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은 도시 골목길 산책
목요일 아침의 땡땡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라는 동요가 생각 나는 아침이다.
다른 날 같으면 병원에서 한참 뺑이치며 일할 시간에 여유롭게 동네를 걷노라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 얼마만의 땡땡이란 말인가?
뭐, 특별한 곳을 가는 것도 아니요 남편의 심부름을 가는 길이라 허락받은 땡땡이지만 일하는 날 땡땡이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우리 집에서 길하나 건너 약 300 미터만 내려가면 가로수로 도토리나무가 줄지어 있는 골목길이 나온다
그 길을 겄노라니 회색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까꿍 하는 수준이지만 그마저도 상쾌하다.
이제는 조금 서늘해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갈색빛의 도토리는
어느덧 여름 지나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알려 주는 듯하다.
익숙한 길을 걸어도 괜스레 설레는 건 아마도 땡땡이 칠 때만 가질 수 있는 기분일 게다.
땡땡이... 요입에 촥붙는 단어는 예전엔 요런 때 주로 쓰고는 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그때는 야간자율 학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름 하여 야. 자라고 불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의 신조어들처럼 말 줄임이 그때도 있었네.
괜스레 웃음이 피식하고 새어 나온다.
도토리처럼 또르륵 떨어지는
추억하나
바람 따라 발밑으로 톡 또르르 굴러 떨어진 도토리 따라 추억 하나가 툭 또르륵 하고 떨어진다.
요즘 학교 에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때는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 밤 10시까지 학교 남아 공부 하는 것을 야간자율 학습 일명 야. 자라 했다.
물론 이름은 자율 학습 이였으나 그럴 리가 있나, 만약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원하는 사람만 남아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무나 했다면 그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있을 아이들도 몇 없겠거니와...
그 시절 유행하던 음악 틀어 놓고 춤추는 놈.. 거울 보고 여드름 확인 하는 놈.. 앞뒤로 앉은 친구들과 못다 먹은 저녁을 먹는 놈들... 그때 가슴 벌렁벌렁 하며 돌려 보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 읽는 놈.. 만화책 보며 키득 이는 놈..
아마 교실이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별거 아닌 일에도 까르륵 넘어 가게 웃던 청춘의 소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야. 자가 있던 그 시절 매일 선생님들은 돌아가며 야. 자 감독이라는 것을 하셨다.
요즘 아이들에게 야. 자 감독이라고 하면 아마 야구 감독과 착각 할런지도 모른다.
야. 자 감독을 하는 선생님들 중에는 정말 깐깐한 분들도 많아서 선생님이 복도를 돌 때면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조용해 지고는 했다.
그중에 지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수업 시간에는 그렇게 재밌고 말랑하게 수업을 진행하셔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야. 자 감독만 하시면 호랑이 가 따로 없었다.
같은 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정말 부지런히 도 교실마다 돌아다니시며 아이들이 열공하는지 딴짓을 하는 건 아닌지? 도망? 간 놈들은 없는지 레이저 같은 눈빛으로 체크하시고는 했다.
그래서 지리쌤이 야. 자 감독인 날에는 꼼짝없는 날이었다
땡땡이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중간중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나누어 먹거나 하던 내게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특히나 친구들에게 함께 읽던 만화책의 아직 나오지 않은 다음 편을 상상해서 이야기해 주면 그렇게나 재밌어했다.
마치 요즘 유튜브에서 드라마 리뷰 하면서 다음회차 스토리를 미리 보기 해 주는 유튜버들처럼 예상 가능한 스토리를 입혀서 신나게 떠들어 재끼던 나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공부에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그러나 어디 그리 무서븐 쌤들만 계셨겠는가 그중에 딱 시간 맞춰 출석 한번 부른 후에 중간에 한번 또는 야. 자가 끝나기 전에 한번 정도만 휙 둘러보시고 마는 여유로운 쌤도 계셨다.
그 쌤들 중에 화학쌤이 계셨는데 친구와 그 시절 고딩들의 바이블이던 수학 정석을 비롯하여 두꺼운 책들을 책상 가득 펴두고 마치 잠시 화장실이라도 간 것처럼 현장?을 꾸며 두고 땡땡이를 쳤다.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선생님이 오셔서 여긴 어디 갔나?라고 물으시면 화장실 이요라고 답하도록 미리 섭외해 두어 알리바이도 만들어 두고 말이다.
그렇게 친구랑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사 먹던 떡볶이는 얼마나 꿀맛 이던지..,
또 만화가게에 앉아 라면 먹으며 만화책을 본 후에 쉬는 시간을 틈타 프로페셔널? 하게 학교로 다시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힌 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날도 화학선생님이 야. 자 감독을 하시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누군지 안다.
