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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Jun 16. 2024

9. 한여름 밤의 꿈, 라스베가스

미국 라스베가스는 호불호가 가장 심하게 갈리는 여행지 중에 으뜸이라도 해도 전혀 과하지 않는 곳이다.

엘에이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비행기를 타도 1시간이면 도착하고, 공항에서도 호텔이 즐비한 메인 스트릿까지 10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라스베가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일단 호텔마다 로비에 크게 잡리잡은 슬롯머신과 게임 테이블을 보고 기겁을 한다. 저속하고 저속하다는 입장이다. 거기다 호텔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베네치안의 곤돌라, 파리의 에펠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조형물들을 보고 유치하다고 배를 잡고 웃는다.

라스베가스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사람들은 혹시 잭팟이 터질지도 모르는 슬롯머신 기계들도 사랑스럽고, 이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평소의 꼿꼿이 유지하던 자세들도 마음껏 흐트러트리고 싶은 모든 게 용서가 될 것 같은, 지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관대한 곳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나는 라스베가스를 사랑한다 까지는 아닐지라도 일상의 생활이 지루할 때 훌쩍 떠나 2박 3일쯤 지내고 오기엔 참 좋다는 입장이다. 

미국 전역의 유명한 레스토랑은 다 모아놓았기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고 아름다운 호텔 수영장에서  둥둥 떠있다가 썬베드에 누워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시원한 과일까지 시켜 먹으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구나 싶다.


여름의 시작인 6월이 되면 우리는 일단 라스베가스 방문으로 여름에게 웰컴인사를 건넨다.

1월부터 달려온 일상에게 잠깐 쉬어가자 말하며 시간을 붙든다.

이곳에서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말하고 더 크게 웃는다.

3일 정도의 짧은 시간을  극도로 즐겁게 지내 남은 6개월을 버티고 12월에 다시 방문해 일 년의 결산을 한다.


한국에 살았을 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를 보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삶을 붙잡으려는 처절한 몸짓에 꽤나 충격을 받았었던 것 같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라스베가스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얼굴에 생기가 없고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곳곳에 즐비한 스롯머신 기계들을 매일 보며 일을 하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절대 없어지는 않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잭팟이 터지는 행운이 한 번만 일어난다면 내가 오늘 이 힘든 일을 그만둘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흐릿한 희망과 유혹 속에서 싐 없이 싸우는 마음의 소리들..

영혼을 들이부어 놀아보려는 사람들을 매일 바라보며 드는 여러 가지 생각의 고단함이 있을 것이다.


어느 곳을 가나 비극과 희극은 공존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희망과 절망은 모두 세트다.

방송인 '허지웅'은 그의 에세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행복을 들어 교만하지 말고 지금의 불행을 들어 비관할 필요 또한 없다.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말라.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화려한 호텔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의 마음은  벌써 일상의 문을 열려고 준비태세를 갖춘다.

미련을 두지 않고 복귀에 힘쓰는 나의 마음을 칭찬한다.

잠깐 정지시켜두었던 걱정거리가 다시 가슴 가득 차오르지만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말자고 다독인다.

12월에 다시 방문할 라스베가스에서 열매를 맺은 많은 일들을 축하할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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