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이야기(1) 항암치료 1차
7월 4일 월요일. 첫 항암 주사 날.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시원해야 하는데 그날 내린 여름비는 차갑게 느껴졌다. 첫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하하면서 창을 때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첫 주사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이름이 전광판에 나타났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주사실에 들어갈 때는 떨림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내가 맞을 주사약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남편은 나보다 더 걱정이 많았다. 주사 아프지 않게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남편이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주사 바늘이 몸속에 들어오는 따끔거림은 여전히 아프고 싫다. 간호사는 내 이름이 적힌 주렁주렁 매달린 여러 개의 주사약을 확인하며, 주사 맞는 동안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처음엔 주사약을 천천히 주입 할거라고 했다. 간호사가 내 팔에 능숙하게 주사 바늘을 꽂을 때, 나는 주사 바늘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리며 기도를 했다. 주사약이 내 몸 속에 들어가서 암세포를 없애주고 내 몸이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치료하는 동안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한다면 견딜 만큼만 달라고 기도했다.
2시간 넘게 두 가지 종류의 약이 주사를 통해 내 몸으로 들어가는 동안 혹시라도 부작용이 나타날까 봐 잔뜩 긴장을 했다. 어느 순간 입술 주위로 열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부작용의 시작인가?’ 그 순간 겁이 났지만, 입술 주위는 곧바로 편안해졌다. 다행히 염려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고, 주사 맞는 동안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시간이 길어져서 피곤함이 있었다. 주사를 맞는 중에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다고 하여 평소보다 많은 양의 물을 마셨다. 나는 주사맞는 동안 누워있을 수 있었지만, 남편은 작은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든 시간이었다.
부작용이 시작된 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가볍게 했다. 혹시라도 구토 증상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주사 맞을 때나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주사 맞은 날 밤이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다가 여러 번 깨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땀을 흘렸다. 땀에 젖은 배게와 시트를 보고 당황스럽고 놀랍기까지 했다.
잠을 자다가 깨는 것은 그날만의 일이 아니었다. 항암하는 동안 개운하게 잠을 자는 것과 새벽에 깨지 않고 4시간 이상 길게 잠자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지독하게 야행성인 내가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새벽에 일어나 걷기 운동을 했다. 밤새 뒤척이다가 동이 트는 새벽을 맞이하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걸으러 나갔다. 밤의 고요함을 좋아했던 나는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새벽의 활기로움을 좋아하게 되었다. 항암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었다.
7월 11일 월요일. 파클리탁셀 주사 1차-2회 투여한 날.
카보플라틴과 파클리탁셀 주사를 맞고 난 일주일 후엔 파클리탁셀만 맞았다. 카보플라틴은 3주에 한 번, 파클리탁셀은 매주 한번씩 투여한다. 파클리탁셀 주사 치료는 1시간 30분 정도로 끝나기 때문에 첫 주에 비해 편안했다.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는 동안에도, 집에 돌아와서 느끼는 증상도 첫 주에 비해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피곤했다. 그리고 발꿈치가 저릿저릿한 느낌이 있었다. 이때 ‘항암 부작용의 하나인가? 아니면 예전보다 많이 걸어서 그런가?’라며 무심하게 생각했었다. 동네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기 운동을 했다. 평소 많이 걷지 않다가 갑자기 걸으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려니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것이 항암 치료 과정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말초신경병증의 시작이었다.
힘든 것은 발 뒷꿈치의 저림뿐만이 아니었다. 7월의 열대야는 항암으로 잠 못 이루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주사후에 흘리는 땀과 열대야의 더위로 인해, 잠을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정도였다.
7월16일 민머리가 되다
병원 상담실에서도 주변의 환우들은 항암 주사 투여한 지 2주차가 되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질거라고 말했다. ‘나는 혹시나, 안 빠지려나. 지금만 같으면 좋겠는데.’ 주사 맞고 1주일 동안 머리카락 탈모 증상이 없어서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항암 치료 2주차에 접어드면서 흰 베개 위와 침대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이후 하루 이틀 사이로 탈모 증상은 급진전했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만 지나가도 숭덩숭덩 빠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바닥엔 내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뒹굴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데 조금만 더 있다가 밀지. 미리 깎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머리카락이야 치우면 되지.”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버려야 하나 생각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무심코 머리를 쓸어올리는 내 손가락 사이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머리카락이 무더기로 뽑혀져 나왔다. 내가 머리에서 손을 떼는 순간 머리카락 전체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무서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손가락 사이에 잡힌 머리카락을 털어내기엔 너무나 많은 한 주먹 가득한 머리카락을 들고 어찌할 수 없었고, 내 머리카락인데도 무서웠다. 손가락만 빼내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미 빠져나온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많은 양을 어찌할 수 없어서 고무줄로 묶어 버렸다.
“더는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아. 내일은 머리를 밀어야 할까 봐.”
“엄마, 내일 토요일이니까 나랑 함께 가요. ”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을 잡으며 큰아들이 말했다.
“그럴까? 아빠는 나 머리 미는 것 보면 울 것 같으니, 아들이랑 데이트 삼아 가야겠다."
다음날, 헤어 쉐이빙을 하러 가기 전에 거실 쇼파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전날보다 더 많은 머리카락이 빠져 있어서 머리를 묶은 고무줄을 풀면 머리카락이 쏟아지는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았다. 머리를 감을 수도 없었고, 지저분하게 상투 튼 머리처럼 한쪽으로 헝클어진 묶은 머리를 하고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남아있었으니 기념하고 싶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큰아들과 홍대 앞 항암 전문 가발 샵에 가서 머리를 밀었다. 머리를 쉐이빙할때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엄마 뒷통수가 예쁘네.” 아들이 내 뒷통수를 만지며 하는 말에 가슴이 메어왔다. 아들이 골라준 예쁜 모자와 비니 몇 개를 샀다. 민머리에 비니를 눌러 쓰니 누가 봐도 항암 환자처럼 보였고 스타일링을 하기엔 뭔가 어색했다. 단지 머리카락만 없을 뿐인데 모자 착용 모습이 이렇게 어색한 일인가 싶었다.
7월 18일 월요일. 파클리탁셀 주사 1회 3차
세번째 주사 이후 가장 불편했던 것은 발저림 증상이었다. 발 뒷꿈치에서 시작된 저림이 서서히 발바닥 앞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파클리탁셀 주사 3차 이후엔 발바닥 전체가 저리고 쑤신 느낌이었다. 발저림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이 걸어야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주사 5일째인 금요일에 기침과 열이 심하게 났다. 너무나 힘들어서 방안에서 뒹굴거리는 데 때마침 퇴근한 아들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 응급실에 가볼까 생각했으나, 코로나 시기였으므로 응급실에 가더라도 치료받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다고 하여 일단 집에서 견뎌보기로 했다. 그날은 항암하는 동안 처음으로 많이 울어본 것 같다. 기침과 열 때문에 아파서 운 것인지, 아들의 위로에 마음이 풀려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은 처음으로 맘껏 울었었다. 다행히 밤부터 조금씩 가라앉아서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견디기 힘든 만큼은 아니었지만, 불면, 더위와 발저림으로 고생했던 항암 주사 1차의 3주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