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14. 2020

우리 부부의 애로사항

허리가 길어 짠한 남자 다리가 굵어 슬픈 여자


가을은 천고 나비의 계절


어느 평범한 가을날 오후였다.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에서 나오던 나는 정원에 하나둘 쌓여가는 낙엽을 쓸어 버리고 들어 오던 남편과 거실에서 마주 했다. 커피 한잔 할까?라고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말없이 나를 당겨 안으며 은근슬쩍 더듬어 왔다.

햇빛 넉넉히 퍼져 오는 이 따땃한 오후부터 왜 이러시나 하는 뜻을 담아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음을 덧발라 콧 평수를 늘린 맹맹한 목소리로 "아 왜.. 앵..." 하며 말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남편은 내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바지 맞는 것 없지" 남편의 말 뒤에 붙은 건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였다.


나는 순간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안고 있었으면 방으로 갈까 는 아녀도 사랑해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벌건 대낮부터 19금을 기대했던 건 절대.. 아아아 니다. 그런데 바지 맞는 거 없냐니, 허어....

남편은 동그란 눈을 찡긋 거리며 맞지? 내가 정확하지? 하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래... 들켰다. 남편은 반박할 수 없는 팩트로 잘근잘근 말로 지르밟아 주는 스타일인데 눈대중 아니 손대중 마저 정확하다 덴쟝....

아..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가을은 천고 나비의 계절이다. 가을 하늘은 무지하게 높고 말이 아닌 나만 날이 갈수록 찌고 있다.

남편은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더 이상 입을 바지가 없는 마눌을 위해 시내로 쇼핑을 나가자고 했다.

아마도 코로나 사태 이후 6개월 만이지 싶다....


바지 고르기 쉽지 않은 부부


우리는 평소 가격 대비 괜찮은 옷들을 자주 발견? 했던 C&A로 갔다.

마침 그날 세일한 것에 50프로를 더세일하는 반짝 특가 세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 바지를 사러 가자 해 놓고 자기 바지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에서 남편의 체형에 잘 맞는 바지를 고른 적이 많았는데 세일에 더 세일을 해준다니

이것이 웬 떡인가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동네에서 몸에 맞는 바지 척척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체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키 178 센티에 몸무게는 중년의 후덕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약간 복부 비만 쪽이다.

뭐 이 동네 아자씨들도 맥주 배? 들이 나온 분들이 많아 허리 크기만 가지고는 바지 고르기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키여도 다리보다 허리 가 짧은 이 동네 아저씨들 보다 허리가 기신 남편은 허리가 맞으면 오호통재로다... 바지 기장이 느무 길었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 내가 한국에 살 때는 바지의 기장을 줄여야 한다거나 지퍼를 새로 달아야 할 때 세탁소에 수선을 맡기면 몇천 원에 금세 쌈빡하게 고쳐 오고는 했었다.


우리동네 세탁소 안에 있는 옷수선집 그리고 가격표 바지단 즐이는 것은 6유로 부터 청바지는 8유로 부터^^옷감 재질,두께와 줄이는 길이에 따라 가격이 달라 집니다.


물론, 독일도 수선소 라 해서 슈나이더라이 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이 독일식 옷 수선 집은 동네에 따라 세탁소 안에 들어 있는 곳도 있고 신발 수선과 함께 옷 수선하는 곳도 있고 그냥 옷만 수선하는 작은 공방 같은 슈나이더라이 들도 있다. 

그런데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달랑 기장 줄이는 거 하나도 비싸고 가격 대비 옷 수선 상태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의 29유로짜리 면바지를 옷 수선하는 집에 맡기고 10유로 내고 찾은 적이 있다. 착실하게 기장은 짧아졌다만, 핏과 체형과는 무관하게 통아저씨 바지로 거듭났다.

결국 남편은 그 바지는 입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 나는 마트에서 세일하는 재봉틀을 사서는 샐프로 옷 수선을 해 볼까 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문화센터에서 바느질 수업까지 들었다.

그러나 아직 바지, 재킷 등의 크고 고난도인 옷 수선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 남편은 우연히 자기 체형에 맞아 보이는 바지를 찾게 되면 심봤다! 를 외치며 두 팔 가득 골라 댈 수밖에 없다.

#1. 김여사의 바느질 수업 탐방기

#2. 김여사의 바느질 수업 탐방기

자기 바지 고르느라 마눌의 바지는 잊은 지 오래 ㅋㅋㅋ
허리가 길어 짠한 남자
다리가 굵어 슬픈 여자


그렇다면 나는 독일에서 바지 사기가 쉬운가 하면..... 부부는 일심동체, 우리 부부는 다른 체형 같은 고민이다.

그 이유는... 나는 키 163에 요즘 매일 새로운 몸무게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한마디로 하체가 특별히 튼실하신 하체비만 일명 하비 되겠다.

허리는 이 동네 아주마이들 에 비해? 그리 걱정이 없으나 다리는 비교불가다.

즉, 바지를 고를 때 허리에 맞추면 발을 바지에 끼워 넣는 순간 올라가지 않는 슬픔이 있다.

그래도 좀 무리를 해서 바지에 몸을 끼워 넣을라 치면 허리는 훌렁훌렁 다리부터는 스타킹 또는 레깅스의 모습을 띨 때가 많다.

보기에도 남사스러울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시피 일할 때가 많은데 불편해서 입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운동복 입고 병원으로 출근할 수도 없으니..

바지를 고르기는 골라야겠는데... 보기에 핏이 예쁜 바지는 택도 없었고 우와 이렇게 큰걸? 하며 보기에도 넓어 보이던 바지는 편안했다.


그날 남편은 바짓단을 한 번만 접어도 입을 수 있는 바지가 많다며 기뻐했고 요즘 바지 걱정 없이 매일 바꿔 입고 계신다.

나는 너무 어마 어마 해진 바지를 입게 되면 그 사이즈 그대로 아예 빼박이 될까 봐 늘어난 사이즈의 바지를 사지 않고 그냥 왔다. 그 덕분에 요즘은 집에 있던 간신히 맞는 몇 안 되는 바지와 박스티에 여유로운 레깅스로 버티는 중이다.

그리고, 매일 간식과 식사량을 줄이며.. 스트레스로 단 게 당길 때마다... 예전에 입던 멀쩡한 바지들을 주르미 꺼내 두고 주문처럼 이렇게 외치고는 한다."살을 빼는 게 돈을 버는 거야.!"


이 글을 쓰며 대문 사진으로 사용할 그날 바지 사러 가기 전의 우리 부부 모습과 분위기가 비스구리 한 것을 찾다가 러브러브 하고 샤방샤방한 가을느낌 물씬 품은 커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아래 사진)

마음은 이 가을 우리도 저런 바람직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저리되려면 새로 태어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평소 우리 친정 엄니 박 여사님은 자주 이렇게 렙을 하시듯 라임 쩔게 흥얼거리시곤 했다.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님을 보고 님을 봐야 뽕을 따지...하고 말이다.

나는 뽕까지는 안 따더라도 집에 있는 바지라도 입을려면 매일 요렇게 되지도 않을 꿈을 꾸어야 겠다.


*대문사진 출처:  www.Pixabay     *위에 사진 출처:www.Freepik.de
작가의 이전글 김여사네 미션 임파서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