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월요일-한국학교 교안준비
갑자기 나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됐다.
여행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독거노인으로 살고 계신 엄마를 보살펴 드리고, 새로 태어난 새아가인 조카를 만나보러 엄마를 모시고 또 다른 나라로 갈 예정이다.
그래도 여행이다.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고, 손쉽게 닿을 수 없는 잠깐의 내 나라의 방문은 그것의 목적이 다를지라도 나에게 늘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여행이다.
한국학교가 부활절 휴교가 있어서 내가 한 번만 부재를 하면 2주간의 휴가를 가질 수 있다.
나타날 수 없게 된 한 주에 관한 보조선생님을 위한 교안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주 교안까지 하면 두 주분의 교안을 준비해야 되니 마음이 스트레스로 꽉 차 있다.
이 스트레스를 없애버릴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
해버리는 것이다. 해버리는 것.
교안준비를 마치면 이 스트레스는 제로가 된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실행을 안 해서 일주일 내내 이 생각만 하면 뒹굴고 싶도록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은 월요일.
'개구리 먹기'를 실행하고 오늘부터 교안준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것이다.
아이들 공부할 자료를 찾고, 프린트하고 나도 공부한다.
공부만 하면 지루해하니 재미나는 만들기도 하나 넣어야 한다.
내가 먼저 만들어 보아야 해서 색칠하고 자르고 붙이고..
마지막에 보조선생님께 드릴 디렉션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덧붙인다.
바쁜 일이 있어서 내 아이를 남에게 잠깐 맡기는 심정과 같다.
이것저것 더 보태려다가 알아서 잘하시겠지 하며 그만 멈춘다.
유난스럽다는 인상은 주기 싫다. (이미 눈치챘나?^^)
교안준비를 마치고 나니 방안은 개판이 되었지만 마음은 구름처럼 가볍게 되었다.
4월 1일 화요일- 짐 챙기기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정말 기쁘지만 가져갈 짐을 챙기는 일이 나에게는 또 한 가지의 스트레스다.
가져와서 풀어내는 짐은 물건을 꺼내 그냥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빨래 통으로 던지고 하면 되지만, 가져가야 하는 짐은 가서 입어야 할 옷들과 써야 하는 물건을 챙겨야 하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측이 들어있어 여간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아니다.
이번엔 두 나라를 방문해야 한다.
계절이 다른 점을 생각하여 두 가지 종류의 물건들을 챙겨야 해서 더욱 골치가 아프다.
나는 짐을 좀 많이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이럴 때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어서 그럴 때를 대비해 또 그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오늘은 '개구리 먹기'로 여행을 떠날 짐을 미리 챙길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떠나지만 짐을 미리 챙겨두면, 저 짐을 언제 싸나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져갈 옷은 안 입을 수 있어서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순이인 친한 지인이 있다.
2주 정도 유럽여행을 가는데 작은 캐리어 하나만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충격이었다.
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필요한 게 있으면 가서 사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가봐. 정작 가보면 그게 꼭 필요해서 사게 되진 않더라고. 어떻게 해서든 다 해결이 된다니까.. 그리고 옷이 너무 모자라면 티셔츠 하나 정도는 사 입으면 되잖아..'
이번엔 또순이 지인처럼 해볼 작정이다.
그래도 이것저것 하니 작은 캐리어 하나는 아니게 되었다.(그래도 보통 때보다는 정말 많이 짐을 줄였다.)
아 또 하나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개구리 먹기'를 진행하며 맛보는 이 달콤함은 생각보다 더 많이 달다.

