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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25. 2023

독일에서 30년 살며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공포의 한 시간


지금은 엔데 크바탈
Ende Quartal
2023년 6월 22일 이번주 목요일 오후의 일이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요일이었다 물론 월차를 낸 특별한 목요일 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독일 개인병원 의료팀 매니저로 5년째 일해 오면서 가장 바쁜 때를 말하라면 아무래도 결산을 해야 하는 엔데 크바탈 이라 하겠다.

독일의 병원 들은 3개월에 한 번 결산을 한다.

3개월을 크바탈이라 부르고 엔데 크바탈 이란 그 3개월 중의 마지막달 후반부를 이야기한다.


독일에서 의료에 관련된 곳들은(병원, 약국, 의료용품 관련업체 등등.. )

1년 12개월을 4개의 크바탈로 나누어 4번의 결산 을 한다.

그중 병원들은 크바탈이 지나가기 전에 KV (*독일의 의료보험 공단)에 크바탈 결산 내역을 온라인 파일로 보내고 종이로 보내야 정산을 받을 수 있다.

독일병원에서는 일반적인 진료 후에 진료비를 환자에게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바탈 결산이 매우 중요하다.


종합병원 들은 부서가 따로 있고 개인병원 중에서도 의사가 여러 명이고 규모가 큰 병원들은 매니저를 포함한 전담팀이 따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하루 결산을 위해서 병원 문을 닫고 그 업무만 하루 종일 해서 넘기는 병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동료 병원들 중에는 엔데 크바탈 에 땜빵 진료를( 땜빵 진료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독일 개인병원의 특이한 시스템 )구해 놓고 병원문을 하루 닫는 곳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동료 병원들을 땜빵 진료 해 주며 보통 주말에 남편과 둘이 가쁜이 결산을 마친다.

처음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헤매기도 했으나 지금은 주말 하루만 반납하고 일하면 금방 해치운다.

그러나 평소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서류 쳐리 들을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하고 일찌감치 머리를 식혀 두는 게 필요하다

때문에 엔테크바탈 이면 화요일이나 목요일 중에 하루 월차를 내고 시내도 가고 나를 위해 하루를 쉰다.

(물론 그것도 직원들 중에 누군가 갑자기 아프거나 휴가를 가야 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이지만 말이다.)

그래야 남들 쉬는 주말에 나가 머리 빠개지게 결산을 끝내 놓아도 덜 지치기 때문이다.



목요일의 월차

화창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흩어져 있고 아침부터 온도는 올라가고 있었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혀 가며 제대로 여름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집에서 식구들 여름옷 정리를 하다가 불현듯 집 앞에서 한 시간에 한번 오는 시골동네 마을버스 같은 25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는 막내의 운동복도 하나 사줄 겸 왠지 집에서만 보내기엔 월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내에서 커피도 마시고 장도 보려고 돌아다니는데 평일 오전인데도 시내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히나 여름 세일 을 하고 있는 옷가게 안에는 연령대 다양한 여성들로 붂적였다.

그중에서 그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탈의실 앞에도 계산대 앞에도 늘어선 줄을 보고 들어 갔다가 기겁을 하고 바로 나왔다.

어차피 살 것도 별로 없었지만 한두 가지 있다 한들 그 긴 줄을 기다렸다 입어 보고 생각 밖으로 맘에 안 들면

더운 날 시간만 낭비할게 뻔하므로 맘속으로 살을 빼는 게 남는겨! 를 외치며 돌아 나왔다.


시내에서 몇 가지 장을 보고 전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도저히 씻지 않을 수 없게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평범한 하루였다

언제나 재난영화나 공포영화의 처음은 이렇듯 평온하지 않던가?


그날 오전의 평범한 시내 거리 풍경 입니다 몇시간 뒤 폭풍 삼종셋뜨로 인해 이곳은 물바다가 됩니다.
이 상가 안에도 몇시간뒤 매장안에 물이 차 올라 강처럼 흘러 갑니다. 

이상한 날의 시작

오후 4시쯤이었던 것 같다 아는 언니에게 톡이 들어와 있어 오랜만에 카톡을 하고 이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한 시간 정도 미팅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녀와서 저녁 준비를 하면 너무 늦을까 봐

미리 준비해 두고 다녀와서 챙겨 먹기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너튜브로 음악을 듣다가 최애 드라마 중에 하나인 도깨비를 틀어 놓고 주방을 오가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 잘 만든 드라마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좋다. 줄거리와 내용을 익히 알고 있다 못해 대사를 외우는 부분도 있는 드라마 지만 여전히 재밌다.


칼질을 하며 공유 배우님의 그 그윽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창밖이 갑자기 칡흑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가 막 4시 30분을 지나가고 있을때 였지 싶다.

비가 오려나? 싶었다 안 그래도 일기 예보에서 이번주 비가 많을 것이라 했고 화요일부터 폭풍 주의보에 토네이도 주의보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말짱한 날씨였어서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일기예보라는 걸 사람들은 맞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약간 빗나가거나 시간적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못할 때면 일기예보가 그렇지 뭐 한다.

