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담는 그릇
성인(聖人)이란, 지혜와 덕목이 뛰어난 자로 수행을 통해 자기 완성에 이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유교에서도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성인은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을 존경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업가들의 마인드는 성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자서전과 명언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성인들은 단순히 선한 마음만으로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왕’처럼 수많은 이들을 품고 이끌었다. 성인이 왕인 이유는, 그릇이 크기 때문이다.
왕은 세상의 주인공이자, 주인이고 가장 좋은 것을 누리는 자리이다. 왕의 보좌들과 넓게는 국민들이 그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왕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가지지만 왕이 이렇게 특별한 자리인 이유는 역으로 왕의 존재 이유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왕의 그릇'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수용하는 책임감의 크기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그릇은 예로부터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간단하지만 꾸준한 발심(發心)을 통해 수행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치로 여겨져 왔다.
동양의 전통 사상 체계인 유교에서는 성인(聖人)이 되는 수양법과 정치 철학을 함께 설명한다.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대학의 목적은 군자(성인이자 통치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성인과 통치자의 다른 듯 보이는 두 개의 길은 사실 수신(修身), 즉 수양을 통해 그릇을 키워 온 세상을 담을 그릇이 되라는 하나의 길로 통해있다. 자기 수양의 첫 걸음은 만물의 이치를 알고 (격물치지), 바른 마음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의정심). 결국 자신이 이치에 맞는 덕과 지혜를 가지면 자연히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원리이다.
[유교 경전 대학 중]
격물(格物) 치지(致知):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혜를 얻고
성의(誠意) 정심(正心): 뜻을 성실히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수신(修身):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제가(齊家): 자신의 집안을 질서있고 조화롭게 하고
치국(治國): 나라를 다스려
평천하(平天下): 온 세상에 평화를 이루다.
국교가 유교(성리학)였던 조선시대 왕의 삶을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왕은 아침 점심 저녁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늘 수양에 정진하였다. 이렇게 쌓은 지혜와 덕으로 신하들과 국정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궁 내외부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조율하는 것이 일이었다. 왕의 삶은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되는 사적인 삶이 없는 공적인 삶이었는데, 왕의 안녕이 나라의 안녕이었기에 왕의 삶은 시스템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 끊임없이 그릇을 키우지 않는다면 왕의 자리는 분명 견디기 어려운 자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 될 그릇을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나]라는 개념의 확장이다. 보통의 일반인들은 [개인 = 나]에 그치지만 왕은 [공동체 전체 = 나]로 확장된다. 유교의 원리에서 이 단계는 [가족 = 나] (제가)라는 작은 집단의 범위에서 확장되어 나간다. 궁극적 경지인 성인, 군자는 [온 세상 = 나]인 평천하의 단계인데, 이는 동양 3대 철학인 불교, 도교와도 다르지 않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자유로워지려는 자비심을, 도교는 세상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물아일체를 말한다. 유교역시 핵심은 인(仁, 사랑)이다.
“어진 군주는 백성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 — 『맹자』
“모든 중생이 나와 같다 생각하라.” — 『법구경』
“천지와 나는 함께 생겨나고 만물과 나는 하나다.” — 『장자』
세종대왕이라고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덕으로 적도 온갖 문제들도 조화롭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어야 공동체가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출가 전 왕자의 신분이었다. 그는 그가 모르고 살던 늙고, 병 들고, 추한 것들에 충격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6년간 수행에 정진했는데 세상의 가장 낮고 더러운 것들까지 품을 수 있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난 뒤, 엄청난 규모의 상가(Sangha) 수행 공동체와 지금의 불교를 이끈 왕으로 다시 거듭났다.
현대 시대의 왕은 제도적 지위보다는 공동체를 품는 역할을 의미한다. 지금 시대는 점점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주의 흐름에 맞추어 물 흐르듯이 살아가라는 도가의 가르침처럼 점점 수행과 명상, 영성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성인의 경지처럼 세상과 하나된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심리학적으로는 자아 초월 의식 상태라 일컫는데, 이 단계는 인간 발달 단계 중 자아 실현의 상위 단계이다. (매슬로우의 이론, 이전 글)
자아 실현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 나의 재능을 쓴다는 뜻이고, 사회 속에서 소명을 공적으로 달성하는 일이다. 세상이 나의 재능을 필요로하고, 내가 세상에 재능을 나누고자 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 오늘 날은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지배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의 재능을 펼치며 동시에 서로의 재능을 펼치게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모두가 중첩해서 하게된다. 이는 부모-자식 관계처럼 시간에 거쳐 서로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바꿔할 수도 있고, 팀플레이어처럼 동시에 분업을 할 수도 있다. 단, 자기 세상에서만큼은 자신이 주인인 구조이다.
모두가 왕이 된다는 것은 모두가 자기 우주의 중심이자 주인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중심이지만 연대하는 방법은 결국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이다. 성인인 왕은 자신의 세상을 자신과 동일하게 사랑한다. 타인과 분리되어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타인과 관계를 이치와 지혜로 신뢰하고 상생하는 시너지 게임을 해야한다. 나만 아는 특별한 세상도, 우리 가족이나 카페의 사장이라는 작은 세계의 왕도 다르지 않다. 나와 타인을 세상이라는 하모니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악기의 음악들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더불어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고, 외계인을 조우하는 우주의 시대에서는 내 세상의 범위를 언제든 낯선 것에 대해 수용하고 확장 가능한 형태로 열어둘 준비를 해 놓는 것이 유리하다. 어느 날 나타난 새로운 악기를 밀어내고 싶은 낯설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 악기는 어떤 음악으로 확장되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찰하여 함께 이전과는 다른 연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금, 낯선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그릇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