 무침을 떠올리자니 입안에 침이 고이고 묵을 쑬 때야 덥겠지만 먹고 나면 더위가 가실 것 같았다.

뭉개고 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전투적으로 주방 서랍을 열었다.


동네 아시아 식품점 내부 양쪽 진열대에는 한국간장,고추장 등의 양념들이 줄지어 있다.

청포묵이 먹고 싶다면 한국에서야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 먹을 수도 있겠지만 독일에서야 직접 쑤어 먹는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먹고 싶으니 해야지 게다가 묵무침은 까칠한 사춘기 막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라 먹는 음식 중에 하나다.

남편에게는 정원에서 상추를 따다 달라하고 힘을 내서 묵 쑬 준비를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요즘은 독일에서도 인터넷으로 웬만한 한국식품들을 주문해서 받을 수 있고 동네마다 있는 아시아 식품점에도 한국식품들이 제법 많다. 심지어 만두, 라면 등 몇 가지 한국식품은 독일 슈퍼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그런데 한국산 청포묵 가루는 없다.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받아 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아시아 식품점에도 베트남산 또는 태국산 푸딩 또는 소스용 청포묵 가루를 판다.

그러나 묵으로 쑤어 놓으면 식감이 우리의 촐촐한 청포묵 하고 많이 다르다.


해서 나는 한국산 청포묵 가루도 없는데 청포묵이 먹고 싶은 날이면 우리 동네 아시아 식품점에서 사다 놓은 요 가루로 묵을 쑨다.

그것으로 묵을 쑤면 청포묵과 색감은 다르지만 식감은 아주 비슷하다.

그 거이 무엇인고 하면 바로바로 베트남산 물밤 가루다.


물밤 가루로 만드는
초간단 묵 샐러드

준비물:

베트남산 물밤 가루  하나  250g

상추, 오이, 피망, 등 집에 있는 채소

큰 물컵 하나, 큰솥 하나, 긴 주걱 하나

네모나고 긴 통 하나

간장, 고춧가루, 식초, 깨, 참기름

파, 마늘, 설탕


이 동네에서 구한 베트남산 물밤 가루는 작고 하얀 조각이다. 얼핏 보면 슈가파우더 같기도 하고 찹쌀가루 익반죽 하다 만 것 같기도 하다.

큰 물컵에 요 250g짜리 물밤 가루를 쏟으면 뽀얀 가루를 날리며 컵 위까지 찬다.

준비된 커다란 솥에 한 컵의 가루를 털어 넣고 가루 담았던 컵에 물을 같은양으로 6번 담아 붇는다.

즉 묵가루 한 컵에 물 여섯 컵을 넣고 잘 풀어 준다.

잘 풀어진 묵가루는 한잔의 우유 같기도 하고 막걸리 같아 보이기도 하며 쌀뜨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중간 불로 긴 주걱, 또는 큰 수저로 무한반복 저어 준다.

그렇게 저어 주다 보면 점점 주걱으로 젓는 것이 뻑뻑해지고 버거워 진다.

묵이 되어 가고 있다는 소리다.

하얗던 색이 어두워지며 몽글몽글해진다 이때 묵이 익어 가며 사방팔방 튈 수 있으므로 불을 줄이고 되도록 젓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익어 가던 묵 방울이 튀어 얼굴이나 팔에 묻으면 무지 뜨겁다.데이지 않도록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 계속 저어 준다.

팔이 뻐근해질 때쯤이면 하얀색이 아닌 회색을 띤 묵이 완성된다.

그묵을 길고 네모진 통에 부어 골고루 펴준다.


짜짠 요렇게 촐촐한 묵이 완성된다.

식지 않은 묵을 빨리 굳게 하기 위해 묵담은 통을 더 넓은 통에 찬물을 받아 그위에서 중탕하듯 배를 띄우듯 얹는다.

그렇게 식혀서 놓아두면 한두 시간이면 차가운 묵을 먹을 수 있다.

빨리 식히고 싶은 욕심에 냉장고에 넣으면 묵의 식감이 서걱 거릴 수 있어 주방에서 가장 시원한 곳을 골라 상온에서 식히는 것이 좋다.


묵이 만졌을 때 쑥쑥 들어가지 않고 탱글탱글하게 튕겨 오르면 다 굳은 거다.

묵을 납 쪽 납 쪽 썰어 담고 그 위에 채 썬 오이, 상추, 색색의 피망, 채소를 올린다.

채소로는 집에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사용해도 좋다 당근, 쑥주, 버섯, 아보카도 등등...

계란 지단을 흰색, 노란색으로 나눠 붙이고 채쳐서 올리면 색도 예쁘고 맛도 더 좋겠지만 너무 더워 패스했다.

파, 마늘, 간장, 참기름에 설탕 조금 넣고 깨솔솔 뿌려 소스 하나

파, 마늘, 간장, 고춧가루, 식초에 설탕 조금 넣고 깨 솔솔 뿌려 소스 둘

두 가지 소스를 미리 만들어 둔다.

각자 앞접시에 묵과 채소를 담아 두고 두 가지 소스 중에 입맛대로 골라 넣고 먹으면 손님 요리로도 좋고 묵이 남을 경우 보관 하기도 편리하다.


촐촐한 묵과 정원에서 직접 기른 야들야들한 상추의 만남은 환상적이다.

비록 한국에서 먹던 그청포묵 만은 못하지만 그림움을 달래 주기에 충분하다.

더위 먹은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물밤묵 샐러드!

시원한 맛에 칼로리가 낮아 한여름밤 야식으로도 강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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