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병원에서 일을 하며 자주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날것 같지 않던 화요일 오전진료 시간이었다.
직원 B가 급하게 내 방 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황당할 때면 흘리는 웃음.
한쪽 입고리만 살짝 올리고 픽 하며 풍선 바람 빠지는듯한 소리를 내는
그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글쎄, 앞에 웬 입술 대단한 여자가 와 있는데 막무가내야 대화가 안 돼! 그리고 말할 때 폭포야 조심해!"
나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과장되게 늘리는 B의 장난스러운 제스처에 낮게 웃으며 "내가 나가 볼게!"라고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속으로 어떤 형태의 신종진상을 만날지라도 쉽게 화나지 말지어다 를 외치며
서둘러 병원 현관 앞 접수처로 향했다
성격 좋은 직원 B 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환자라면 만만치 않은 스타일 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병원 복도에서 서성이는 뒷모습의 실루엣 은 아주 평범했다.
늘씬한 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작은 가방을 옆으로 둘러맨 금발의 긴 머리...
뒤태만 보고도 한눈에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활기차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응급한 상황은 아녀 보였다.
나는 먼저 젊은 환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뒤를 돌자 B가 말한 대단한 입 그게 뭘 뜻하는지 대번에 알 것 같았다.
두툼하고 핑크빛을 띠던 그녀의 입술은 턱과 인중 사이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훌러덩 나자빠지듯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투둘투둘한 분홍빛의 굵은 입술은...
입술 보톡스를 맞았는지 입술색 타투 시술을 받은 건지 아니면 입술 두께를 성형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좌우지당간 정상적인 크기가 아니었으며 입 주변에 자잘한
주삿바늘 같은 자국과 붉은 반점들이 선명했다.
게다가 큰 키에 구부정하게 서서는 자기 집 앞에 무단 주차한 자동차 주인을 만나 따지러 온 사람처럼 한껏 고개를 쳐들고 턱을 끌어올리며 이야기를 해 대는 통에 그녀의 침샘들이 하얀 포말을 그리며 사방팔방 튀어 댔다.
마치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미리 경고해준 B 덕분에 거리를 두고 선 터라 폭포 맞을 일은 면했지만
키 차이가 조금? 있어 나는 시종일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만 보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녀는 우리 환자는 아니고 옆동네 병원을 다니는 환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 병원이 지금 휴가 중이라 우리 병원으로 무턱대고 찾아왔노라며
자기는 이 동네 사는 이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을 직감했다.
독일에서는 오가다 동네 병원이라고 해서 문 열고 쓱 들어가서 진료받을 수 있는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특히나 예약 없이 당일 진료는 그 병원 환자들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뭔 말인고 하니...
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독일에서는 바로 가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내과도 피부과도
미리 진료 예약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 가자마자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이렇게 바로 된다고?" 하며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독일 의료 시스템은 소위 가정의 패밀리 닥터 병원에서 출발 한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 개인의 모든 의료가 하우스아르츠트 즉 홈닥터를 통해 각각의 타 기관들이 거미줄처럼 연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정해서 다니고 있는 가정의 병원이 따로 있다.
시스템상 개인병원마다 각기 자기 병원 환자들이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매번 새로운 환자를 원할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의 개인병원들이 많지 않다.
당연히 환자들도 아신다 그래서 전화도 없이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더군다나 다니고 있는 병원이 휴가 중이라면 반드시 땜빵 진료를 보고 있는 병원이 정해져 있을터.
이 환자는 둘 중 하나다 땜빵 진료를 받아주는 병원이 조금 멀리 있어서 가기 귀찮았던가
아니면 평소 에도 병원을 옮겨 야지하고 있다가 막간을 이용? 해서 어딘가에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꼼수. 뭐가 되었던 환자 대기실로 곧장 안내할 수는 없다
우선 나는 그녀를 내 방으로 안내하고 무슨 일이지를 물었다.
감기나 기타 계절성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아니라던 그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게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검사를 제대로 안 해 주지 뭐예요!"
라며 마치 해야 될 것을 하지 않았다는 듯이그녀는 그 병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을 내식으로 종합해 보자면 환자는 어떤 음식들을 먹고 나면 소화가 잘 되지않았다.
그 이유로 그녀의 가정의 병원에서 혈액검사 외에 소화기 내과에서 진행 되어야 할 각종 불내성에 관한 검사를 해 주던가 아니면 그쪽에 빠른 진료 예약을 받을 수 있게 직접전화를 해 달라고 요구 했다가 까였던 모양이다.
응급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을 텐데 그녀는 당장이라도 뭔 일이 날 것처럼 흥분을 해서는
"그러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예약이 되면 무슨 소용이에요!"라고 했다.
환자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절차 따지고 뭐 따지고 하다 간혹
너무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각각의 전문의 병원이나 특히나 대학병원은 진료 예약 기다리다 죽겄네 소리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내성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도대체 히스타민 불내성이 뭐길래?)
만약, 그녀가 무언가의 불내성을 가지고 있다면 촌각을 다투는 응급 상황은 아니다.
단지 시간이 필요하다 정확한 검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상생활에 변화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불내성은 몸속에서 그 성분을 분해할 효소가 적은 경우 나타난다.그증상 중에는 알레르기성 증상과 유사 증상들도 있어 헛갈리기 쉬우나 불내성은 알레르기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그중에 유당불내성은 이미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락토즈 프리를 선택하거나 적게 먹는 방법을 택해야 하니 생활의 변화가 따라야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동안의 내 경험담을 줄줄이 풀어 대며 지금 당장 그녀에게 우리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또 내 경우 어떤 검사들이 도움이 되었고 또일상에서 어떤 것들이 검사 보다 더 정확
했는지 나름의 팁들을 전수? 해 주었다.
그랬더니 눈을 희번덕 거리며 펄펄거리던 그녀는 어느새 다소곳이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고 그렇게 진료실로 들어가 원장 쌤에게 진료를 받고 검사 소견서들을 잔뜩 들고 보람찬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
우리 병원에서 그 환자에게 해준 것은 그전병원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환자가 같은 결과 에도 덜 불안해하며 마치커다란 것을 얻어 가는 양 환한 얼굴이 되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나는 사람이 살아가며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 어떤 약처방이나 검사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공감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다.
to 애정하는 독자님들
가을이 깊어 가다... 아직 나무에 가을낙엽이 남아 있건만
이제는 겨울을 마중 나온 듯 온도가
많이 내려갔습니다.
요즘 차가운 빗방울에 회색 하늘을 자주 보고 삽니다.
온도는 아직 영하가 아닌데 햇빛 보는 날이 적고 안개 낀듯한 날이 많아서
습도를 계속 안고 살다 보니 저절로 으슬으슬하답니다 ㅎㅎ
어느 날은 운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축축 쳐지는 것이
네~네~ 또 때가 되었지요 독일에서 일 년 중에 가장 힘들다는
11월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미리 나와 있는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관련 제품들을
보며 뽀송뽀송해지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여러분도 계절 타지 마시고 환절기 감기도 멀리 하시고
건강하게 겨울 준비 하시기를 바라요~!!
PS:나리 가 등장 하는 책이 곧 서점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울 독자님 들께 제일 먼저 들고 오겠습니다.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