요즘은 꽤 근사치에 예보를 하는데도 말이다.

마치 그런 인간들을 비웃 기라도 하듯 잔뜩 어두워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차게....

그러다 어느 순간 빗줄기의 소리가 둔탁해지더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얼음 덩어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 앞에 모여든 우박 덩어리 에요 크죠? 골프공 만해 보이는 것도 있었어요

이건 우박인가? 얼음 공인가?

우박이야 6월이고 여름이어도 종종 오기도 하고 서리가 내리기도 해서 그리 이상스러울 것은 없었는데

그 소리가 여태 까지 들어본 것과는 달랐다.

공 같은 것 여러 개가 한꺼번에 문짝에 닿아 떨어지는 듯한 세찬 소리가 났다.

바닥에 수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우박을 보니 그 크기가 막 냉동고에서 아이스커피 안에 넣으려고 꺼내둔 얼음 같기도 하고 큰 것은 골프공 만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 소리에 놀라서 제방에서 뛰어 내려온 막내와 쪼그리고 서서 거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어머 무시한 소리에 차마 문을 열 용기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얗고 굵은 얼음덩어리들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며 여기저기 부딪치며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진기한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며 이러다 어딘가 한 군데 깨져 나가거나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울려 대는지 집안에 있는 모든 창문과 문에서 동시에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높은 건물위서 서서 쌀포대 보다 큰 자루에 가득 담긴 얼음덩어리 들을 아래쪽으로 털어 붇는 다면 이러려나?

거기다 중간중간 번쩍번쩍하며 세상이 갈라질듯한 천둥 번개와 세찬 바람까지 합세해 문을 흔들어 댔다

만약 이대로 문을 연다면 이 몸무게 로도 그 바람 속으로 휘말려 들 것 같은 가당치도 않은 상상이 들지경이었다.

저희 집 현관문 바로 앞 대로변에 비가 쏟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모습 이랍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얼음덩어리 같은 우박이 창문에 문짝에 부딪쳐 대는 소리가 잠잠해

지기 시작했다.

아유 이제 지나 가나보다 하는데 이번에는 비가 폭풍 같은 바람과 함께 그야말로 쏟아져 내렸다.

바람이 어찌나 세었는지 우리 집 아름드리 보리수나무 가 뽑힐 듯 흔들려 댔고 떨어져 나간 파란 나뭇잎들이 뭉터기로 바람에 소용돌이치며 공중을 휘졌고 있었다.

독일에서 30년 살며 이런저런 날씨 다 겪어 보았고 집중호우도 폭설도 경험해 보았지만

이렇듯 우박에 폭풍에 삽시간에 물이 불어난 폭우까지 삼종세트로 쏟아지는 것을 겪어 보기는 처음이다.

순간 이런 게 자연재해고 홍수고 수해가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 앞 대로에는 물이 꽉 차서 자동차들이 마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듯 빗물을 하얗게 가르며 어렵사리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그럼 에도 이런 속도로 물이 불어 난다면 우리도 안전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 앞길이 이렇다는 것은 한 블록 밑에 비 많이 오는 때면 어김없이 침수 지역인 지대가 오목한 곳들은

이미 잠겼다는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켜 놓은 독일 뉴스에서는 북부 헤센을 강타한 폭우로 나무가 무너지고 차량이 통제되는 아우토반이 속출하고 있다는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핸드폰 에는 다른 동네 사는 큰아이들과 친구들에게서 왓츠엡을 통해 괜찮냐는 톡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리고 앞을 다투어 틱톡, 트위터, 페이스북등의 sns 링크들이 걸려들어왔다.

하나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카셀의 익숙한 거리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 영상 들이였다.

그중에서는 놀랍게도 우리 집에서 바로 500미터 떨어져 있는 동네가 물에 잠겨 자동차들이 물에 떠내려 가는 영상도 있고 바로 오전에 전차 타러 나갔던 전차 정거장이 물바다가 되어 있어 전차가 물속을 걷듯 하는 동영상도 있고 큰아이들이 집에 올 때마다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러 가는 역이 물에 파묻힌 듯이 잠겨져 있는 모습들이 동영상에 잡혀 있었다.


이 와중에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삽시간에 재난 지역 같이 되어 버린 동네에서 가족의 안위가 확인이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다음 편 계속....

처음 우박이 쏟아질 때 창문을 통해 바로 집 앞을 찍은 동영상이에요
우박이 지나가고 비바람에 순식간에 물어 불어 났어요 몇 분 만에 말이지요 드라마 도깨비 틀어 놓고 있다 급하게 동영상을 찍느라 드라마 소리가 함께 들어가 버렸습니다ㅎㅎ
저희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골목이에요 이 틱톡이 엄청 링크되었어요.
여긴 카셀의 빌헬름스훼어 라는 기차역이에요 그날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발이 묶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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