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 수 있는 핑계는 누구나 천 가지도 넘는다.
모니카와 마리안나
내가 그녀들을 만난 건 친정 엄마와 단둘이 하게 된
단체 버스여행 에서 였다.
이박 삼일 짧은 여행 일정 이였지만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녀 들과 제법 친해졌고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덕분에 여행이 끝나고도
그녀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흘러 들어가게 된 조깅 동우회
말 그대로 어찌하다 보니 화요일, 목요일 아침마다
함께 모여 조깅을 하는 그녀 들의 모임에 끼이게 되었고
운동에 있어서 만큼은 작심 이틀인 나는
수십 년 동안을 한결 같이 뛰고 있는 그녀들의 모임에
혜성 같이 나타나 바람같이 사라졌다.
사실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다.
그동안 허리도 수시로 안 좋았고 큰아들 졸업식에
딸내미 교환 학생으로 미국 보내고 막내가 여름 방학이었고...
등등 일도 많았고 이러쿵저러쿵 핑곗거리도 그때마다
새로이 업그레이드 되고는 했었다.
해서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전화와 문자만 간간이 날리고는
잠수를 타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내가 일하고 있는 문화센터에서 내년도 강습을 위한 회의를
끝내고 집으로 오던 길에 시내 한 복판에서 그녀들을
정면으로 떡하니 만나 버리고 말았다.
소위 빌린 돈 먹고 튄 것도 아니건만
왜 이리 민망 하고 찔리던지....
아마도 속으로 나는
그동안 그녀 들의
데리러 오겠다 뛰러 가자 너의 몸을 위해 뭐라도 해야해
등의 세심한 배려와 염려 에도 불구하고
허리 아프다 뭐 가 또 어쨋다 해 가며 매번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말짱하게 싸돌아 다니다 직통으로 걸렸네 하는 마음이 반가운 마음 보다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우리가 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하는 마리안나의
진심어린 타박에 머릿 속으로는 뭔 핑계를 대야 그럴듯 하게 보일려나
고민 하며 겸연쩍은듯 슬며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모니카는 알만 하다는 듯 밉지 않게 눈을 흘기고는
"누구나 지금 당장 운동을 하지 못하는 핑계를
천 가지도 넘게 댈수 있어.
그런데 그 핑계를 스스로 납득 하기 시작 하면
운동은 못하는 거야 그러니 눈 딱 감고 운동 해야 해 " 라며
너무도 지당 하신 말씀을 날리던 모니카는
고개를 주억 거리며 내 옆에 서 있던 남편 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당신은 와이프가 운동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웃으며 돌직구 질문을 선사 했다.
그에 남편은 적극 찬성한다며 그것을
위해 마누라의 조깅화를 새로 사주는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이야기해 그녀들의 환호를 받았다.
나는 그날 앞으로 조깅 열심히 하라며
남편에게 새 운동화까지 선물로 받은
등 떠밀려 복 터진 뇬이 되었다.
그래서
화요일인 오늘 "아우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픈 거 같네....
어제 딸내미랑 새벽까지 Whtsappe 하다 자서
잠이 부족 한데... 뛰고 나면 내일 몸이 천근만근일 텐데..
이번 주에 할 일 되게 많은데... 등등의 새로운 핑곗거리 들을 자꾸 만들어
내고 있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어기적 거리며 마지못해 도착한 나를
이미 스트레칭을 하며 뛸준비를 하고 있던 조깅 동우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두 팔 벌려 반가워해 주었고
이들의 환대에 고맙고 미안 해진 나는
"다른 동물 들과 달라 겨울잠이 아니라 여름잠을 잤노라
너스레를 떨어 댔다.
이곳 모임에서
화요일 목요일마다 빠짐없이 운동하러 나오는
20여 명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다.
40대 50대의 젊은? 아낙 들은 나와 마리안나, 카티아, 스잔네 등
손으로 꼽을 만큼 몇몇 뿐이다.
그런데 이분 들이 겉보기에만 60대 이상이지
대부분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열심히 운동을
해 오신 분 들이라 함께 뛰다 보면
뭔가 한참 뒤바뀐 느낌이 들고는 한다.
아까도 그랬다.
그간의 운동부족으로 자꾸만 뒤처지는 나를 위해
모니카와 마리안나는 옆에서 나란히 내 템포에 맞춰 같이 뛰어 주었고
우리 바로 앞에서 뛰고 있던 68세인 헬가트와 72세인 루이자 와는
차츰 거리가 벌어지더니 어느새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멀리서 볼 때 뛰는 건지 걷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게
엉거주춤 뛰던 나는
아시아 사람들의 나이를 제대로 가늠하기 힘든 이들이 볼 때
비주얼은 30대 몸은 80대인 것이다.
걷는 건지 뛰는 건지 구분 안 가게 설렁설렁 뛰던 나는
그래도 이 넓은 공원을 한 바퀴 다 돌았다고
헉헉 거리며 보람찬 하루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앞에서 뛰다 어느 순간 사라진 헬가트가 나타
나서는
"어디 갔다 이제 오니? 뒤에서 너네들 말소리가
노래처럼 쁠라 쁠라 들리더니 갑자기 안 들려서
다른 방향으로 갔나? 했었다"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니라 두 분이 너무 빨라서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때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온 루이자가
"너도 이번 마라톤 함께 뛸 거지? "한다
오잉 이게 무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린가 말이다 뭔 마라톤?
그녀는 이번 주말에 있는 자그마치
42.95Km짜리 카셀 마라톤을 말하는 거였다.
헐.... 맘마 미아...
작년에도 이맘때 마라톤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교통마비였던 것이 떠오르면서
"설마 그 구간을 다 뛰어?"라고 묻는 내게
모니카는 친절히 마라톤 구간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펼쳐 보여 주며
"전구간 뛰기에는 너무 길어서 몇 사람씩 나누어서
구간 별로 뛰는 그룹 마라톤 나갈 거야,
대략 그룹별로 10 킬로미터씩 나누어 뛴다고 보면 돼" 라고 시원스레 말했다.
나는 가까이하기엔 내겐 너무 먼 10 킬로미터를 생각하며
이론 센 언냐 들.. 무슨 10킬로 미터 가 자빠지면 코 앞 도 아니고
"껌 하나 여도 괜찮아 기니까 네 등분 해서 나눠 씹지 뭐 "라고 하듯이
저리 간단하게 이야기 하남? 이 라며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헬가트 가
"요기 봐 이 구간이 바로 너네 집 앞을 지나가잖아
같이 뛰면 되겠다"한다.
아니 이 언냐 무슨 그런 무서븐 말씀을.... 집을 옮겨 버릴 수도 없고...
그 순간 빛의 속도로 탁 하고 떠오른 정당한 핑곗거리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앙큼하게도
"나는 일요일에 교회를 가거든 함께 못해 안타깝네...."
라며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는 건 사실이지만
마라톤을 못 뛰어 안타까울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말이다.
내 쌈박한 답변에 이번엔 루이자가 "음 그래? 예배가 몇 시 시작인데?"라고 묻는다.
아 이 집요한 언냐 같으니라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음 한시 정각 근데 조금 일찍 가야지" 라며
고로 나는 그날 절대 안돼 라는 것을 확실히 전하려 애썼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니카가
"그럼 됐네 마라톤은 9시부터 시작이니까
짧게 뛰면 되지 목요일 아침에 연습하면 되겠다 "한다.
으허헉 왠지 이번 주 목요일 아침 눈 뜨면
멀쩡 하던
다리가 후들 거리며 아파 올 것 같은 예감이
벌써 부터
마구 들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