4월 2일 수요일-가방 무게 재는 것 또 사기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이 가방 무게 재는 디지털 저울이다.
손가락 두 개 만한 굵기의 길이는 손바닥 만한 이 디지털 저울은, 티켓킹을 하며 가방의 무게가 오버될까 봐 무서워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다.
웃기는 이야기로 미국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방이 터지게 쇼핑을 해서 간다.
이 디지털 저울을 몰랐을 때는 손으로 들어서 대충 가늠을 해보고 "됐어 됐어'를 외치며 호기롭게 공항으로 향하지만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올라오는 내 손의 감각에 대한 의심으로 모두들 낯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적정무게로 가방이 통과되면 그제야 얼굴에 웃음이 만발하고, 무게가 오버됐을 때는 울상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가방을 풀어 그 안에 있는 개인적인 물건들을 다 보여주며 창피함은 나의 몫이 되는 것이다.
딸아이가 뉴욕에서 엘에이로 이사를 올 때 도우러 갔었다.
쓰던 물건을 하나라도 더 가져오려고 하다가 비행기 수속할 때 가방의 무게가 오버돼서 무언가를 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새로 산 무게가 좀 나가는 프라이팬을 뺼수밖에 없어서 공항 쓰레기통에 그 프라이 팬을 버리며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짐을 다 싸고 보니 디지털 저울이 안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또 사러 가야 한다. 정말 귀찮다. 귀찮은 일은 빨리 하자.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저울을 사러 갔다 왔다.
손의 감각으로는 맞는 것 같았는데 저울로 해보니 역시나 오버가 되었다.
내가 힘이 세진게 틀림이 없다. 가방이 번쩍 들리며 하나도 안 무거웠으니....
귀찮아도 저울을 사 왔더니 공항에서 가방을 오픈해야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4월 3일 목요일-아픈 아이 챙기기
어어.. 비상상태다.
딸아이가 편도가 엄청 부었다며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오라고 했다.
여행준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오늘은 '개구리 먹기'로 아이를 돌봐 주어야 한다.
엄마는.. 부모는.. 아이가 앞에 나오면 모든 것이 뒷전이 된다.
부모님이 앞에 나오면 모든 것이 뒷전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내리사랑'이라는 것이지만 '내리사랑의 슬픈 이면임은 틀림이 없다.
한 십 년 전 갑상선 이상으로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나는 약에 대해 부작용을 많이 느끼는 체질이라 갑상선이 문제가 아니라 갑상선을 고치기 위해 먹는 약이 문제가 되었었다.
약 때문에 온몸에 이상이 온 나를 간병하러 엄마가 한국에서 거의 뛰쳐 오셨다.
며칠 엄마가 해주는 밥을 꼬박꼬박 먹으며 자고 쉬며 몸을 다스리니 생각보다 금방 나아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면 병도 이렇게 빨리 낫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열에 들뜬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와서 밥을 먹이고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니 혼자 살며 자유는 있지만 일상은 고단한 아이가 너무 편안하다며 웃으며 잠이 든다.
하루 종일 먹이고 쉬게 하니 몸이 가뿐해졌다며 저녁 늦게 자신의 집으로 떠났다.
하루 자고 가길 바랐던 나는 조금 서운하지만 아기새가 둥지를 떠나서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받아들이며 차고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온다.
다시 나만의 세상으로 복귀한다.
4월 4일 금요일-나의 부재중을 알리기
이곳저곳 내가 잠깐 이 나라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곳이 많다.
로밍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 답을 못해주면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여기저기 문자 메시지로 나에게 연락할 일이 있다면 이 메일로 해달라고 연락을 해 놓는다.
아들아이를 데리고 레슨을 받으러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학부형이 말을 시킨다.
이번 주는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다.(이곳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그냥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모두들 엄청 솔직하고 디테일하게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떨떈 조금 웃기다.^^)
나도 솔직하게 말한다.
'다음 주에 외국에 나가야 돼서 준비하느라 조금 바빴어..'
처음 보는 학부형은 말한다.
'나는 외국에 한 번도 안 나가봤는데.. 좋겠다. 근데 내 동생이 9월에 그리스에 간대.."
'아 그렇구나 그리스 좋지.."
이런 의미 없는 대화를 옆사람과 주고받는다.
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냥 영어공부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대화에 임하며 머릿속으로는 전에 공부한 이런 문법을 한번 써먹어 볼까 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맨날 쓰는 그 기본문법이다. ㅋㅋㅋ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어는 웬수다.
오늘의 토막글은 두서가 없게 나온다.
그냥 그런 날인가 보다.

4월 5일 토요일-두 남자(아들과 남편)를 위한 식량마련
사 먹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한인타운이랑 거리가 좀 있어 휘딱 나가서 설렁탕 한 그릇 사 먹기가 쉽지 않다.
햄버거 피자를 먹다가 도저히 못먹겠다 할 즈음에 먹을 음식을 조금 해두고 가야겠다.
오늘의 '개구리 먹기'다
앞치마를 척 두르고 몇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할 채비를 한다.
북엇국과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소고기 뭇국, 카레와 멸치볶음과 진미채를 만들 것이다.
배추김치를 썰어서 밀폐용기에 담아두고 떨어진 양념도 보충해 두고 코스코에 나온 가볍게 먹기 좋은 오이김치도 한 병 사다 둔다.
두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혼자 바쁜 나를 한 번씩 쳐다본다.
반찬과 다섯 가지 냄비를 냉장고에 넣고 나니 이제 나의 여행은 부릉부릉 준비 완료다.

4월 6일 일요일-집안 정리
짐을 싸느라 집안이 어수선하게 되었다.
얌전히 정리를 해두고 가야 한다.
그래야 돌아왔을 때 'home sweat home'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마지막 점검과 마무리를 한다.
가져가지 않는 옷들과 화장품을 잘 넣어두고, 냉장고에 두 남자가 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식재료는 처분하여 냉장고의 공간을 시원하게 확보해 놓는다.
나의 최애공간인 책상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앉았을 때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기뻐할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둔다.
중요한 서류가 있는 곳은 남편에게 다시 알려준다.
'개구리 먹기의 연재글도 3주 동안 쉬어간다.
여행지에서도 개구리를 먹어볼까 생각해 봤지만 그런 억척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쉴 때는 쉬자.
차분해진 집안을 바라보며 소파에 몸을 붙인다. 넷플릭스는 덤이다.
'개구리 먹기'로 착착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내 안에 생각지도 못한 단단함과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개구리 챌린지로 나는 또 이만큼 성장했다.

*3주간 '1일 1개 구리 먹기' 연재글을 쉬어 갑니다.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신 '로스앤젤레스 다이어리' 매거진으로 찾아뵐게요.-미스블루 드림-
<그림은 핀터레스트에서 담아 왔습니다>