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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8. 2024

내 남편 어딨어?

공포의 초인종 소리


이 구역의 미친뇬은 너야!


오래전에 보았던 시크릿 가든이라는 판타지로맨스 드라마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하지원 배우와 현빈 배우가 열연했던 드라마다.

그 시절 그 드라마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사람은 없다는

여러 레전드 장면들을 낳았고 패러디를 부르는 명대사들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중에 서도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 중에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어느 파티에서

우리의 캔디 같은 여주와 테리 같은 남주 사이에 껌처럼 끼여 붙으려던 맞선녀에게

시크하게 경고를 날리던 쭉쭉 빵빵 멋지구리 서브 여주 김사랑 배우의 대사 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우리 동네도 이 구역의 미친뇬은 나야 라고 외쳐대는 이가 하나 있다.

그 대사를 찰지게 뱉어 내던 늘씬하고 이쁘던 김사랑 님의 모습 과는 천지 차이 지만

동네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은행, 마트 때와 장소 안 가리고 소리소리 지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있는가 말이다.

게다가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외관 또한 한몫을 할 것이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몽따주를 가졌다


그녀는 키가 크다 못해 어깨가 굽어 꾸부정하고 길고 커다란 코에 짙은 갈색의 짧은 머리는 머리숱이 없어 성성하고 목소리는 염소가 튀어나올  간들 댄다.

흡사 그녀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보던 만화영화 파랑요정? 스머프에 나오는 가가멜을 닮았기 때문이다.


단지 가가멜은 심술 맞은 눈매가 삐죽하니 올라갔지만 그녀는 오히려 눈매가 축 쳐져서 조금은 가여운 인상이라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그 가여운 인상 때문인지 우리는 그녀가 병원에 와서 생떼?을 부려도 웬만해서는 그냥 넘어가 주고는 했다.


어느 정신없던 화요일 오전 진료 시간의 일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정신없이 눌러 댔다. 한 번이면 족한 것을 연거푸 눌러 대니

병원 앞에서 누군가 응급한 일이 터졌나 싶어 너나 할 것 없이 토끼눈이 되어

병원 현관 쪽으로 뛰었다.


독일의 개인 병원들은 입구에서 대부분 초인종을 누르게 되어 있다.

개인사생활 보호 차원으로 길에 CCTV 도 없고 관공서 에도 경비실이 따로 있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문만 열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도록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열어 주는 것은 그나마

최소한의 보안 시스템 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우리도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열도록 되어 있다.

보통 띵똥 하고 한번 누르고 기다리면 병원 문이 열리거나 누군가 현관문 앞으로 나오니 대부분은 기다린다.


어쩌다 성질 급한 사람이 문이 열리기도 전에 연거푸 두 번 정도 초인종을 눌러 대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미췬듯이 눌러 대는 경우는 없었다.

급한 일이 터진 줄 알고 헐레벌떡 뛰어가 열어젖힌 문 앞에는 누군가 멀쩡히 서있었다.

그녀였다 가가멜...

*대문사진 출처:sanier.de,가가멜 사진:wiki index,Thalia

원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동거지가 시끄럽고 정신없는 사람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막무가내 병원으로 쳐들어? 온 적은 없었다.

그렇게 초인종 때려 눌려서 고장 나겠니? 라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예의 그 염소 지나가는 목소리로 다짜고짜 “내 남편 어딨 어?"라고 물었다.

워매 시방 이게 뭔 소리여?

여기가 병원 이 아니고 가정집 또는 어딘가 다른 곳이라면 오해할법한 또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

딱 좋은 문장이 아니던가


아침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 하는 장면 남편의 불륜 현장을 덮친 여주가 부르짖던 말

"내 남편 어딨 어?"

그런데 여기는 병원이다 지남 편을 왜 병원에 와서 찾느냔 말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병원 문을 막고 서서 횡설수설하는 그녀와

옥신각신 하며 다른 환자들이 오가야 할 길을 막고 있으면 안 된다.

일단 그녀를 병원 안으로 들였다.


그 가가멜의 횡설수설을 종합해 보자면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그녀의 남편이 집에서 응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에게 좀 알아봐 달라는 거였다. 거친 말투는 지금 당장 자기 남편을 찾아내라고

윽박질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우리 동네에서 응급실을 보유하고 있는 종합병원이 총 5곳이다.

응급차를 타고 환자가 이송될 때 보통은 미리 어느 병원 응급실이라 정하고 출발하지만 간혹 가다 교통사고 라든가 뜻하지 않게 응급이 동시다발로 터질 경우 이병원 저 병원에서 다른 응급환자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 잠깐식 응급환자를 딜레이 시키는 시스템이 발동하는데 그사이를 뚫고 환자를 어느 병원이던 응급실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구조 대원들이 이송 중에 된다는 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미리 어느 병원 응급실이다라고 언급하지 못하고 일단 출발부터 하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그 후에 보호자에게 연락이 간다.안 오면 보호자가 직접 연락해 보면 어느병원으로 이송되었는지 알수 있다. 그런데 가가멜은 그 잠깐을 못 기다리고 지가 알아 보지도 않고 우리 병원으로 냅따

뛰어 온 거다.


