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거기 들어가기 싫다네요
아침 7시 30분쯤 출근길에 오르면 우리는 먼저 병원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막내 학교 앞으로 간다.
그렇게 가는 길에 아이를 내려 주고 시간이 남을 때면 우리는 병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동네 쇼핑센터 쪽으로 간다.
그곳에는 마트도 있고 빵가게도 있고 우리로 하면 올리브 영 같은 로즈만도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그곳에서 고기, 또는 야채 장을 미리 봐 두기도 하고 필요했던 로션이나 샴푸 등을
빠른 시간 내에 사둘 수 있어 유용하기 때문이다.
문만 열고 나가면 동네 슈퍼도 있고 24시간 편의점도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독일 주택가 에는 정말 집들만 덩그러니 있는 동네가 많다.
그래서 장을 보려면 걸어서 몇 블록을 가던 차를 타고 가던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일정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때로는 더 이상 나가기 싫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며칠 참고? 지내기도 한다.
그러니 출근길에 미리 들러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게 똑 떨어진 생활용품을 채워 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 않은가
그런데..
어디나 그러하듯 출근 시간의 교통 상황은 아무도 미리 짐작하기 어렵다
그날그날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공사한다고 여기저기 막아 놔서 한 바퀴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아우토반에서 사고가 나서 갑자기 길이 통제 되는 통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차량들이 한꺼번에 시내로 풀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다른 날은 그 동네 쓰레기통 비우는 날이라 쓰레기차 졸졸 따라가야 하는 날도
만나진다
그래서 어쩌다 생기는 출근길의 10분 에서 15분가량의 여유는 짧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를 한잔 손에 들고 여유 있게 출근하는 날은 웬만한
일에도 웃어 줄 수 있는 마음의 폭신 폭신한 쿠션이 생긴다.
그날도 여유로운 15분을 보장받은 날이었다.
빵가게에서 카푸치노를 테이크 아웃 하려고 줄을 서는데 남편이
내게 “동전 공주 동전 좀 줘봐!"라고 했다.
여기서 공주는 중요하지 않다 동전이 중요하다.
요즘은 주로 카드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 동전이 그렇게 많이 모이지 않는 편이지만
나는 지갑, 입었던 외투, 들고 다니는 가방 곳곳에 동전이 나온다.
한마디로 털면 나온다.
성질이 급한 편이라 돈을 내야 할 때 꼼꼼하게 맞춰서 내지 않고 잡히는 데로
내다보니 자꾸 동전이 생겨 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남편은 돈을 딱 떨어지게 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마트에서 계산 할 때 종종 만나지는 할머니들처럼 계산대 앞에 서서 센트 하나하나 세고 있지는 않다.
미리 동전을 세어 놓고 차례 되면 내어 놓아 동전을 없애는? 일을 즐겨할 뿐이다.
그날도 주섬 주섬 꺼내든 동전이 꽤 많았다.
독일도 물가가 올라가다 보니 2유로 43센트 하던 카푸치노 도 어느새 3유로 10센트다.
남편은 내가 꺼내 놓은 한 손 가득하던 동전을 퍼즐 맞추듯 딱 떨어지게
3유로 10센트를 만들어 빙그레 웃었다.
어찌나 알뜰하게 맞춰 들었는지 자잘한 센트가 빼곡했다.
저렇게 해서 주면 일일이 동전 크기 별로 나눠 두어야 해서 직원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짧고 노란 머리에 검은테 안경 하나를 얹어 쓰고 빨간 앞치마 입은 후덕한 인상의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 아주머니 직원은
"어머나 동전으로 주셨네요 감사해라 우리 동전 너무 필요하거든요!" 라며
기뻐했다.
동네 다니다 보면 마주칠만한 독일 엄마 같은 인상의 직원에게
나는 "이 많은 동전을 받아 줘서 (쳐리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서로가 고마워하며 받아 든 카푸치노는 왠지 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게 카푸치노 한잔 받아 들고 빵집을 나오려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동네에서 베를리너라고 불리는 도넛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달달한 도넛에 저절로 눈이 갔다.
목요일이라 아침 진료 시간에 3명의 직원이 나온다 나까지 넷 이걸 담아? 말아?
다음 주에 파싱이라는 독일 축제 기간이라 이벤트로 나온 빵들이다.
이 동네는 라인강변 쪽처럼 크게 축제를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에서 코스튬 파티도 하고..
요렇게 색색의 예쁜 도넛도 나오고는 한다.
병원에서 코스튬 파티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직원들 달달이 간식이라도 사다 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넛을 빤히 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다이어트한다는 사람 어디 갔나?" 하는 게 아닌가
흥칫뿡이다 그래한다 하고야 말 테다 다이어트 된쟝..
눈물을 머금고 달달이 빵을 아쉬운 눈으로 스캔하며 돌아 서는데…
아까 그 인상 좋은 빵집 직원이 살며시 우리에게 다가와 안경 낀 눈이 접히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얘가 저 통에 들어가기 싫다네요!"
오잉 그게 무슨 말인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은 동전 우리가 2센트라고 생각하고 넘겨 줬던 그 아이가 아닌가
그런데 아주머니가 동전을 뒤집자 10 한국은행이라 적혀 있었다
이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해프닝은 이렇게 된 것이다.
내 지갑 안에 고이 모셔 두었던 동전들을 털어 남편이 3유로 10센트를
맞춰 냈는데 빵가게 직원이 동전을 자기네 돈통에 구분해서 넣다 보니
색과 크기가 비슷하게 생겼지만 독일 동전이 아닌 것이 끼여 있었던 거다.
지금으로부터 삼 개월 전 내가 한국 갔을 당시 어디선 가 받았던 동전임이 분명하다.
이런 불쌍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갑 안에 한국돈은 모두 빼어 두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동네 2센트짜리와 너무 흡사한 크기와 색의 십 원짜리가 섞여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앞면엔 탑이 그려져 있고 2008년 그리고 한국은행이라 찍혀 있다. 타아잔이 십원 짜리 빤스를 입고 할 때
등장하는 그 십원이 맞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인상 좋은 직원은 우리가 무안해할까 봐
"얘가 저 통에 들어가기 싫다네요!"
라는 말로 우리가 잘못된 동전을 준것을 돌려 말해 준 것이다.
우리는 무진장 미안해 하며 십원을 받아 들고 2센트를 찾아 건넸다
직원은 "아유 괜찮아요 그럴수 있어요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요!"
라며 화통 하게 웃어 주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왜 생겨 났는지 알겠는 순간이었다.
만약,빵집 직원이 "이거 여기 돈 아닌데 이런 걸 내면 어떻게요?"
라며 따지고 들었다던가
"이게 뭐예요? 돈 아닌데요?" 라며 ‘왠 가짜 돈을 내고 그래!’ 하는 의심의 표정으로 당혹스레 돌려주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무안했을 것이며 찝찝한 기분이 들었겠는가 말이다.
2센트 한화로 하면 약 28원가량의 작은 돈이지만 직원의 배려를 담은 재치 있는 말 한마디 덕분에..,
우리는 기분 좋은 아침을 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