그날 친구와 야. 자를 땡땡이치고 그 시절 유명하던 라이브 카페를 가기로 했다.
라이브 카페 귀뚜라미 (이름도 아직 기억함 ㅎㅎ)에서는 저녁 7시면 기타 연주를 하며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으로 하자면 마치 길거리 버스킹 같았다고나 할까?
무명이지만 노래 잘 부르는 이들 또는 열정만? 가득하던 이들의 노랫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며 커피 라도 한잔 마시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엄청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누가 봐도 고삐리였지만 교복 자율화의 혜택으로 우리 딴에는 꽤나 으른스러워 보이리라
생각했고 쓰디쓴 커피를 마시면 절로 어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와 누가랄 것 없이 떡볶이집 이모에게도 만화가게 사장님에게도 "누가 더 언니 같아 보여요?" 등의 지금 들으면 웃음만 나는 질문을 진지 하게 던지던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날도 카페 귀뚜라미에서 디럽게 쓰던 커피를 아껴 마시며 그때 유행하던 해바라기라는 듀엣의 어서 말을 해라는 노래를 듣고 쉬는 시간에 맞춰 몸을 벽으로 붙이며 학교로 잠입하고 있었다.
교문이 없던 우리 학교의 교무실은 학교 건물 정 중앙에 위치했다.
말하자면 주로 교무실에 계시던 야.자 감독쌤들의 삼엄한 눈빛을 피하려면 학교 입구 나무와 돌로 꾸며졌던 벽에 최대한 붙어서 앞뒤를 살피며 마치 범인 잡으러 가는 경찰들처럼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수돋가 에서 마치 지금 손을 씻고 들어 가는 양 비누를 들고 교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면 되었다.
그 비누도 우리가 땡땡이 치러 가기 전에 미리 가져다 둔 우리의 비누였다.
우리는 우리의 알리바이를 위한 정교함 에 샐프 칭찬을 하며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물장난을 하다 건물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우리 바로 뒤에서 "거기 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우리는 얼음이 되었다.
돌아볼 것도 없이 분명 화학쌤의 목소리였다.
뒤쪽에는 학교 벤치가 있었는데 쌤이 거기 앉아 계실 것 이라고는 우리는 상상도 하지못했다.
그렇다면 쌤은 어쩌면 우리가 학교 벽에 붙어 서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잠입해 들어오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다 보고 계셨을 가능성도 있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우리는 서로 '튀자 튀어야 산다!' 하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고 죽어라 뛰었다 냅다 뛰었다.
원래 100미터 21초를 끊던 나는 장담컨대 그때만큼은 17초 를 끊었을 게다.
뒤에서 “거기 안서 !”라며 힘겹게 쫓아오시던 선생님을 피해 우리는 여자 화장실로 잽싸게 숨어들었다.
차마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수색까지 하실 수는 없었던 쌤은 복도에서
숨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셨다.
"자수해서 광명 찾자 나는 너네가 누군지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명을 찾을 마음이 없었다 각기 다른 칸에 뛰어들언던 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자 쌤이 웃으시며 말했다.
"이야 머리들도 좋아 비누 들고 땡땡이 치실 생각들을 다 하고 말이야!
내가 분명히 너네 둘 잡는다! 나는 너희가 누군지 알아 "
그 소리에 뜨끔했지만 그렇다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열 바퀴는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진납세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후안이 두려웠으나 버텨 보기로 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자녀들이 많을 때라 한 학년에 문과 이과가 여러반으로 나뉘어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학년별로 찾아다니신다 해도 시간이 걸릴터였다.
게다가 한 반에 학생수가 70명이 넘었고 같은 나이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비스끄리한 외모를 하고 있던 아이들이 넘쳐 나던 시대다.
앞반에 영숙이 네 명 뒷반에 영숙이 세명 이렇게 한 반에 이름이 같은 아이들도 즐비할 때였다.
덕분에..
우리의 땡땡이는 완전범죄를 이뤄내지 못하고 걸렸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화학쌤은 심증은 있으나 현장범으로 잡지 못해 끝내 우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핸드폰 시계는 아침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독일 학교는 아이들 등교 가 끝난 시간 이고 출근 시간 또한 지나가고 있어 골목 마다 조용하다.
더이상 바삐 오가는 자전거도 사람도 없이
골목 골목 타박타박 내 발걸음 소리와
바람결에 내려 앉는 낙엽 소리만 가득하다.
사르락 사르락 떨어지는 가을빛 물든 낙엽 위로 언젠가 우리에게도 있었던 그 시간들이 물방울 처럼 하나둘 얹어 진다.
눈감으면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