그렇다고 우리가 바쁜 아침 진료 시간에 하던 일 손 놓고 계속 이병원 저 병원 환자 찾아 삼마리 전화만

돌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환자가 어느 병원 응급실에 수속이 되고 나서야 파악도 가능하고 말이다.


사실 환자가 이미 집에서 종합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인데 우리가 급하게 보호자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면 연락받을 것이라 친절히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병원 안에서 내지르는 그녀의 "내 남편 어딨 어? 어딨 냐고!" 하는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급기야 쳐진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남편 걱정이 얼마나 되면 저럴까? 싶어 측은해졌다.

직원들에게 사정이 딱하니 바쁘지만 좀 도와주자고 했다.


혈액검사 하던 직원 B도 중간에 이병원 저 병원 전화 해 보았고 다른 환자의 병가를 처리하고 있던

직원 G 도 여기저기 전화해 보고 있었다.

나는 그사이 병원 복도에 서서 고성을 지르고 있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정한 말투로 우리 직원들이 지금 알아보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라 이야기해 주며..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들을 각각 진료실로 안내하며 병원 안을 오가고 있었다.


모두가 바쁜 아침 진료시간에 우리는 나름대로 애를 써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하도 틀어 대서 늘어진 녹음테이프처럼 느릿느릿한 어투로

인내심을 자극했다.

예를 들어 곱게 메이컵이 되어 있는 우리 병원 MZ 세대 직원 G를 쳐다보고는 "눈썹 올릴 시간 있으면 빨리 전화를 좀 해 줘!" 라던가..

체격이 조금 푸근하게 생긴 직원 B에게는 "달팽이도 그보다는 빠르겠다" 나는 둥..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말이다.

그녀의 만행에 병원을 오가던 다른 환자들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거나 인상을 썼다.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듯한 그녀의 헛소리에 대꾸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각자 할 일을 해 가며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 동분서주 했다

그런 우리의 분주한 모습이 마치 자기의 도발? 에도 무관심하게 느껴졌던지...

급기야 가가멜은 뿔 달린 염소가 진격을 하듯 다른 환자 진료 중인 진료실 문을 벌컥 열려고 했다

그 모습이 내 인내심의 마침표를 찍게 했다


나는 짧은 다리로 빛의 속도로 뛰어 겅중 대며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진료실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문 앞에서 막아섰다

그리고 조금 전 혈액 검사를 받고 돌아가던 환자 중에 한 분이 내게 낮게 귀띔해 주신 것이 떠올라

가가멜 에게 단호한 한마디를 날렸다.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전화합니다”


내 입에서 경찰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처진 눈이 식겁하게 올라가더니 마치 뭔 짓을 벌일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쏘아 보았다 정확히는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뒤집어진듯한 눈동자와 험상궂은 얼굴에 속으로는 쪼끔 쫄았다

정신줄 놓은 것 같은 그녀의 다음 스텝이 예측불허이니 방어 본능이 발동되어서

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쫄지 않은 척 뜨나 안 뜨나 별차이 없는 눈을 최대한 부릅뜨고

껄렁하게 짝다리를 집고 서서 한참 올려다 보아야 하는 위치상의 불리함을 줄이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오른손 주먹을 말아 쥐고 섰다.

그리고 꽤나 불량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입고리만 올려 픽하고 썩소를 날렸다

속으로는 '이거 왜이려~! 이언니도 왕년엔 완빤치 쓰리 강냉이였어엉~!'하며 말이다.


그리고는 왼손에 들린 전화기를 드라마나 영화 보면 경찰 아자씨들 신분증 보여주듯

척 들어 올려 보여주며 그녀에게 단언컨대 이렇게 할 거야 라는 느낌을 가득 담아 말해 주었다

"경찰 부르면 5분 안에 도착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가가멜은 뿔소처럼 씩씩 거리며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빠른 속도로 쌩하니 병원 문을 나서는 게

아닌가

오호라 그랬구나.. 이 난리 부르스를 잠재우는 방법은 딱 하나였던 거다.

슈벌~! 경찰 불러~!


내게 귀띔해 준 환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물개 박수를 치며 부라보를 외쳐 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 환자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하얀 수염을 하고 있어 산타 복장을 하면 제법 그럴듯하겠다

싶은 외모에 조용조용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어느 학교의 교장 선생님 이셨지 않았을까? 싶었던 그분은

알고 보니 은퇴하신 경찰 공무원 이셨다.

그분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경찰로 일하는 동안 저분 때문에 출동할 일이 많았어요.

이 지역 경찰들에게도 유명한 분이에요. 만약에 저분이 여기서 더 시끄럽게 굴면

바로 경찰서에 전화한다고 하세요!".

경찰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 하신 환자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으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단단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겨 주시고 총총히 사라 지신 거다.


덕분에..

경찰 부른다 한마디로 그 소란이 일단락이 났지만 어찌나 병원 안을 헤집어 놓고 갔는지..

예전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에서 지진을 겪은 의료진들이 주변에서

뭔가 흔들림이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몸을 움추리듯...

우리도 진료 시간 내내 초인종 소리만 들렸다 하면 모두 어깨를 꿈틀 거렸다.

혹시나 그녀가 다시 돌아왔나 싶어서 말이다.

니미럴..

병원에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하다 하다 별일 다 있다 싶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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