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몇 년째 의료인으로 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 중에 쓸데없는 게 얼마나 될까? 하고 말이다.
아이들 셋을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 때로 지치고 힘겨웠다.
주부의 일이라는 것이 하면 표 안 나고 안 하면 표가 확 나는 일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건강히 잘 커가는 모습에 감사하며 철마다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때마다 식구들에게 맛난 식사와 따뜻하고 아늑한 집을 만들어 준다는 것에 무안한 자긍심으로 일부분 보상받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일이 커리어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에 걸맞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일 또한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는.. 내가 이렇게 집에만 있으려고 결혼했나?.... 싶어 우울해지기도 했고
어디서도 경력이 안 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몇 년째하고 있구나! 라며 스스로 평가 절하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 일들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하는 일이 라고 생각 되었던 일상의 일들이 실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 매일 만났던 자질구레한 경험 들이 쌓여 살아가며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별개 아닌 일이 별것 이 되는 순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오전 진료 시간에만 상처치료 만 여섯 번이나 했다.
그중에는 집에서 반창고만 바꿔 붙이면 되었을 텐데....
굳이 병원까지 왔네 싶게 간단하고 작은 상처도 있었지만 입원실에서 해야 할 드레싱인데 싶은 환자도 있었다.
독일에서는 웬만한 환자들은 수술 후에 빠르게 퇴원시키고 나머지는 당신의 가정의 병원에 가서
하세요 한다.
그래서 원래는 수술한 병원에서 해야 할 드레싱, 실밥 풀기 등도 모두 우리 차지일 때가 많다.
그중 90이 넘은 할아버지 환자는 얼마 전 피부이식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인 것은 나이에 비해 정신도 몸도 정정하시다는 거다.
그런데 또 엄살이 많으셔서 꼭 어린아이 같이 구실 때가 많다.
여러 군데 드레싱을 해 드려야 하는데..
소독약 뿌리기도 전에 인상을 쓰고 계시더니 거즈를 떼러 손길이 닿기도 전에 "아우아 아우아" 라며
소리를 마구 지르셨다.(*독일에서는 아우 아파 아야라고 할 때 아우아 라고 한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모습과 오버랩되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미소 띤 얼굴로 장갑 낀 손에 핀셋을 들어 보이며 "할아버지 저 아직 손도 안 댔는데 벌써 아프세요?" 했다.
할아버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셨다 그 순한 웃음에 그 연세에도 저렇게 귀여울 수 있구나 싶어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어딘가 상처가 생겨서 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나뭇가지 가지고 놀다가 가시가 박혀서 오기도 하고 종이에 그림 그리다가도 종이에 비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 밖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홀랑 까져서 오기도 했다.
애들이 연령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셋이나 되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 약 바를 일을 들고 왔다.
셋 중에 가장 엄살이 많았던 아이는 단연 막내다. 어찌나 엄살스러운지 잘 보이지도 않는 상처를 쳐다보며 울기 시작하면 그거 달래느라 한참 동안 애를 먹고는 했다.
연고라도 발라 주어야 하는 날이면 상처에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아프다며 엄살을 떨어 댔다
꼭 그 할아버지 환자처럼 말이다.
이제는 다 자라 올려다볼 정도로 컸지만 막내는 지금도 가끔씩 엄살을 부리고는 한다.
그 엄살들 받아 주며 달래고 을러서 치료해 주며 쌓였던 기본기는 어디 가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준 집에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치료였고 지금 병원에서 하는 치료와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환자를 달래며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아이를 달래며 약을 발라 주던 그때와 닮았다.
"할아버지 최대한 안 아프게 조심해서 할 테니 조금만 참아 보세요"라고 말하는 멘트도 다르지 않고 말이다.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이제 새살이 막 생기려는 환부는 예민할 수밖에 없고 보기에도 얼마나 아프실까?
안쓰러웠다.
그러나 보통 어른 들일 경우 최대한 참는 편인데 할아버지는 아이들처럼 시작도 하기 전부터 아프다고 떼를 쓰고 팔과 다리를 떨어 대시니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드레싱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말이다.
상처를 소독하고 거즈를 갈고 하는 일련의 일들을 또 꼼꼼히 해드려야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 수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때로는 사정 봐 가며 너무 살살하는 것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하는 게 덜 아픈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할아버지 금방 끝나요, 이거 빨리 걷어 내지 않으면 더 찰싹 붙어서 나중에 더 아파요
잠시만요 움직이시면 더 아파요 "
엄살 만렙인 할아버지 환자를 달래고 을러가며 꼼꼼히 드레싱을 마치고 나니 허리가 뻐근해 왔다.
그럼에도 "할아버지 모레도 또 오셔야 해요!"라며 웃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동안 주부로 엄마로 갈고닦은 경험들이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도 역시나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말이다.
*위에 사진들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2019년 가을에 진행된 의료 연수 때 찍은 사진 들이에요.
개인병원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처 치료 전문가 과정 연수 프로그램 중에 당뇨병 환자들의 상처 치료에 대한 시간이었지요.
맨 앞에 테이블이 제가 포함된 간호사 그룹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