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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iwoogi Apr 19. 2024

나도 외치고 싶었다. 드디어 막항!

삼중음성 유방암 항암 8차가 끝났다.

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AC(독소루비신, 싸이톡신) 4차, 막항


항암 환자들이 외치고 싶은 말. 

막항. 마지막 항암. 

오지 않을 같은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는 날 아침이 밝았다. 밥 생각이 없어서 사과와 바나나를 조금 먹고 병원에 갔다. 마지막 주사라서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기분 탓인지 아침에 먹은 과일이 얹힌 듯한 느낌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원에 일찍 도착하여 채혈실에서 피검사를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았다. 


처음 항암을 시작했던 날은 여름이었다. 마지막 항암을 하는 날은 추운 날씨로 인해 두터운 옷을 입었다. 주사실에 다닐때마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목에 두른 목도리를 벗는 일이 반복되었다. 채혈하고 혈압과 몸무게를 측정했다. 항암 하는 동안 몸무게 변화가 없도록 관리하기 위해 추운 날에도 열심히 걸었던 덕분인지 몸무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의사를 만날 때까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체한 듯 답답했던 속을 가라앉힐 겸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암 병동 지하 커피숍에서 따뜻한 생강차를 사서 삼성병원 산책길에 올라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초록이 가득했는데, 어느새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고, 나무 몇 그루에만 마지막 단풍잎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다. 낙엽이 지고 앙상함만 남아있어도 봄 되면 다시 새순이 돋고 푸른 잎이 무성해질 테니까. 나도 처음 항암을 시작할 때는 암 덩어리가 얼마만큼 줄어들지 막연했고, 항암 치료하는 시간의 끝이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마지막 주사를 맞는 날이 왔지 않은가! 하물며 자연의 섭리를 보며 쓸쓸하다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항암 치료받는 동안 주변에서 많이 해 줬던 말이다. 나도 많이 생각했던 말이다. '항암 8차가 끝나긴 할까?' 막연하기만 했던 시간이 결국 지나가긴 했다. 아직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지만, 이 시간은 내게 또 다른 가르침이 될 것이다. 


아침의 가라앉았던 기분이 어쩌면 마지막 항암, 환우들이 흔히 말하는 막항의 느낌이 더해진 것 때문이었을까? 막항이 마냥 기분 좋다기 보다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게 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2시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진료실에서는 항상 같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지난번 주사로 힘들진 않았어요? 어땠어요?" 

"3차 항암은 거의 힘들지 않았어요. 가장 수월했습니다."

"손발 저림은 더 심했어요?" 

"아니요. 지난번보다 좋아진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약이 바뀌면서 증상이 줄어들 테니 좀 더 참아봅시다."

 “네”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수고했어요. 수술 결과에 따라 나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결과가 좋아서 다시 안 만나면 더 좋겠죠." 많은 말씀은 없지만, 항상 따뜻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는 교수님이다.  


8회차의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내가 믿고 따랐던 교수님은 인간적으로 좋았다. 그러나 교수님 말씀처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수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수술 후 다시 후 항암을 하기 위해 혈액종양내과 의사를 다시 만나야 한다. 나도 교수님도 서로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간호사가 건네준 진료 일정표의 안내 사항에 적힌 두 문장이 내겐 큰 위안을 주었다. 〈수술 잘 받으세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종이 위에 적힌 문장이지만, 애쓴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 주사를 맞기 위해 202호실에 입실했다. 주사도 아프지 않았고, 산책 덕분인지 주사 맞는 동안 졸음이 계속 와서 충분히 쉴 수 있었다. 마지막 빨간약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내 왼손을 보게 되었다. 손 전체가 퉁퉁 붓고 점점 까맣게 변색 되어서 미워진 손, 윤기없이 거칠거칠해진 손과 팔이지만 16번의 주사를 잘 견뎌준 나의 왼손이다. 빨간 약을 받아들이고 있는 손을 보고 있으려니, ‘애썼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항암도 익숙해지면 견딜만하다.


