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포기
똘이가 여섯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급하게 시골에 내려가게 되었다. 가족들이 각자의 직장에서, 학교에서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출발하기 전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
똘이였다. 가족들이 채비를 하는 동안 불안해진 똘이는 서두르는 가족들을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녔다. 싸놓은 짐에 들어가고 싶기라도 한 듯이 어슬렁대며 자기도 데리고 갈 거냐는 아련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똘이는 시골에 갈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친척도 계셨다. 그런 똘이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지내게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생각해 낸 곳은 동물병원이었다. 똘이가 다니는 동물병원이라면 왠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가는 길에 당시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똘이는 의사 선생님에게 안겨져 들어갔고 힐끔 본 똘이가 들어간 곳에는 케이지들이 있었다. 동물병원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처럼 똘이도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건가? 싶었지만 서둘러 내려가야 했기에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차에 올라탔다.
3일이 지나 서울에 돌아온 날 똘이를 데리러 병원에 갔다. 똘이와 떨어져 본 적이 없어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똘이를 보았다. 똘이는 병원에 맡긴 날과 같이 동물병원 안쪽에 있는 회색 케이지에 갇혀있었다. 멀리서부터 우리의 냄새를 맡았는지 좁은 케이지 안에서 작은 발을 동동 굴렀다.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똘이의 눈 아래 하얀 털에는 눈물자국이 갈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맘이 아파 똘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작은 손으로 안아달라 가족들마다 보채고 안길 때마다 얼굴을 핥았다.
"우리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우리도 너무 보고 싶었어 똘이야"
똘이를 소중히 안고 집에 돌아가는 길. 감싸 져 있던 담요를 바로 하려고 들추는 순간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똘이의 대변이 털에 이곳저곳 묻어있는 것.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똘이야, 우리가 없는 동안 이렇게 지낸 거니?
눈물이 났다. 대변을 밖에다 보지 않고 철장 안에서 봤던 걸까. 3일 내내 케이지 안에서 지냈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울었던 걸까. 병원에서는 왜 똘이의 몸을 씻겨주지 않았을까. 목욕은 별도 비용이었던 걸까.
똘이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가족들을 빤-히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금세 헥헥거렸다. 하얀 몸에 갈색 자국들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이 날로 우리는 절대 똘이를 어딘가에 맡기지 않겠다 다짐했다. 집에 돌아와 목욕을 시켜주고 꽉 껴안아주었다.
널 다시는 우리 집에 데리고 온 그날처럼 망가지게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시간이 흘러 2년쯤 뒤. 매년 똘이와 캠핑장으로 여행을 가던 우리 가족은 큰 결심을 했다. 해외여행을 가보기로 한 것. 사업을 하는 우리 아버지는 해외여행을 갈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마침 추석 연휴가 겹쳐 해외에 나갈만한 휴가가 주어진 것이다.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선택한 세부 여행. 그리고 또다시 똘이가 걱정이었다. 똘이를 비행기에 태워 간다는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똘이는 당시 살이 많이 쪄서 몸무게가 꽤 나가는 상태였는데 똘이의 몸무게가 비행기에 함께 탑승하기 어렵다는 사실에다가(짐칸에 들어간다는 건 절대 싫었다.) 급하게 예매한 표 때문에 똘이가 건강검진을 하고 출국 전 신고하기까지 날짜가 빡빡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동물병원에 맡기기는 싫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똘이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했다. 이번에 똘이는 집에 혼자 남기로 했다. 대신 똘이가 평소에 정말 좋아하던 엄마의 친구 B아주머니가 매일 몇 시간 씩 우리 집에 와서 놀아주시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B아주머니는 우리가 세부에 가있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매일 오셔서 똘이와 놀아주고 우리에게 영상을 보내주시곤 하셨다. 똘이는 꽤 잘 지내는 듯 보였는데 집에 돌아가기 하루 전, 아주머니가 똘이 목소리가 많이 안 나오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깜짝 놀란 우리는 그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걱정되는 맘에 서울에 도착해 집으로 들어가니 예상대로 똘이는 짖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우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힘차게 돌아가는 꼬리와 약간의 원망이 섞인 눈동자. 그리고 아무리 짖어도 크게 나오지 않는 목소리. 똘이가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많이 울었던 것이다. 짖고 낑낑거리고 울고. 아주머니가 없는 시간 동안 똘이는 계속해서 짖고 울었다. 그리고 결국 6일째 되는 날 목이 나갔다. 가족들은 주저앉아 똘이를 안아주며 연신 미안해 소리했다. 똘이는 그 와중에도 품 속에서 반가워 온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날은 얼굴을 핥는 똘이에게 온몸을 맡겼다.
두 번의 자리비움을 겪은 똘이를 보고 우리 가족이 선택한 것은.
' 똘이가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한 우리는 똘이 없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였다. 큰 결심이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강아지가 동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그날까지 똘이 없이 여행을 가지 않았다. 모든 곳을 똘이와 함께 했다.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각자 친구들과 혹은 부모님들끼리 가며 누군가는 반드시 똘이와 집을 지켰다. 속상한 적도 많았다. 가족들끼리 국내여행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했다. 반려견 동반 식당을 찾으며 맛집을 갈 수 없다는 것에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옆에 앉아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는 똘이의 초롱초롱한 얼굴을 보면, 함께 떠나는 여행길에 포옥 안겨 잠든 똘이 얼굴을 보면 금세 풀어지곤 했다.
제대로 된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똘이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기도 했다. 반려견 식당이나 카페가 점점 많아지면서 똘이도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와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우리는 똘이와 함께 국내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앞으로 시간이 많고 반려동물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들에게도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그 길잡이가 돼주기로 한 그날부터 우리는 그들의 삶을 함께 해야 한다. 책임감을 가지게 된 우리 가족.
똘이야, 우리와 함께한 여행은 행복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