AC 주사는 3주 간격으로 4번을 투여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부작용을 견뎌내는 것이 수월했다. 1차보다 2차가, 2차보다 3차가 수월했던 것처럼 4차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4차 주사를 맞은 당일에 집에 돌아와서 가볍게 집안일을 했는데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감사했다.     


AC 4차 주사를 맞고 집에서 지내는 3주 동안은 지난 몇 번의 항암 주사를 맞고 보냈던 시간에 비해 힘들지 않았다. 설혹 AC 4차 주사의 부작용이 다른 때보다 더 혹독하게 힘들었다 하더라도 ‘마지막인데 뭔들 못할까’하는 독한 마음으로 견뎌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독한 마음 먹지 않을 수 있도록 힘들지 않게 3주를 견뎠다. 


 AC 1차와 2차 때 항암 주사에 반응하는 몸의 변화를 기록해 놓았던 자료들이 많은 도움을 준 덕분일 것이다. AC 1차는 아무런 경험없이 온몸으로 부작용과 맞섰고 그때의 몸의 변화와 대처 과정을 기록해 두었다. AC 2차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AC 1차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특징을 비교해 보았다. 다행히 항암 주사 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작용의 특징이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1차 때의 대처 방법을 2차에 적용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3차와 4차 주사를 맞은 후엔 1차와 2차의 경험을 토대로 주사 후 나타나는 몸의 변화에 신경 쓰면서 관리했더니 훨씬 수월하게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었다.      


AC 주사 후 나타난 부작용은 1차에 가장 힘들었고, 2차, 3차, 4차의 순서로 차수가 진행될수록 부작용이 줄어들었다. 막항에서는  AC 주사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하다는 오심, 구토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오심은 주사 맞은 후 3, 4일 이내에 증상이 살짝 올라오는 듯했으나, 그때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맥페란을 먹었더니 크게 힘들지 않았고 바로 가라앉았다. 마지막 4차 주사는 맥페란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오심 증상은 없었다. 항암 주사 맞고 6일째부터 8일째 되는 날은 여전히 온몸에 기운이 없어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발가락 통증, 내가 이겨낼 수 있다!


여전히 나를 가장 괴롭히는 증상은 손가락과 발가락 부분이었다. 발가락 부분의 저림, 시림, 통증 외에 발가락 마비로 인해 발톱이 살을 뚫고 들어가는 내향성으로 바뀌어 갔다. 발톱에 찔린 살 부분은 부풀어 올라서 염증이 생겼다. 내향성 발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곳과 피부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한두 번의 치료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고 치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고민 끝에 유방 수술 후에 발가락 치료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대신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소독약과 후시딘을 발라 보았다.


발 시림 증상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족욕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시간을 이용했다. 족욕 후 충분히 부드러워진 발톱을 소독한 도구를 이용해서 들어 올려 주었다. 발톱에 자극이 갈 때마다 찌릿거리는 통증이 심했지만 참아야 했고, 살짝 들려진 발톱 사이로 소독약을 부어 주거나 소독솜을 끼워서 발톱이 살을 뚫지 못하도록 했다. 몇 번 더 소독약을 부어 준 후 후시딘을 바르는 과정을 하루에 두 번 정도 해 주었다. 처음엔 왼쪽만 내향성이던 발톱이 어느 날부터인가 오른쪽까지 같은 증상을 보였다. 항암 치료 동안 쉽게 지나가는 일은 없나 보다. 더 부지런히 발 관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홀대받았던 내 발이 관심을 끌고 싶었던 모양이다. 


수족냉증으로 인해 차가워진 발에 바세린을 덕지덕지 발라도 조금만 지나면 다시 건조해졌다. 그래서 수시로 바세린을 듬뿍 발라서 충분히 맛사지를 해주고 비닐로 감싸주어야 했다. 발톱은 내향성으로 살을 뚫고 있어서 소독을 하고 수시로 들여다봐야 했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힘들었던 발가락은 수시로 맛사지를 해준 후 두툼한 수면 양말로 덮어 주었다. 신경이 온통 손과 발에 집중되었다. 평소 특별한 관리를 받지 못했던 내 손과 발은 항암 치료 기간 동안 계속 나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항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막항까지 오는 동안 견딜만큼의 고통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드디어 수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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